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노동신문을 읽고 난 후, 사용되는 진정한 용도
2011. 12. 13. 10:08ㆍ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앞서 글에서 노동신문을 포함한 북한 신문은 간부들만 볼 수 있다고 설명 드렸습니다. 하지만 북에서 신문이 필요한 사람은 간부들에게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신문이 필요한 사람은 북한 주민 모두라고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북한에서 신문은 정보 전달지 이상의 가치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 흔히 어떤 신문을 비하할 때 이런 말을 하지요. “우리 집 강아지 응아를 받아내는 데 쓴다”고 말이죠. 제가 가만 생각해봐도 여기선 신문을 읽고 난 뒤에는 그 이상의 용도를 찾기 힘듭니다. 신문 보고 모아두었다가 매주 분리 수거할 때 버리기도 귀찮은 일이죠.
북에서도 신문은 휴지로써 아주 유용합니다. 강아지에게요? 절대 아닙니다. 강아지가 아닌 사람이 쓰는 뒷간 휴지로 매우 유용합니다. 북에서는 여기 한국에서 쓰는 것과 같은 화장지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종이가 흔한 것도 아닙니다. 종이가 아주 귀하죠. 운을 떼긴 했지만 막상 뒷간 휴지 문화에 대해 리얼하게 묘사한다는 것이 매우 어려운 일이네요. 북에서 찍어낸 김 부자와 당정책을 선전하는 책자들의 대다수가 찢겨져 화장실에서 썩고 말았다는 것은 비밀이 아닙니다. 북한 당국이 휴지만 좀 만들어 나눠줘도 애써 품 들여 찍어 나눠진 선전 책자들이 아직 살아있을 건데 말입니다.
<이미지 출처 : 네이버 백과사전>
북한에서 노동신문과 다른 신문의 종이 질은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노동신문은 그래도 하얀 종이에 찍혀 나오지만 다른 신문은 설명을 드릴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한국에는 이렇다 하고 묘사할 수 있는 그런 한심한 종이가 없기 때문이죠. 1950년대 물품을 전시한 박물관에 가면 있을진 모르겠습니다.
하얀 종이를 쓰는 노동신문은 간 큰 사람이 아니고선 휴지로 쓰기조차 아깝습니다. 노동신문이 워낙 귀하다 보니 장마당에서 팔리고 있습니다.
10년 전에 1장에 1원씩 팔렸습니다. 당시 옥수수가 20원대였는데, 노동신문이 하루 6개 면에 3장인 셈을 감안하면 일주일치 노동신문을 모으면 옥수수 1㎏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은 옥수수가 1000원을 넘었는데 아마 노동신문도 1장에 50원 이상 할 것입니다.
원래 노동신문은 다 보고 출판물보급소에 다시 바쳐야 합니다. 하지만 노동신문을 보는 간부들은 일부만 바치는 흉내를 내고는 대다수를 팔아먹습니다. 어차피 출판물보급소도 노동신문을 걷어와 다시 장마당 장사꾼들에게 몰래 팔아먹긴 마찬가지입니다.
장마당에서 노동신문을 사는 사람들의 대다수는 담배종이를 하기 위해 삽니다. 북에는 우리처럼 권연을 피우는 사람은 아주 잘 사는 사람이고 대다수 사람들은 잎담배를 심어 키운 뒤 이를 말려 썰어 종이에 말아 피웁니다. 이런 담배를 북에선 ‘마라초’라고 합니다. 북에는 노동신문보다 더 얇고 부드러운 담배종이가 없습니다. 노동신문 용지는 한국의 어느 신문 종이보다도 더 얇고 부드럽습니다.
노동신문 1장 분량이면 담배를 40~50대 말아 피울 수 있습니다. 한번 노동신문으로 말아 피우기 시작한 사람은 다른 종이를 쓰면 담배맛이 떨어지기 때문에 계속 노동신문만 고집합니다.
