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밥 먹여줬던 '경제 • 경영서' 읽기
2011. 12. 12. 09:30ㆍ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제가 처음으로 책을 구입한 것은 초등학교 4학년 때 입니다. 아저씨 몇 명이 하굣길 길가에 트럭을 세워놓고 주소와 연락처만 받고 아이들에게 선물이라고 나눠준 것은 철제 마징가 제트. 당시에 반에서 부잣집 자식 한 두 명만 갖고 있을 법한 고가의 희귀 장난감이었죠.
저도 늦을세라 줄서 있는 수십 명의 아이들 사이로 뛰어들어 아저씨가 건네는 서류에 이름과 주소, 전화번호를 적어주고 장난감 선물을 받았습니다. 이틀 후 집에 돌아왔을 때 저를 기다린 것은 방에 산더미처럼 쌓인 두 질의 소년소녀문학전집과 아버지의 몽둥이 뜸질이었습니다.
그 후 일 년 동안, 책 할부금 4,000 원을 내고, 매달 25일이면 아버지 앞에서 한 달 동안 읽은 책을 검사 받았습니다.
그 때 읽은 50권짜리 소년소녀세계문학전집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에드거 앨런 포우’의 <검은 고양이> 였습니다.
한 권의 책이 ‘전설의 고향’보다 훨씬 더 무서울 수 있음을 처음 알게 해준 책이었죠. 특히, 주검이 된 검은 고양이가 다시 살아 콘크리트 벽 속에서 울고 있던 마지막 장면은 얼마나 무서웠던지, 엄마 다리를 끌어안고 엉엉 울었을 정도였습니다.
독서란 그저 종이 위에 새겨진 글을 읽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아이가, 눈앞에서 그림과 영상이 펼쳐지는 것처럼 느끼며 읽을 수도 있는 게 책이라는 사실을 저는 그 때 처음 배웠습니다. 비록 아버지가 대신 돈을 내주셨지만, 저의 첫 책 구입치고는 꽤 많은 책을 산 셈이죠. 그리고 저의 공식적인 책 읽기는 이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머리’라는 항아리에 ‘독서’라는 물을 채워라
하지만 그 후로 오랫동안 저는 독서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습니다. 중고등학교 시절엔 무협소설이나 추리소설을 몇 권 빌려다 읽는 수준이었죠.
사실 저는 학창시절 머리가 썩 좋지도 못하거니와 집안사정으로 두 해 늦게 공부를 다시 시작했기에 오로지 학업에만 열중했던 때여서 독서는 언감생심 꿈도 못 꿨습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간신히 꼴찌 근처로 어렵사리 대학에 들어갔고, 한가해지자 다시 책이 읽고 싶어졌습니다. 하지만 막상 읽으려니 ‘무슨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 몰라 난감했습니다.
고민 끝에 대학국어를 강의하던 교수님을 따로 뵙고 고민을 털어놨더니 “책을 교과서로 보지 말고, 장난감으로 보라”고 하셨습니다. 쉽게 말해 ‘처음 독서를 할 때는 공부하지 말고 즐기라’는 뜻이었는데, 그 말씀은 제게 책을 대하는 새로운 세상을 열어줬습니다.
그래서 저는 교수님께 또 다른 고민을 꺼냈습니다. “책을 읽다 보면 앞 내용이 생각나질 않아서 자꾸만 다시 읽게 됩니다. 심지어는 주인공의 이름도 헛갈릴 정도예요. 해결책이 없을까요?” 그러자 교수는 ‘칼 구스타프 융’의 잠재의식론을 빌어, 독서는 두뇌라는 항아리에 한 바가지 물을 채우는 것과 같다고 설명했습니다. 내용인즉,
'한두 컵(독서량)을 부어서는 항아리(머리)에 물이 얼마나 찼는지(저장된 지식)를 알 수 없다. 항아리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열 권이 넘고 스무 권이 넘고 삼십 권이 넘었을 때, 두뇌라는 항아리는 채워짐을 느끼게 된다.
어느 날 항아리에 물이라는 독서량이 차서 찰랑찰랑해졌을 때, 마지막 한 컵을 더 부으면 항아리는 물이 넘치게 되는데, 이때가 독서를 통해 쌓였던 지식이 배출되는 순간이다.
이때 배출되는 내용들은 마지막 물 한 컵의 독서가 아니라 그동안 쌓아왔던 독서량들이 대류현상을 통해 뒤섞여 밖으로 분출된 것이다. 이 순간부터 독서의 인센티브를 얻게 되는 것이다. 이를 경험한다면 독서의 참 맛을 얻게 되었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그 이후부터는 굳이 독서하라고 말하지 않아도 스스로 책을 읽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제껏 저의 책 읽기의 시작을 이렇게 장황하게 이야기 한 이유는 다름 아니라 '독서를 잘 하는 사람이 따로 없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서였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책에 좀 더 몰두 할 수 있느냐 없느냐’일 뿐 타고난 독서가는 없습니다. 단지 책을 많이 읽으려면 독서에 몰두해야 하고, 그러려면 먼저 독서습관이 생겨야 합니다.
