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겐 ‘그림’, 누구에겐 ‘가난한 현실’

2012. 6. 11. 09:18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식구들 누울 자리도 부족한 비좁은 아파트에 빨래 널 공간이 넉넉할 리 없었다.

누군가 베란다와 마주 보이는 나무기둥에 도르래를 걸어 빨래를 널자 하나둘씩

따라하기 시작했고 이 빛나는 아이디어는 순식간에 4개 동 전체로 퍼졌다. 빨래판

대신 세탁기가 베란다를 차지한 지금도 녹슨 도르래는 삐걱거리며 돌아가고 있다. 



▲5층에 사는 주민이 베란다 창문을 통해 빨래를 널고 있다. 빨래 한 장 널고 줄 한 번 당기기를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알록달록한 수건의 행렬이 하늘을 수놓는다.



노트북도 없이 카메라 가방만 달랑 메고 부산행 KTX에 오른 것은 2012년 4월에 접어든 지 일주일이 다 되어가던 어느 날이었다. 지방 출장은 보통 운전기사가 딸린 취재차를 배차 받지만 왠지 홀연히 떠나고 싶은 충동이 일어 열차를 택했다. 바로 전날까지 때늦은 겨울 추위와 비바람이 몰아쳤기에 두꺼운 점퍼 차림이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아직 쌀쌀한 바람을 맞으며 플랫폼을 걷는 동안에도 머릿속은 따사로운 봄볕 아래 하늘거리는 수백 조각의 빨래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오랜만에 떠나는 ‘나 홀로 기차여행’의 목적지는 부산 영도구 봉래동 시영아파트. 산비탈과 아파트 사이에 줄을 묶고 도르래를 이용해 빨래를 너는 신기한 장면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취재를 위한 사전 정보라고는 인터넷에서 본 아마추어 작가들의 단편적인 사진이 전부였다. 이것들을 퍼즐 맞추듯 조합해 만든 상상 속 풍경을 카메라에 담아 오는 것이 이번 출장의 목적이었다.



산비탈과 아파트 사이에 빨랫줄이?

1주일 전부터 일기예보를 꼼꼼히 챙기며 빨래 널기 좋은 날을 기다렸다. 때마침 이날은 강풍과 함께 전국에 쏟아진 비가 밤 사이 그치면서 맑을 것이라는 예보가 있었다. 그럼에도 부산으로 향하는 내내 걱정이 떠나지 않았다. 과연 예보대로 날씨가 좋을지,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그림’이 될 만큼 많은 빨래가 널렸을지, 산비탈과 아파트 사이에 걸어놓은 빨랫줄을 혹시 철거하지는 않았을지 등등. 사실 며칠 전 봉래동 주민자치센터에 전화를 걸어 빨랫줄의 존재에 대해 물었을 때 ‘금시초문’이라는 직원의 답변을 들었던 터라 더더욱 불안했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빨래 몇 장만이 띄엄띄엄 널려 있어 ‘그림’이 안 되는 점만 제외하면 모든 것이 완벽했다. 부산의 하늘은 맑았고 봉래동 시영아파트의 낡아빠진 외벽과 산비탈 사이에는 상상한 것보다 많은 수백 가닥의 빨랫줄이 늘어져 있었다. 시간이 벌써 오후로 치닫고 있었기에 마음은 한없이 조급해졌다. 결국 지나가는 주민을 무작정 불러 세웠다. “할머니, 오늘 빨래 안 너세요?” 뜬금없는 질문에 돌아온 대답은 “오늘 같은 바람에 빨래 널었다가는 다 날아가뿐다.”였다. 비바람은 물러갔지만 아직 기세가 누그러지지 않은 강풍이 문제였다.

아무래도 오늘은 틀린 것 같다고 혼잣말을 내뱉으며 차근차근 아파트 단지를 돌아보기로 했다. 봉래동 시영아파트는 지난 1년 내내 시끄러웠던 한진중공업이 한눈에 들어올 만큼 높은 산동네에 자리잡고 있었다. 단지 뒤편 10여 미터 높이의 산비탈에서 시작된 수백 가닥의 빨랫줄이 마주 선 아파트 4개 동 외벽으로 이어져 있다. 놀라운 것은 도저히 사람의 손이 닿을 수 없는 5층 높이의 빨랫줄에 수건과 옷가지들이 걸려 있다는 사실이다. 그 높은 곳에 빨래를 너는 비결이 바로‘도르래’이다. 자세히 살펴보니 산비탈에 박아놓은 쇠막대와 베란다 외벽에 도르래를 설치하고 빨랫줄을 매어 놓았다. 빨래를 하나씩 집게로 집어넣은 다음 다른 한쪽 줄을 잡아 당기면 빨래가 당겨진 길이만큼 허공을 향해 나아가는 원리였다.

