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와 공감하고 연대하는 성숙한 디지털 시민

2023. 1. 11. 10:00웹진<미디어리터러시>

 

 

피해자와 공감하고 연대하는 성숙한 디지털 시민

디지털 미디어와 정동 체험

 

 

인생은 만남의 연속이다.

상처와 슬픔을 주는 만남도 있지만 상대의 고통에 공감하고 어루만져 주는 만남도 있다.

디지털 미디어, 소셜 미디어의 영향력이 점점 커져가는 시대에

디지털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은 서로에게 힘이 되어 주는 긍정적 만남의 장으로 작용할 수 있다.

<미디어 바로 알기> 세 번째 순서로 ‘디지털 미디어와 정동 체험’에 대해 이야기 나눠보자.

 

 

강진숙 (중앙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슬픔은 피해자의 힘을 감소시키지만, 정서 변이의 힘을 강화할 때 문제 해결의 주체가 될 수 있다.

특히 사이버 폭력 예방을 위한 디지털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은 고립된 개인이 아닌

다수의 학습자들이 가해 및 피해 경험을 공명하고 정동의 힘을 키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는 장이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정현종의 시 ‘방문객’의 일부 구절이다. 사실 누군가와의 만남은 그 자체로 대단한 일이다. 한 사람이 겪은 파란만장한 인생사와 ‘부서지기도 했을’ 과거도 함께 마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만남의 과정은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가 슬픈 만남이라면, 다른 하나는 서로 힘이 되는 기쁜 만남이다.

 

 

긍정적 디지털 만남을 위해

 

이제 일상이 된 스마트폰과 인터넷 등의 디지털 미디어는 이러한 슬픔과 기쁨의 만남을 비대면으로도 가능하게 만들었다. 슬픈 만남이 익명성 뒤에 숨은 부정적 사례라면, 공감과 연대를 통해 고립된 정서를 넘어서는 디지털 시민 행위는 긍정적 사례로서 볼 수 있다. 전자의 경우, 사이버 폭력이나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괴롭힘인 사이버 불링, 그리고 ‘n번방 사건’과 같은 불법 동영상 제작 및 유통 사례를 들 수 있다. 부적합한 만남이 한 사람의 일생을 얼마나 파괴하는지 보여 준다. 후자의 경우, 세월호 참사나 이태원 참사 피해자들에 대한 애도와 추모의 행위가 있다. 함께 서로 ‘부서진’ 마음들을 연대하며 공동체 속의 긍정적 만남을 지속하게 된다. 디지털 미디어 리터러시 역량과 교육이 필요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디지털 환경에서 교수자와 학습자가 정동 역량을 강화할 수 있는 교육은 점차 중요해지고 있다. 디지털 만남을 기쁘고 긍정적인 만남으로 주도하기 위해서는 정서를 변화시키는 주체적인 힘이 중요한 탓이다. 그 어떤 지식이나 제작 능력 이전에 선차적인 것은 정서 변이, 즉 정동의 힘이다. 정동은 사람을 만나고 나뿐 아니라 그 사람의 일생을 변화시킬 수 있는 실천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정서 변화의 힘은 어떤 것일까? 정서에도 운동성이 있을까? 이러한 물음을 풀기 위해 여기서는 스피노자와 들뢰즈의 정동 및 공명 사유에 기초해 정동의 개념, 작용, 실천, 힘 등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디지털 미디어와 연관해 어떠한 정서의 변이가 가능할지 성찰하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정동이란?

 

17세기 네덜란드의 합리주의 철학자인 바뤼흐 드 스피노자는 그의 저서 《에티카》(윤리학)에서 정동의 사유를 펼친다. 정동에는 세 가지 요소가 포함되는데, 욕망, 기쁨, 슬픔이 그것이다(E3p11s). 디지털 미디어와 정동을 연계해 보는 이유는 이용자가 일상적으로 인터넷, 스마트폰, 소셜 미디어 등을 통해 다양한 정서 변화를 경험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정동이란 무엇인가?

 

정동이란 슬픔이나 기쁨 같은 개별적 정서가 다른 상태로 변이하는 것을 말한다(강진숙, 2019). 즉 슬픈 정서에서 기쁜 정서로 변하거나 거꾸로 기쁨에서 슬픔으로 가는 정서 변이가 정동의 기본 정의다. 이러한 사유는 인간의 감정이 이성보다 열등하거나 선천적인 기질로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님을 강조한다. 즉 감정이나 정서는 이성의 지도를 받지만, 일방적으로 규정되기보다 평행선을 유지하는 관계인 것이다. 예컨대, 인터넷 채팅 중에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사람도 있지만, 다혈질의 감정적인 사람도 보게 된다. 이러한 기질은 선천적으로 이성적이거나 감정적인 유전자의 영향일 수도 있지만, 오히려 가족과 지인, 그리고 학교나 사회 속에서 여러 만남을 지속하며 특정한 모습으로 각인된 것이다. 마치 흙수저와 금수저의 자질이 선천적인 것이 아니라 가족사와 경제적 조건이 조우한 결과물인 것처럼 말이다. 이처럼 가족이나 사회적 관계 형성은 정서를 변이시키는, 즉 정동의 물질적 토대가 된다.

