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는 사라질 수 있지만, 콘텐츠는 사라질 수 없다?

2012. 1. 12. 09:08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종이’신문, 2012년 다시 뜨려면 ‘융합과 혁신’이 본질이다

종이는 식물의 섬유질을 물에 불려 평평하게 엉기도록 하여 말린 것입니다. 책 등의 재료로 쓰이며 그 위에 글을 쓰거나 물을 흡수하는 성질을 이용하여 화장에 사용되기도 합니다. 일회용 도구를 만드는 재료로 활용되는 등 그 사용처는 다채롭습니다. 이 중에 으뜸은 단연 콘텐츠를 담는 종이신문, 종이책일 것입니다.

최근 수십 년 동안 현대 사회에서는 종이로 된 미디어에 대해 여러가지 평가들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종이는 더 이상 미래가 아니라는 주장이 주된 근거들입니다. 신문 소비량도 날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고, 종이로 만든 책을 허리춤에 끼고 다니는 것 보다는 태블릿 한 대로 손끝을 바쁘게 움직이는 젊은 사람들이 훨씬 많아졌습니다. 종이는 분명히 한물간 흐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종이를 외면하는 많은 사람들이 각종 뉴미디어 서비스를 접하면서 종이와 같은 느낌을 매우 선호하는 현상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대체적으로 정보는 2차원 공간에 문자, 이미지, 일러스트, 영상 등 각종 미디어 요소로 구성되는데 이 과정에서 사람들은 오히려 종이의 감성을 가진 서비스에 호기심을 가지는 역설을 불러 왔습니다. 태블릿의 전자책 서비스나 각종 뉴스 앱들도 이런 특징을 잘 반영하고 있습니다. 결국 종이는 사라질 수 있지만 종이의 특성을 반영한 콘텐츠 형식은 변하지 않고 오히려 더 부각될 기회가 산재해 있다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종이 기반의 기업들은 기술 융합이 선행돼야 할 것입니다. 종이의 정서를 가진 콘텐츠를 누구나 기대하고 있습니다. 한 장씩 넘겨가며 편안하게 정보를 훑던 아날로그 감성은 결코 인간의 머릿속에서 0과 1에게 잠식될 수 없습니다. 

종이 신문이 살아남기 위한 또 다른 필수 요소는 비용절감입니다. 뉴미디어는 투자 대비 효율이 높은 온라인과 디지털의 특성을 극대화한 사례들입니다. 하루에 수억개의 트위터 메시지를 처리할 수 있었기 때문에 트위터 속에 수많은 촌철살인 어록이 화제가 될 수 있었습니다. 한 사람이 수십, 수백명과 친구를 맺더라도, 하루에 수십개의 글을 올리더라도 참여형 미디어의 구조가 무너지지 않았기 때문에 페이스북과 블로그가 새로운 미디어로 부상했습니다. 정신없이 흩어져 있던 인터넷 미디어들은 RSS와 추천API, 개인화API 등 각종 콘텐츠 큐레이션 기술을 통해 재탄생했습니다. 사람들이 더 많이 읽고 참여할수록 인당 미디어 운영비용은 0으로 수축합니다. 좋은 콘텐츠를 가장 효율적으로 울타리에 가둬둘 수 있는 방법을 깨달은 것이 뉴미디어의 본질입니다. 

종이신문도 비용을 최소화하고 참여를 극대화할 수 있는 방식을 고민해야 합니다. 아직도 많은 기업들이 ‘종이’ 경쟁력 자체에 집중한 나머지 획기적인 윤전시스템으로 옮겨가거나, 비용 절감을 위해 특별한 노력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일부 마이너 언론사에서는 “신문을 찍어낼수록 적자라서 오히려 찍어내지 않는 것이 적자를 줄이는 것”이라는 우스갯 소리를 하기도 합니다. 실제로 인쇄할 신문을 몇만~몇십만부 줄이는 것만으로도 당장 경영실적이 개선됐다는 한 메이저 미디어 사례가 알려지기도 했습니다.




이 밖에도 종이 콘텐츠의 가치 그대로 미디어 기술을 통해 충분히 디지털 플랫폼으로 이식될 수 있도록 기술 고도화도 필수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종이 자체에서 나오는 특질을 디지털로 옮기는 데 매우 서툴렀던 것이 종이 기업들입니다. 종이에 대해 가장 잘 알 것 같았던 이들은 오직 종이에만 집착하고 있습니다. 마치 코닥이 세계 최초로 디지털카메라를 개발했고 수많은 관련 특허를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는 껍데기만 남은 신세가 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e잉크 등 새로운 디스플레이 기술이 수천년 종이의 권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지만, 섬유질 덩어리의 가치를 넘어서기란 그리 쉽지 않을 것입니다.

한 칼럼니스트가 10여 년 전 신문 기고문에서 “신문은 숨쉬게 하는 공기고, 방향을 제시하는 나침반이며 사회와 연결하는 끈이라는 것이 독자들의 일반적 인식”이라고 했지만, 요즘 독자들이 공기와 나침반, 끈을 놓아버렸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금과 같이 누구나 접근 가능한 형태의 신문이 등장한지는 채 200년도 되지 않았습니다. 특히 광고를 실어 신문 값을 파격적으로 낮춘다는 프랑스 언론인 에밀 드 지라르댕의 ‘획기적’ 발상전환이 성공을 거둔 건 고작 1830년이었습니다. 불특정 다수가 이처럼 많은 정보를 한 번에 빠르고 신속하게 볼 수 있었던가요. 종이의 혁신은 이러한 문화혁명 정신에서 다시 시작돼야 합니다.
분명히 뉴미디어의 등장은 새로운 차원의 도전입니다. 하지만 종이가 가진 본질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종이신문은 독자들의 원하는 종이미디어의 특성만 잘 이해한다면 언제든지 새로운 콘텐츠 유통 활로를 고민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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