시간이 없으면 여지를 만들어서라도 읽겠다는 의지가 담긴 습관 말입니다. 이 정도가 되면 독서는 일상이 되고 놀이가 됩니다. 공부를 위한 독서는 그 다음부터 필요할 때 가능해 집니다.
밥 먹여주는 경제, 경영(실용) 독서
‘칩 히스’와 ‘댄 히스’ 형제가 쓴 베스트셀러 <스틱! made to stick!>의 내용 중에 ‘지식의 저주’라는 말이 있습니다.
자신이 말하려는 주제에 대해, 듣는 사람들이 배경 지식이 없는 상황을 상상하지 못하는 상태, 다시 말해 말하는 사람은 ‘설마 이 정도의 지식 정도는 있겠지’라는 생각으로 말하는데, 듣는 사람들은 사실 아무것도 모르고 있어서 제 아무리 열변을 토해도 고개만 끄덕거릴 뿐 머리에는 ‘쏙쏙’ 들어오지 않는 상태를 말합니다.
그래서 말하는 사람은 자꾸만 "넌 그것도 모르냐?"고 답답해하며 자꾸만 윽박지르게 되죠. 더 답답한 건 듣는 사람일텐데 말입니다.
대학 졸업 후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제가 본격적으로 경제 • 경영서를 읽기 시작한 이유는 바로 ‘지식의 저주’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였습니다.
제 관심사나 맡은 일만 푹 파묻히는 것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의 생각을 보다 폭넓게 이해하고 싶었습니다. 당장 오늘 내일 해결해야 하는 문제들뿐 아니라 '돈과 인생의 의미'와 같은 보다 '거대한 생각'들을 받아들이는 귀를 갖고 싶었습니다.
위대한 인물들의 거대한 생각들을 아직도 모두 이해하지 못하지만, 신기한 것은 듣고자 노력할수록 더 잘 들리더란 겁니다. 오늘도 경제 • 경영서를 손에서 놓지 못하는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제게 “독서가 밥 먹여주는 것도 아닌데, 무슨 책을 그렇게 읽느냐?“고 묻곤 합니다. 그럴 때면 저는 대답 대신, 한 때 일본 최고의 부자였고, 현재 <소프트뱅크> 회장인 손정의(손 마사요시)의 사례를 들려줍니다.
그는 3년 동안 병상에서 읽은 책이 무려 4,000여 권에 달했다고 합니다. 손정의는 이 때 자신의 인생을 걸고 도전할만한 사업과 아울러 제공병법이라는 비즈니스 핵심도 찾게 됩니다.
퇴원 후 손정의는 바로 미국으로 건너갔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회사인 소프트뱅크를 상장시키고 시가총액 2천 수백억 엔의 회사로 만들었습니다.
자금을 확보한 그는 병원에서 읽은 책 4,000여 권이 준 영감과 평소 구상해온 아이디어를 합해 일생일대의 승부를 거는데요, 그것은 바로 '앞으로 인터넷 시대가 온다'는 확신이었습니다.
그래서 800억 엔을 주고 세계 최대의 컴퓨터 전시회인 ‘컴덱스’를 인수하고, 2,300억 엔을 들여 컴퓨터업계 세계 최대의 출판사인 지프 데이비스를 사들였습니다. 두 업체를 인수하는 금액만 총 3,100억 엔으로 그는 또 다시 세상 사람들은 쓸데없는 기업을 거액에 사들여 빚쟁이가 되었다며 손가락질 했습니다.
하지만 손정의는 이 거래를 두고 “보물찾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음식도 아니고, 약도 아니고, 대포도 아니고, 바로 지도와 나침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당시 그에게 지도와 나침반은 컴덱스와 지프데이비스인 것이죠.
손정의는 지프 데이비스의 직원들에게 21세기 세상을 이끌 사이트 5개를 찾아내라고 지시했습니다. 그 속에서 발견된 보물이 바로 ‘야후’였죠. 당시 야후의 미국 직원은 겨우 5-6명. 그는 이제 막 설립된 회사에 100억 엔을 투자하며 최대 주주로 올라섰습니다. 그리고 야후 재팬도 만들었죠. 30 대의 그가 이렇게 과감한 승부를 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책 덕분이었습니다.
손정의는 지금도 인생의 중요한 포인트마다 ‘시바 료타로(司馬 遼太郎)’라는 일본의 대표적인 역사 소설가가 쓴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의 일대기 <료마가 간다>를 읽는다고 합니다.
사업에 대한 철학과 비전을 얻었다는 <손자병법>은 그가 가장 좋아하고 최고로 꼽는 책이기도 하죠. 어떤가요? 이래도 독서가 밥먹여주느냐고 물을 건가요?
IMF 시절, 나를 사업으로 이끈 한 권의 책
저 역시 책 덕분에 비즈니스를 처음 시작한 사람입니다. 대학을 졸업하던 해에 IMF를 맞아 취업을 못하고 한 해 동안 백수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서울로 올라와 친한 대학선배의 집에 머물며 밥과 빨래, 집 청소를 해주며 생활을 했습니다.
