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펙’ 아닌 ‘실력’으로 뽑힌 기자, 그의 기사가 특별한 이유는?
2011. 12. 14. 10:48ㆍ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지난 9월 기자를 꿈꾸는 학생들의 이목을 사로잡았던 대회가 있었습니다. 바로 한경미디어그룹의 수습기자 채용 서바이벌인 <나는 기자다 2011>이었는데요. 스펙이 아닌 순수한 실력으로 기자를 뽑겠다는 취지로 실력 중심의 채용문화를 만들어 나가겠다는 이색적인 대회였죠.
순수한 실력만으로 기자를 뽑는다는 말에 언론고시를 준비하는 많은 기자 지망생들도 ‘기자다운 기자를 채용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품었다고 하는데요. 하지만, 지원양식부터 학점, 외국어, 가족관계 등을 쓰는 칸을 아예 두지 않으면서 이런 의심들이 곧 사라졌다고 합니다.
이렇게 <나는 기자다>는 지난 11월, 두 달여의 대장정을 마무리하고, 편견 없이 오로지 실력만으로 기자를 뽑는 파격적인 채용문화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언론계 최초의 시도였던 이번 대회에의 최종 합격자 중 한명인 윤희은씨는 스스로 “내세울 것 없는 스펙을 가졌다”고 말하며 많은 언론사 시험에도 떨어졌지만 결국은 실력이 있었기에 그토록 원하던 기자라는 이름을 가질 수 있었는데요.
‘준비가 된 자에게는 반드시 기회가 온다’라는 진리를 깨닫게 해줬던 그녀의 이야기를 여러분들에게 들려 드리겠습니다.
한국경제신문 <나는 기자다>에 최종 합격한 예비기자 ‘윤희은’씨는 어렸을 적부터 글을 쓰는 것을 운명이라고 생각했다고 해요. 그래서 항상 읽고, 생각하는 연습을 꾸준히 해왔다고 합니다.
글을 쓰기 위해 ‘추계예대 문창과’에 진학해 다양한 글쓰기를 거듭하면서 글로 세상을 바꾸는 신문기자라는 직업에 매력을 느끼게 됐다는 그녀는 그렇게 2년 간의 기자시험 준비 끝에 <나기자> 전형을 통해 한경 입사의 기회를 얻게 됐습니다.
기자의 꿈을 꾼 것은 졸업을 앞둔 2009년 겨울이었어요. 당시 ‘사르트르’가 주창한 ‘앙가주망문학’(사회참여문학)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어요.
기자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그 관심의 연장선상이었는데요. 직업으로 치면 ‘앙가주망’, 즉 사회참여에 가장 가까운 글쟁이가 신문기자였으니까요.
2년여의 준비를 하면서 면접이며 필기시험 등에서 줄줄이 미끄러지기를 십 수번 거쳤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기자는 하고 싶었으니까 공부를 그만 둘 수가 없었어요.
그러던 중 올해 9월 <나는 기자다>의 채용공고를 봤고, “이건 꼭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동안 내가 공부하고 연습한 것을 유감없이 발휘할 수 있는 기회라고 확신했으니까요.
솔직히 합격의 절반은 주변사람들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나기자> 특성상 전형과정 내내 인터넷에 기사공개가 되다 보니까 관심을 가지는 지인들이 많았어요. 응원도 많이 받았고, 전형을 거치는 내내 도움을 준 분들도 있으세요.
너무 고마워서 합격하고 나서 가장 먼저 든 생각도 “나를 응원해 준 많은 사람들에게 이제야 떳떳해 질 수 있겠구나”하는 것이었습니다.
의심이 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입니다. 실제로 일부 언론사에서 이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를 하는 기사도 봤었고요.
어차피 밑져야 본전이니 반신반의하면서 지원했어요. 신문부문 같은 경우 347명이 지원했고, 이 중 50명을 본선 진출자로 선발했었습니다.
예선 통과자들 기사를 보는데 색다르고 좋은 내용이 정말 많은 거예요. “확실히 창의력과 실력으로 뽑았구나” 하는 확신이 든 것도 그때였습니다.
소재에 대한 고민은 대학교에서 소설을 쓸 때부터 늘 해왔던 것이었어요. 학교에서는 늘 “많이 읽고, 많이 경험하라”고 가르쳤어요. 이것이 최소한의 기본인 것이지요. 문제는 이 같은 조건에서 ‘어떻게’ 소재를 이끌어내는지에 관한 부분입니다.
제 결론은 “소재란 것은 생각의 전환에서 기인한다”는 것이었고요. 생각의 전환을 잘 하는 사람은 부엌에서 요리를 하다가도 기발한 소재를 떠올린다는 것이 제 오랜 생각이에요. <나기자>의 소재를 생각해내는 과정도 여기에서 착안했어요. 어디를 가든, 무엇을 보든 생각의 전환을 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 것이지요.
