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전화 발신자 표시 기능이 범죄를 줄인 이유는?

2011. 11. 4. 14:41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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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의 향기’와 래플즈 호텔

누군가 자신을 속속들이 들여다 보고 있다면 어떤 느낌이 들까요. 아마도 오싹한 공포를 느끼기 십상일 겁니다. 벌써 11년 전 일입니다. 휴대전화의 벨이 울려 받았더니 상대방이 다짜고짜 욕설과 협박성 발언을 일방적으로 퍼붓고 전화를 끊어 버리는 황당한 경우를 당했습니다. 당시 보건복지부 출입기자였던 필자는 기사를 통해 의약분업을 둘러싸고 집단 휴진에 나선 의사 집단을 비판했었고, 이에 대한 일종의 ‘전화 테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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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상대방은 모르는 게 하나 있었습니다. 필자의 휴대폰은 당시로서는 상용화 되지 않은 송신자 확인이 가능했습니다. 지금은 누구나 전화를 건 사람의 번호를 확인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통신회사에서 연구원 등을 포함해 극히 소수의 사람에게만 시험용으로 번호확인 시스템을 이용할 수 있었습니다. 전화를 건 사람의 번호를 확인한 후 바로 휴대전화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전화를 받은 사람의 목소리는 지극히 정상적이고 점잖았습니다. 바로 전 전화기를 걸어 욕설을 퍼부은 사람의 목소리로는 믿기지 않았습니다. 그는 은닉성을 무기로 자신의 평소 모습과 다른 ‘헐크’로 변했던 것입니다.

필자는 “여보세요. 방금 통화했던 아무개 기자입니다. 저에게 협박을 하시던데 한번 만납시다. 언제가 좋을까요”라고 말을 건넸습니다. 상대방의 떨리는 목소리가 휴대폰으로 전해졌습니다. 그는 “어떻게 제 전화번호를 알고 전화했습니까”라면서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내친김에 “(사실은 알지도 못하면서) 어디서 개업하고 있는지도 압니다”라고 눙쳐 말하자 그는 전율을 느끼는 것 같았습니다.

그 뒤의 상황은 자세히 말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그는 상대가 자신을 훤히 들여다 보고 있다고 느끼는 순간 전의를 이미 상실하면서 처분만 기다릴 뿐이었습니다.

이 같은 상황을 연출한 힘은 다름 아닌 ‘정보’였습니다. 필자는 사소한 것 같은 상대의 전화번호 하나만 알고 있었지만 그는 자신의 정보가 마치 100개 이상 노출된 것 같은 공포를 느꼈던 것입니다. 정보의 힘은 그만큼 레버리지(지렛대) 효과가 큽니다. 국가정보원이 ‘정보는 국력이다’를 원훈(院訓)으로 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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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능한 신은 세상만사 모든 것을 알고 있지만 인간은 뉴스를 통해서 세상일을 알게 됩니다. 즉, 뉴스에서 세상이 돌아가는 정보를 얻습니다. 로마시대에도 사람들은 이 뉴스를 얻기 위해 공중이 모이는 장소로 몰려 갔습니다. 서구 언론학자들에 따르면 270여년 전 영국인들도 뉴스 중독중에 걸려 있었다고 합니다. 당시 영국 신사들이 뉴스를 듣는 장소는 커피하우스였습니다. 오죽하면 당시의 현상에 대해 <가정에서는 부인과 아이들이 먹을 것을 기다리고 있는데 비열한 남자들은 커피하우스에 나와 새로운 소식을 듣고 정치 얘기나 하면서 소일함에 따라 수많은 가정에 심각한 폐해를 끼치고 있다>는 사회적 비난까지 나왔다고 합니다. 물론 당시 영국 신사들은 라디오나 텔레비전, 인공위성, 컴퓨터와 같은 전자 매체의 존재를 전혀 몰랐겠지요.

