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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와 맞짱토론하는 고등학생 딸아이의 비결



 



내가 언제부터 신문을 읽기 시작했는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아마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였을 것이다. 그때부터 아주 조금씩이라도 거의 매일 읽어왔으니, 거의 6년째 되어가는 셈이다.

그러면서 신문 읽기는 차차 내 삶의 일부가 되어갔고, 이젠 정말 밥 먹을 때에도 신문을 펼쳐 본다. 그만큼 신문은 내 삶에서 각별한 존재가 되었다.

나는 상식을 쌓기 위해서나 강요에 의해서 신문을 보기 시작한 것은 아니다. 어렸을 때부터 책 읽기를 정말 좋아했는데, 초등학교 5학년 때의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오니 딱히 읽을만한 것이 없었다.

가만히 앉아서 둘러보니 신문이 눈에 들어왔고, 이거라도 읽어보자는 심정으로 읽기 시작했다. 그동안 신문은 그냥 재미없는 것, 아빠만 읽는 것이라는 생각이 박혀 있었는데 막상 읽어보니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경제, 정치 분야는 어렵게 느껴져서 연예, 방송 분야부터 보기 시작했다. 몇 달이 지나면서 점점 읽는 범위를 넓혀갔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자 거의 모든 기사를 읽는 수준에 이르렀다.

요즘은 하루에 한 시간 넘게 신문을 정독하며 나만의 즐거움에 빠져든다. 그러고 보니 신문 읽기가 ‘즐겁다’라는 말이 정말 알맞은 표현이라고 생각된다. 이제는 나의 즐거움을 나누어 보고자 한다. 

 먼저 신문을 읽는다는 자부심과 신문을 통해 얻는 판단력, 지식 등이 나를 즐겁게 한다. 신문 읽기는 현재 정치, 경제, 사회 상황 등에 대해 객관적으로 알고 판단할 수 있게 해준다. 물론 신문마다 성향이 달라서 절대적으로 객관적이라고 보기는 힘들지만, 나름의 소신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는 능력을 키워준다.

정치 분야를 예로 들 수 있다. 또래 친구들을 보면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말에 휩쓸려 제대로 정황을 알지도 못한 채 무조건 대통령이나 정치인을 욕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너무 주관적이고 편견에 사로잡힌 사고로 판단하는 것이다.

나는 신문을 많이 읽다보니 이런 무조건적인 비판의 태도와는 다른 객관성이 확립됨을 느꼈다. ‘대통령이 이러이러한 것은 비난받아 마땅하나 거기엔 이런 장점이 있고, 저러한 것은 그의 업적임이 분명하다’ 뭐 이런 식의 사고랄까?

이런 차별화된 사고 덕분에 나의 판단력에 대한 자부심이 생겼고 더욱 신문을 읽고 싶은 의욕으로 가득 찼다. 점점 쌓여가는 상식에 대한 자신감 또한 생겼는데, 이는 논술 등 다른 분야에 대한 자신감으로 발전했다.

또 신문을 읽고 아빠와 나누는 토론 형식의 대화도 나에겐 큰 즐거움이다. 나의 의견을 말하고 아빠의 주장도 들으면서, ‘아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하는 깨달음을 얻고 나의 생각의 폭이 더 넓어지는 것을 느낀다.


약간 자만에 찬 표현일수도 있는데, 그 자부심에서 오는 우월의식은 나를 더 성장시키는 원동력이 되는 것 같다. 마치 신문이 나의 멘토같은 느낌이랄까?

또한 신문읽기는 나의 진로 설정의 계기가 되고 그 진로를 향한 과정에 도움을 주었다. 나는 지금 학교 시사 경제 동아리에 소속되어 있다. 경영 • 경제학과에 지원하기 위해 들어갔는데, 그런 마음을 갖게 만든 것이 바로 신문이다.

나는 그동안 신문을 보면서 경제면에 큰 흥미를 느꼈다. 경제가 그야말로 세계를 쥐락펴락하는 것을 알게 되었고, 어찌보면 가장 민감하고 중요한 분야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경제면에 나오는 기업가나 기업 상품 등에 큰 매력을 느꼈다.

비리로 얼룩진 정치나 원래 관심이 없었던 연예 등에 비해 더욱 호감이 갔다. 결국 난 진로를 고민하면서 범위를 경영 • 경제학과로 좁히게 되었고, 관련 동아리에 지원을 했다.

물론 동아리 가입 면접 때도 신문 덕을 톡톡히 봤다. 질문이 ‘최근에 본 경제 관련 기사를 말해 보시오’였는데, 난 바로 전날 읽은 기사의 내용을 말해 당당히 합격되었다. 그저 재미로 읽기 시작한 신문이 나의 진로에도 영향을 미칠 줄은 몰랐다.

동아리에 들어가서도 경제 신문을 만드는 과정에서 당당히 편집자와 기자를 겸하게 되었다. 이러한 경험은 신문 읽기의 즐거움이 직업적 성취로도 이어질 수 있음을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끝으로 신문은 읽을 때마다 새로운 느낌을 주고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게 해준다. 나는 신문을 매일 읽으면서도 읽을 때마다 새로움을 느낀다. 매일 벌어지는, 다양하고 때로는 상식 밖인 사건들을 보면서, 이 일들이 실제로 우리 주위에서 일어난다는 것을 실감할 때마다 놀라움과 신선함을 느낀다.

마치 한편의 단편소설을 읽는 기분이랄까? 기사 하나하나에 감정을 이입해보고 그 사람의 입장이 돼보기도 하면서 가끔은 정말 책을 읽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고등학생이 되어 책 읽을 시간이 부족한 나로서는 읽기 욕구를 신문에서 충족하게 된 것 같다.

이렇듯 신문이 나에게 주는 즐거움은 무궁무진하고 다양하다. 좀 엉뚱해 보일 수 있지만, 지난 6년간 신문화 함께하며 단단히 정이 들어 버린 것 같다.

그동안 나와 함께 해주고 즐거움을 준 신문에게 고맙다. 앞으로도 신문은 내 인생의 멘토로서 함께 할 텐데, 신문에서 얻을 즐거움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다독다독

이 글은 한국언론진흥재단 <2010년 신문논술대회 수상작 모음집> 중 고등부 은상 수상작 백시온님의 ‘나의 훌륭한 멘토, 신문’을 옮겨온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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