‘점자의 날’에 찾아간 강서점자도서관

2011. 11. 4. 11:31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여러분 혹시 ‘훈맹정음(訓盲正音)’이라는 말 들어보셨나요? 훈민정음을 잘못 발음한 것이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우리나라의 시작장애인을 위한 한글점자가 바로 ‘훈맹정음’이라는 사실. 아마 모르는 분들도 많았을 것 같습니다.

오늘 11월 4일은 바로 이 ‘훈맹정음’의 창안을 기념하는 ‘한글 점자의 날’입니다. 지금의 점자를 처음 만든 사람은 프랑스의 루이 브라유(Louis Braille)인데요. ‘송암 박두성’ 선생은 이 브라유식 점자를 한글점자로 창안하여 우리나라의 시각장애인들의 문맹퇴치에 기여했습니다.

이렇게 한글점자는 1922년 11월 4일 반포되어 점자도서를 통해 지금도 시각장애인들의 교육, 학습, 문화 생활에서 쓰이고 있습니다.

비장애인들은 점자도서를 쉽게 접할 수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우리 주변 곳곳에 점자도서관이 있습니다. 시각장애인들도 도서관에서 우리와 같은 것을 공유하고, 꿈을 키워 나간다고 생각하니 이런 도서관들이 많이 알려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규모는 작지만, 점자도서를 제작하고 시각장애인들의 재활을 위해 힘쓰고 있는 서울 강서구의 ‘손소리 강서점자도서관’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서울 서부권 최초의 점자도서관

현재 서울 강서구 지역의 시각장애인들은 파악된 숫자만 하더라도 1800여 명에 이르지만, 점자도서관 대부분은 강북지역에 몰려 있어서 많은 시각장애인들이 도서관 이용에 어려움이 많았다고 해요.

그래서 이런 시각장애인들이 책을 읽을 권리를 갖도록 하고자 지역 목회자들이 힘을모아 지난 2005년 9월 15일 서부권 최초의 점자도서관인 강서점자도서관을 개관했다고 합니다. 




도서관은 약 30평 규모에 사무실, 서고, 열람실. 그리고 녹음도서 제작을 위한 녹음실도 갖추고 있었습니다.

작은 규모였지만, 도서관 안에는 정말 많은 점자도서를 보유하고 있어서 놀라웠는데요. 점자도서, 녹음도서, 전자도서, 묵자도서 등을 모두 합하면 약 4000권 정도의 도서가 비치돼 있다고 합니다. 물론 도서목록은 꾸준히 늘어가고 있구요. 




열람과 대여만 하는 도서관이 아니라 점자도서도 제작하고 있었는데요. 점자책과 오디오북 등의 제작은 주변 자원봉사자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럼 우리가 평소 접할 수 없었던 점자도서는 과연 어떤 모습일지 잠깐 살펴볼까요?





시중에서 판매하는 점자도서도 있지만, 제본작업을 거쳐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책이 더 많았는데요. 점자책은 시중에 출판할 경우 많아야 10권 정도만 만들어서 내놓는다고 해요. 그래서 일반 도서에 비해 2~3배 정도 가격이 비싸고, 주로 도서관을 통해 시각장애인들을 찾아간다는 사실이 안타깝기도 했습니다. 




시각장애를 가진 어린이들을 위한 도서의 경우에는 손으로 느끼는 재미가 있는 ‘촉각도서’가 많다고 합니다. 점자로만 구성된 책은 아이들이 쉽게 흥미를 갖기 어렵기 때문이죠. 




세계명작이나 동화도 많이 있었고, 우리가 서점에서 흔히 보는 책들도 점자도서로 제작되어 비치돼 있기 때문에 시각장애인들도 비장애인들과 같은 문화를 공유할 수 있을텐데요. 비록 읽는 방법은 다르지만, 서로 하나가 될 수 있는 역할을 책이 해준다고 할 수 있겠죠?


다양한 나눔 활동이 있는 도서관

이곳 도서관은 단순히 책과 만나는 도서관이 아니라 시각장애인들과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서로에 대한 이해와 소통을 할 수 있는 기회도 만들어가고 있답니다.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점자교육과 보행교육 등도 하고 있으며,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중도실명 예방교육도 진행하고 있는데요. 시각장애인들에게는 생활 훈련의 장이 되고, 비장애인들에게는 봉사와 나눔을 실천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자원봉사자들이 장애인들을 위해 직접 점자도서와 녹음도서를 만들고 있었는데요. 방문했던 이날 한쪽 컴퓨터에서는 점자도서의 원본이 출력되고 있고, 다른 곳에서는 따뜻한 목소리로 녹음도서를 제작하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워드 자료로 입력된 도서의 텍스트들이 점자 프린터를 통해 이렇게 출력되고 있는 모습이 신기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출력한 후 제본작업을 거치면 점자도서로 탄생하게 되는데요. 매일 이렇게 새로운 도서가 만들어져 도서관에 비치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제본된 도서들이 빼곡하게 비치되어 있습니다.>

<녹음도서 제작을 위해 책을 읽고 녹음중인 자원봉사자.>

<자원봉사자들이 직접 만든 다양한 오디오북.>

서울시의 지원을 받으며 운영되는 도서관이지만 사람의 손을 거쳐야만 완성되는 책들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기다리고 있다고 해요. 다가오는 연말연시에 이런 봉사는 어떠신가요? 내 손과 목소리가 많은 시각장애인들의 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입니다. ^^

이날 찾아간 ‘강서점자도서관’은 함께하는 따뜻한 세상을 만들어가는 곳이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하루에도 10명이 넘는 시각장애인들이 찾아와 책과 만나고, 이야기도 나누면서 세상과 소통해나가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없기에 점자에 관심을 갖기란 어려울지 모르는데요. 11월 4일 ‘점자의 날’을 맞이해서 오늘 하루만이라도 몸이 불편한 우리 이웃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할 수 있는 날이 되면 좋겠습니다.

장애인들에 대한 이해는 그들이 세상에 나아가고, 움츠러들지 않게 하는 힘이 된다고 합니다. 책과 함께 세상과 소통하는 이런 도서관이 앞으로도 우리 주변에 많이 생겨서 더 큰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통로가 되길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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