뉴스의 속도가 빨라진 것은 기원전 3500년경이라고 합니다. 중국에서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말의 사육이 이뤄지면서 뉴스가 인간의 두 발에서 말의 네 발로 전달되기 시작하면서 전파 속도 역시 빨라졌다는 거죠. 가축의 힘을 빌어 전달되던 뉴스는 도로와 마차, 보트, 증기선, 철도 등과 같은 교통 수단의 발달과 함께 비약적으로 속도가 빨라졌습니다.

시대는 바햐흐로 ‘빠를수록 좋다’는 이데올로기로 무장한 인터넷 시대입니다. 뉴스는 공중(空中)으로, 케이블선으로 순식간에 전달됩니다. 온라인 신문 역시 미국 나이트리더(Knight-Ridder)사가 캘리포니아 산 호세 지역에서 <Mercury News>를 최초로 발행한 이후 우후죽순 생겼습니다. 컴퓨터로 인터넷 바다를 항해하는 수천만, 수억의 사람들은 뉴스 그룹을 결성해 관심있는 주제에 대해서 의견을 활발하게 교환하고 있습니다.

지구 대부분은 이미 네트워크로 연결돼 있습니다. 엄청난 수의 전자망이 세계를 꿰뚫고 있습니다. 뉴스가 지금보다 더 빨라지고 멀리 도달하는 것을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가 됐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술은 우리의 상상력을 앞서가고 있습니다.
 
이제 사람들은 컴퓨터 화면에 나타나는 여러가지 분야의 메뉴 중에서 자신이 원하는 주제의 기사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컴퓨터는 수용자가 주로 어떤 뉴스를 보는 지를 파악해 맞춤형 광고를 개인의 취향에 맞게 만들어주는 단계로까지 돼가고 있습니다. 수용자가 자동차 뉴스를 자주 클릭한다면 그 성향을 분석해 같은 자동차라도 왜건형을 선호하는지, 스포츠카 또는 세단형을 좋아하는지를 구분해 특정인만을 대상으로 광고하는 시대가 온 것입니다. 독자들은 정보 제공자에게 자신의 취향을 송신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자신만을 위한 잡지나 신문도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여기에 맞춰 정보 제공자는 광고도 맞춤형을 제공할 것입니다.

이처럼 컴퓨터와 모바일이 뉴스를 개인의 관심에 보다 잘 맞춰주면서 뉴스에 대한 이웃과 국가의 영향력이 점차 약해지고 있습니다. 또 지리적인 인접성을 토대로 한 지역 공동체는 개인의 관심에 따라 나누어진 공중(空中) 공동체로 변하고 있습니다. 이는 일종의 동질적인 지구촌 사회로의 전이입니다.

그러나 수많은 온라인 뉴스들은 자극적인 기사들로 가득 차고 있는 것도 현실입니다. 텔레비전 아침뉴스에서 소개하는 ‘인터넷 코너’를 보면 이런 현상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온라인 뉴스 서비스는 아프리카의 정치 상황에 대한 뉴스 보다는 할리우드 소식이 더 넘쳐납니다. 성급하고 자극적인 뉴스에 대한 욕구가 더 큰 것이지요. 이제는 정보의 과잉 시대입니다. 모르는 사람의 전화가 왔다고 겁먹을 이유도 없는 세상이지요. 전화 건 사람의 전화번호는 수신자 확인을 통해 알 수 있으니까요.

대신 정보의 질, 뉴스의 질을 따져야 하는 시대입니다. 다소 엉뚱한 얘기 같기는 하지만 사람들은 왜 싱가포르를 가면 1887년 세워져 가장 오래된 호텔인 래플즈 호텔을 찾을까요. 싱가폴 슬링의 탄생지인 래플즈 호텔을 가면 역사와 전통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훌륭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 호텔에서 자고 싶다는 욕심도 생깁니다. 아무리 최신식 호텔이 우후죽순격으로 세워져도 래플즈의 명성은 계속될 것 같습니다.

신문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정보의 질을 앞세운 전통 있는 신문이 자강불식(自强不息)의 자세로 독자에 대한 서비스를 게을리 하지 않는 한 독자 역시 ‘잉크의 향기’를 외면하지 않으리라 여겨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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