이유를 모르겠지만 제가 생각하기론 니코틴뿐 아니라 인쇄잉크에도 중독성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저도 북에서 노동신문으로 말아 피웠습니다. 탈북해 중국에 들어오니 중국 농촌 사람들도 잎담배를 말아서 피우는데 담배종이를 상점에서 따로 팔더군요. 헌데 그 종이로 담배를 피우니 도저히 못 피우겠더라고요. 맛이 안 나서 말입니다.
담배 종이 외에도 북한에서 신문 종이는 도배하는 데 아주 유용하게 씁니다. 북에서 보통 도배를 할 때는 우선 벽에 신문을 초벌로 바른 뒤 그 위에 도배지를 붙입니다. 초벌도배 없이 도배지를 바로 콘크리트에 붙이면 떨어지기도 쉽거니와 수명도 오래 가지 못합니다.
하지만 북에서 휴지든, 담배종이든, 도배지든 통틀어 신문지를 쓸 때 매우 주의해야 할 사항이 있습니다. 바로 김정일 부자 사진이 있나 아주 깐깐하게 봐야 하는 것이죠.
만약 김 부자 사진이 있는 신문지를 휴지로 쓰거나 담배를 말아 피우면 그 사람은 정치범이 되고 맙니다. 이거 잘못 걸려서 목 달아난 사람들 정말 많습니다. 자기만 죽습니까. 누가 정치범이 되면 가족까지 다 정치범수용소로 끌고 가는 것이 북한 사회입니다.
북한 신문은 대체로 1, 2면엔 김정일 사진이 꼭 들어갑니다. 그래서 노동신문은 첫 장을 거의 쓰지 못합니다. 요즘엔 가끔 김정일 현지 지도 사진으로 아예 도배돼 발행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신문이 오면 북한 사람들은 “오늘은 쓸만한 게 안 왔군” 이렇게 속으로 생각합니다. 출판물보급소에 다시 바치는 신문은 대개 이런 쓸만하지 않은 신문입니다.
주민들에게서 가장 인기가 좋은 것이 5, 6면에 해당하는 일명 ‘속지’인데요, 속지는 5면이 남조선면이고 6면은 국제면입니다. 여기에는 일반적으로 김 부자 사진이 안 들어가서 사람들이 매우 선호합니다. 헌데 여기도 안심할 수 없는 함정이 있습니다. 종종 외국에서 무슨 김정일 따라 배우는 연구회니 집회니 한다는 사진이 들어가는 때가 있는데 이때 사진 속 회의장 벽에 김정일 초상화가 걸려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물론 아주 자세히 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좁쌀만한 크기에 불과하지만 이것도 운이 없으면 코걸이가 될 수 있습니다.
휴지도 안심하고 쓰지 못합니다. 북한은 재래식 화장실이 대다수인데, 남이 화장실에 들어가도 그렇고, 또 퇴비를 만든다면서 나중에 퍼내도 그렇고 증거가 남을 수 있습니다.
그에 비하면 벽지는 좀 안전한 축이긴 한데, 이것도 절대적으로 안전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이사 가면 이사 온 집에서 훗날 도배하다 증거를 발견하면 어쩝니까.
하지만 최근 북한의 민심이 이반되면서 김정일 사진이 있는 노동신문 종이에 담배를 말아 피웠다고 남을 고발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냥 모르는 척 하기 일쑤입니다. 그거 고발해 남을 잡아 죽여 봐야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해도 크게 출세하지도 못할 뿐 아니라 오히려 친구 잡아먹고 출세한 사람이란 손가락질이나 당하기 십상이죠. 거기다 스스로의 양심적 가책은 또 어떻게 감당하겠습니까. 물론 그렇긴 하더라도 남들이 있는 자리에서 공공연하게 김정일 사진이 있는 종이로 담배 말아 피우는 바보 같은 사람들도 없습니다. 어쨌든 그건 남에게 약점 잡히는 일이니까요.
노동신문으로 담배를 말아 피우던 옛 일을 추억하며 글을 쓰다 보니 갑자기 흡연욕구가 생기는군요. 담배를 끊은 지 벌써 3년 가까이 되는데 말입니다. 담배가 이처럼 중독성이 강한 줄 알았으면 애초에 가까이 하지 않았을 것을. 후회 막심합니다.
ⓒ다독다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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