예를 들어 본선 1차 경연의 ‘대학 심리상담사 실태’라는 소재는 모 예술대학의 연이은 자살사건에서 착안한 것이에요. 한 학생이 자살하기 며칠 전 교내 심리상담사에게 상담을 신청했다가, 대기자가 많아 끝내 상담을 받지 못했었다는 기사를 본 것이지요.
이때 “다른 대학들은 어떨까?”하고 생각의 전환을 했고, 국내 10개 국립대학 내 상담 인력 실태를 조사했어요. 예상했던 대로 대다수 대학의 상담인력이 부족하다는 데이터를 얻었고, 그것을 토대로 기사를 작성했습니다.
솔직히 ‘어렵다’는 생각은 안 했어요. 아니, 안 하려고 노력했어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으니 최대한 즐겨야 한다”고 일종의 ‘자기최면’을 걸면서 전형을 치렀습니다.
물론 고생한 적은 많지요. 대행 아르바이트 취재를 할 때는 6시간 내내 약속장소에서 추위에 떨며 ‘애인대행남’들을 기다렸어요. 젊은 20대 여자가 애인대행을 구한다고 하니 의심이 가는지 계속 ‘퇴짜’를 맞는 거예요.
다섯 시간 만에 겨우 약속을 잡고 ‘애인대행남’을 만났을 때는 반가워서 눈물이 날 정도였죠. ^^;
아직 ‘진짜 기자’가 아닌 ‘예비기자’ 신분인지라 ‘이 자질이 필요하다’고 결론 짓기에는 부족한 입장이지만, 적어도 <나기자>를 치르면서 ‘창의력’이 필요하다는 것은 확실하게 알았어요.
생각의 전환을 통해 좋은 아이템을 발굴하고, 색다른 접근방식을 구상하고, 흡인력 있는 기사를 써내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니까요. 또 ‘잘 움직이는 기자’가 되는 것도 필요한 것 같습니다. 현장을 가지 않고 쓰는 기사와 현장에 가서 쓰는 기사는 확실히 차이가 나니까요.
이 역시 예비기자 신분인지라 언급하기 주저되는 부분입니다. 다만 제 경우에는 대학교 때부터 단문쓰기 연습을 많이 했어요. 계기가 된 것이 김훈 작가인데, 이 분 소설이 단문쓰기를 잘 활용한 예이거든요.
단문쓰기를 잘 하는 글은 감정 절제가 뛰어나고 명료한 느낌을 줍니다. 제가 쓰고 싶었던 글도 그런 글이었던 탓에 주로 단문쓰기 연습을 했어요. 그리고 이러한 습관이 나중에 기사를 쓰는 것에도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신문기사의 상당수가 단문쓰기를 위주로 해서 구성되거든요.
일단 수습기간 동안은 ‘잘 움직이는 기자’가 되고 싶습니다. 하이힐보다 운동화를 신고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행동파 기자요. 이후에는 ‘똑똑한 기자’가 되고 싶어요. 좋은 기사,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기사를 쓰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기자가 똑똑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요. 이를 위해서는 공부도 많이 하고, 선배들의 가르침도 열심히 받아야 하겠지요.
궁극적으로 쓰고 싶은 기사는 독자와 교감하는 기사입니다. 독자들을 배우게 하는 기사는 수없이 많지만, 독자들을 감동하게 만드는 ‘울림’ 있는 기사는 의외로 찾기 어렵다고 생각해요. 제가 쓰고 싶은 기사는 후자에 해당하는 기사인데, 이를 통해 독자들에게 적게나마 꿈과 희망을 줄 수 있다면 큰 만족을 느끼게 될 것 같아요.
윤희은씨는 마지막으로 <나기자>는 “채용 과정이라기보다는 ‘정말 기자가 되고 싶은지’를 확인하는 과정이었다”고 말했는데요. 그녀의 말을 듣다 보니 취업에 있어서 ‘스펙’이라는 단순한 점수보다는 그 직업에 대한 열정이 결국은 좋은 결과를 만드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나는 기자다>의 치열했던 경쟁이 끝난 후 수많은 지원자들은 한결같이 합격과 불합격을 떠나서 많이 배우고 느낄 수 있었던 기회가 됐다고 합니다. 결과를 떠나 기자라는 직업을 원하는 스스로에게 의문을 던지면서 진짜 기자란 무엇일지 생각해 볼 수 있었던 대회가 아니었을까 싶은데요.
스펙 없는 인재채용 문화는 이제 윤희은씨를 비롯한 최종 합격자들의 어깨에 달려 있지 않을까요? 실력만으로도 충분히 그 분야에서 최선을 발휘할 수 있다는 믿음을 우리사회에 퍼지도록 만들면 좋겠습니다.
이제 정식기자가 되어 취재현장을 누비고 있을 윤희은씨의 활약을 기대하게 만든 그녀와의 만남이었습니다. ^^
©다독다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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