도르래 빨랫줄의 역사는 3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식구들 누울 자리도 부족한 비좁은 아파트에 빨래 널 공간이 넉넉할 리 없었다. 누군가 베란다와 마주 보이는 나무기둥에 도르래를 걸어 빨래를 널자 하나둘씩 따라하기 시작했고 이 빛나는 아이디어는 순식간에 4개 동 150가구 전체로 퍼졌다. 그 후 빨래의 주인이 여러 번 바뀌고 빨래판 대신 세탁기가 베란다를 차지한 지금까지도 녹슨 도르래는 30년 전 모습 그대로 삐걱거리며 돌아가고 있다.



빨래 대신 매달린 동태 다섯 마리

▲빨래 대신 찍은 동태 다섯 마리는 날씨가 고르지 않은 출장 첫날 카메라에 담은 유일한 ‘그림’이었다.



평상에 느긋하게 앉아 도르래에 얽힌 사연을 듣다 보니 빨래 대신 허공에 매달린 동태 다섯 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해가 뉘엿뉘엿 저물기 시작하자 베란다에 모습을 드러낸 할머니가 동태를 걷기 위해 도르래를 돌리기 시작했다. 동태로 반찬을 만들 참이었던 할머니는 ‘황혼을 배경으로 동태 사진을 찍고 싶다’는 기자를 위해 도르래 돌리던 손을 멈추었다. ‘꿩 대신 닭’이라고 했던가? 빨래 대신 찍은 동태 다섯 마리는 출장 첫날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던 유일한 ‘그림’이었다.

다음날 아침이 되자 바람이 한결 잦아들었다. 아파트에 도착하자마자 숨 돌릴 겨를도 없이 뒤편 비탈쪽으로 향했다. 전날까지 빈 빨랫줄만 어지럽게 허공을 가르고 있던 ‘현장’에서 그동안 상상 속에서 그려왔던 장면이 거짓말처럼 펼쳐지고 있었다. 겨우내 눅눅해진 이불이며 각종 옷가지, 수건 등 빨래 수백 장이 봄볕을 향해 만국기처럼 펄럭이고 있었다. 마치 사진기 앞에서 얼굴이 가려지지 않게 애쓰는 결혼식 하객들처럼 나를 향해 도열한 ‘빨래만국기’를 향해 정신없이 셔터를 눌러대기 시작했다. 적막할 정도로 조용한 산동네 아파트에서 혼자 분주히 산비탈을 오르락내리락하기를 두어 시간, 어느새 목덜미에서는 땀이 흥건하게 배어나왔다. 어제만 해도 입고 오길 잘했다고 생각했던 외투가 오늘은 왜 이리 두껍고 거추장스러운지…. 어느 순간“야, 이거 그림 되는데!” 하는 흥분과 희열로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을 느끼며 카메라를 내려놓았다.


▲때 아닌 강풍이 사그라진 후 주민들이 널어놓은 빨래가 봄바람에 나부끼고 있다(왼쪽). 산비탈에 박아둔 쇠막대에 도르래를 설치한 후 빨랫줄을 걸어놓았다(오른쪽). 힘겹게 빨랫줄을 당기는 할머니의 두 손에 고단했던 세월의 흔적이 새겨져 있다(오른쪽 아래).



동태 다섯 마리 널어놓은 착한 마음

산비탈에 주저앉아 숨을 돌리는 사이 옆에서 나물을 캐던 할머니가 “요새 젊은 사람은 하나둘 떠나고 노인 가구만 남다 보니 빨래도 점점 줄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곳에서 30년 넘게 살면서 3남매를 다 키워낸 것은 스스로

대견스럽지만 가난한 삶이 이제 정말 지긋지긋하고 창피하다며 한숨을 쉬었다. 그러고 보니 어제오늘 베란다에서 빨래를 널던 주민들이 극구 취재를 사양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내가 단순히 신기하고 재미있는 ‘그림’으로 받아들였던 풍경이 이들에게는 단순한 고달픔을 넘어 아무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은 ‘가난의 민낯’ 같은 것이었으리라. 뒤늦게나마 하늘을 수놓은 알록달록한 빨래 조각마다 30년 서민의 설움과 애환이 담겨 있었음을 통감하고는 마음이 숙연해졌다.

아파트를 나서며 문득 돌아보니 빼곡히 널린 빨래 사이에서 동태 다섯 마리가 여전히 몸뚱이를 흔들고 있었다. 잠시 눈을 감고 이곳에서 만난 모든 것에게 작별을 고한 후 다시 서울로 향하는 길, 산 중턱에 거대하게 자리잡은 ‘뉴타운 홍보관’앞에 이르자 나도 모르게 걸음을 멈췄다. 이제 몇 해 지나면 봉래동 시영아파트는 사라지고 주민들도 어디론가 뿔뿔이 흩어질 것이다. 그러나 세월의 때처럼 두텁게 녹이 슨 도르래와 빨랫줄, 낯선 사진쟁이를 위해 하루 넘게 동태 반찬을 양보해준 할머니의 은근한 인심만은 빛 바랜 사진 속에서나마 오래도록 간직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이 글은 한국언론진흥재단 <신문과 방송> 6월호 중 한국일보 사진부 박서강 기자의 글을 옮겨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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