 

 

정동의 작용: 욕망 생산

 

정동의 작용은 욕망의 생산을 통해 나타난다. 스피노자에게 욕망이란 프로이트가 말하는 무의식 속의 성적 충동이나 라캉의 결여가 아니다. 라틴어 ‘쿠피디타스(cupiditas)’로 표현되는 욕망은 인간의 자기 보존 노력인 생리적 욕구(appetite)에서 의지, 본능, 욕망 등의 영역들을 모두 망라한다(이은경, 2013). 즉 성적 대상을 향한 무의식적 충동이 아니라 “의식을 동반하는 충동”이다(E3p9s). 예컨대, 교육과정은 교수자와 학습자의 욕망 생산과 정동의 작용이 이루어지는 장이다. 특히 디지털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은 인터넷과 소셜미디어 등 디지털 미디어를 활용한 참여자의 정동 체험을 가능하게 한다. 교수자와 학습자의 만남은 그 자체로 욕망 생산의 시작점이며 정서의 변이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교육 목표가 이성적 판단력이나 미디어 숙련성에서 나아가 학습자의 정동 역량을 강화하는 데까지 가야 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디지털 미디어를 능동적이고 주체적으로 활용하는 힘은 자신의 정서를 성찰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정동의 힘을 강화할 때 커지는 까닭이다. 타인을 지속적으로 괴롭히는 사이버 불링이나 온라인 차별/비하의 희생양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자기감정이나 정서 변이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디지털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은 교사와 학습자, 그리고 학습자들 사이의 신체적, 정신적 결합이 이루어지는 장인 동시에 정서적 변이의 효과를 체득할 수 있는 중요한 ‘정동 체험’의 현장이기 때문이다(강진숙, 2014).

 

 

정동의 실천: 공명 효과

 

정동은 서로 다른 존재들 사이의 마주침을 통해 나타나는 공명(résonance) 효과이다. 프랑스의 후기구조주의자인 질 들뢰즈는 ‘공명’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 공명은 스피노자의 정동처럼 “존재들 사이의 마주침을 통해 기쁨 혹은 슬픔 등의 정서 변이와 이행을 일으키는 능력이자 효과”이다(강진숙, 2019, 230쪽). 즉 공명이란 “비의존적인 이질적인 항들이면서도 ‘이웃 관계’의 조화”를 실천하는 것을 말한다(Deleuze & Parnet, 1977, p. 125). 이는 상대방과의 유사성이나 모방의 동일시가 아니라 오히려 서로 독립된 차이를 존중하며 공감하는 행위를 통해 나타난다. 예컨대, 피부색과 성별이 달라도 인종차별주의나 젠더 불평등 사건에 대한 공감 행위는 ‘이질적인 항들’ 간의 정동하는 힘을 형성한다. 중요한 것은 차이의 존중이 다름을 인정하는 것을 넘어서서 하나의 공동체 구성원임을 자각하고 성찰하는 공통의 감각을 만들어 낼 때 정동의 힘은 배가된다. 고립된 자아가 아닌 욕망 생산의 동반자가 있다는 것은 슬픔에서 기쁨으로의 능동적 정서 변이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공권력에 의한 무고한 흑인 청년의 죽음이나 여성에 대한 ‘묻지마 살인’ 행위에 대해 한 사람의 개별적인 분노를 넘어 시민들의 집단적 애도와 규탄 시위가 있다면 정동은 사회 변화의 자극제가 될 수 있다. 정동은 고립된 개인의 무의식이나 감정 분할이 아니라 개별 신체들의 마주침과 연대의 공명 효과를 통해 현실화되는 것이다.

 

 

정동의 힘: 코나투스

 

이러한 정동 작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동의 힘을 키우기 위한 노력이다. 즉 자기 정서의 주인이 되어 더 능동적인 정서로 변이할 수 있는 역량이다. 이것이 스피노자 윤리학의 핵심 개념인 ‘코나투스(conatus)’다. 코나투스란 “존재를 유지하려는 노력”, 즉 유(類)적 존재로서의 자기 보존 노력이며 모든 덕의 기초를 이룬다(E4p18s). 예컨대, 사이버 폭력의 피해자는 가해자와의 부적합한 만남으로 고통스러운 ‘슬픔의 정서’에 빠진다. 이러한 슬픔은 피해자의 힘을 감소시키지만, 정서 변이의 힘을 강화할 때 문제 해결의 주체가 될 수 있다. 특히 사이버 폭력 예방을 위한 디지털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은 고립된 개인이 아닌 다수의 학습자들이 가해 및 피해 경험을 공명하고 정동의 힘을 키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는 장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교수자와 학습자가 어떻게 정동 체험을 공유하고 대처 방안을 세우는가 하는 점이다. 슬픔의 정서가 더 고착되지 않도록, 그리고 교육 과정을 통해 슬픔에서 기쁨으로 정동 체험을 할 수 있도록 세심한 접근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강진숙 (2014). 미디어교육 패러다임의 변화를 위한 시론. 《커뮤니케이션 이론》, 10권 3호, 195-221.

강진숙 (2019). 《뉴미디어 사상과 문화》. 서울: 지금.

이은경 (2013). 스피노자의 정서이론의 교육적 함의. 《도덕교육연구》, 25권 1호, 117-143.

Deleuze, G., & Parnet, C. (1977). Dialogues. Paris: Flammarion.

Spinoza, B. de. (1675). ETHICA. 강영계 역(1990). 《에티카》. 서울: 서광사. (라틴어본 URL: http://www.thelatinlibrary.com/spinoza.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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