어느 날, 무엇을 하고 먹고 살아야 할까 고민하며 서점에서 시간을 보내던 중 일본 <맥도날드> 전 회장 ‘후지타 덴(藤田田)’이 쓴 <비즈니스에는 급소가 있다>라는 책을 만났는데요, 이 책은 제 미래에 대해 눈을 번쩍 뜨게 해 주었습니다.
그는 ‘긴자의 유태인’이라 불릴 만큼 수완 좋은 사업가입니다. 그는 <맥도널드>를 일본에 들여온 패스트푸드의 대표주자이자 일본에 패스트푸드 혁명을 일으킨 주역입니다.
<맥도널드>를 선택해 일본에 들여올 때 ‘전 세계에 같은 맛을 낼 수 있는 표준화된 시스템과 신속함’을 <맥도널드>만의 ‘아이덴티티’로 꼽았는데요.
<비즈니스에는 급소가 있다>에서도 '성공하는 프랜차이즈의 핵심은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고유의 ‘아이덴티티’를 갖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부동산학을 전공으로 했던 저는 4학년 때 유망사업으로 떠오르던 CVS(편의점 사업)에 관심이 많아 따로 공부를 했던 터라 프랜차이즈에 대해서는 약간의 식견을 가지고 있었는데요, 후지타 덴이 말한 이 한마디는 거짓말처럼 앞으로 할 사업꺼리를 떠올리게 했습니다.
그것은 제가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독창적인 아이템을 가지고 프랜차이즈 사업을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국내에 프랜차이즈가 막 태동한 때라 관련서가 많지는 않았지만, 40여 권 정도를 찾아내 탐독했습니다. 책을 살 돈이 없어 서점의 바닥에 앉아 읽고는 중요한 대목은 모두 노트에 필사하면서 정리하다 보니 세 권의 독서노트가 만들어지더군요.
저의 질문에 답을 해 줄 책을 찾느라, 그리고 책을 읽어 그 내용을 파악하느라 비록 시간이 조금 걸렸지만 목적의식을 갖고 들여다보면 신기하게도 찾고자 했던 답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정답을 찾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책을 읽으며 깨달은 내용을 모티브로 제게 필요한 답을 스스로 풀어내는 정도는 찾을 수 있었습니다. 홍보, 마케팅, 계약, 협상, 설득, 매뉴얼, 고객응대요령 등 사업에 필요한 거의 모든 것을 책에서 배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지금껏 경제 • 경영서를 손에서 놓지 못하는 이유 역시 아직도 독서가 제 인생에 직, 간접적으로 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까운 예로는 경제학자도 아니고 박사도 아닌 제가 경제 • 경영서 중에서 대학생과 직장인들이 꼭 읽어야 할 책들만 소개한 <질문을 던져라 책이 답한다>(교보문고)를 쓸 수 있었고, 지금 여러분께 이 글도 쓸 수 있는 것도 바로 독서를 꾸준히 한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문학은 세상을 좀 더 아름답게 하고, 인문은 보다 더 사람다운 사람을 만드는데 일조한다면, 경제•경영서는 사람과 세상을 정신적, 경제적으로 더 풍요롭게 합니다. 주식과 부동산에 투자하면 반토막이 날 수 있지만, 자신의 재능에 투자한다면 결코 손해 보지 않습니다.
일본의 대표적인 지성, ‘다치바나 다카시’는 100권을 읽고(input), 정리해 새로운 한 권을 만든다(output)고 합니다.
습득에 의한 재창조인 셈인데, 저는 이러한 재창조의 순간부터 전문가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시골의사 박경철도 하나의 투자상품을 배우기 위해 교과서격인 책만 30권을 읽는다고 하더군요. 그가 방송과 강연에서 투자를 논함에 막힘이 없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일 겁니다.
여러분도 여러분이 몸담고 있는 분야에서 전문가나 스페셜리스트가 되고 싶다면 다치바나 다카시처럼 관련서 100권을 읽어보기를 권합니다. 읽는 요령은 이렇습니다. 책마다 겹치는 내용이 있다면 그만큼 기본적이고 중요한 개념이니 숙지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 권을 읽을 때마다 배워야 할 내용을 1-5개씩 찾아내 봅시다. 100권이면 100-500개가 됩니다. 이를 합하면 나만의 비법을 담은 책 한 권 분량이 됩니다. 이것을 모두 익힌다면 나만의 지식을 만들게 됩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듯, 책을 읽는 만큼 우리는 행복하고 풍요로운 삶에 가까워질 수 있습니다. 그러니 달랑 세 권을 읽고 독서 후 삶에 변화가 없다고 불평하지 마세요. 몇 권을 읽었는지 세기가 어려울 만큼 독서가 여러분에게 습관이 된다면 책을 읽지 않던 때보다 훨씬 더 자유롭고 풍요로운 생각을 하며 살게 될 겁니다.
©다독다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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