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1면을 내 얼굴로 채울 수 있는 ‘신문 박물관’

2011.05.16 09:24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가정의 달 5월, 따뜻한 봄날을 맞아 가족나들이를 준비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모처럼 나서는 나들이 길, 이왕이면 문화도 함께 즐길 수 있다면 더 좋을 것 같은데요. 다양한 테마 박물관이 밀집한 광화문 인근은 문화와 재미를 한번에 즐길 수 있는 명소로 유명합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특색 있는 곳을 꼽으라면 동아 미디어센터에 있는 ‘신문 박물관’을 들 수 있을텐데요.  



신문 박물관에 입장하면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이 세계 80여 나라에서 발행된 2000년 1월 1일자 130여종의 신문입니다. 130여종의 신문을 한자리에 모아 문화적 특성을 비교해 볼 수 있도록 전시하고 있는데요. 국내외의 주요신문과 뉴스 전문채널의 보도 상황을 PDP 대형화면을 통해서도 볼 수 있습니다.


가장 재미있게 본 코너, ‘신문의 역사’


이곳에서 가장 흥미로운 볼거리로 꼽히는 전시는 ‘신문의 역사’코너인데요. 1883년 시대부터 2000년 시대까지 신문의 변천사를 볼 수가 있습니다. 그 시대에 있었던 사건, 사고는 물론, 오늘날 신문이 있기 까지를 재미있게 구성하고 있는데요.

“배우자! 가리키자! 다 함께”라는 브나로드 운동의 포스터를 통해 계몽운동의 열기도 느낄 수 있으며, 일제에 의해 삭제된 신문지면을 보면서 식민지 시절의 암울함도 느낄 수가 있습니다. 일제시대 해방 후에는 박정희 정권의 언론 억압책과 회유책, 민주화 항쟁 과정에서 겪은 신문의 진통 등 생생한 자료도 전시되어 있죠.



1972년 10월부터 12월까지 신문은 검열을 받아야만 발행할 수 있었습니다. 신문이 나오기 전 계엄사령부 검열관이 검토하여 기사의 논조와 크기, 배치에 이르기까지 일일이 수정하게 했는데요. 기사 삭제에 대비해 신문사는 늘 여분의 기사를 미리 준비해야 했으며, 검열을 마친 신문은 ‘계엄사령부 군검열필’ 도장을 찍은 후에야 나올 수 있었다고 합니다. 

199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언론통폐합으로 폐간되었던 신문들이 복간되면서 신문 지면에도 새로운 혁신이 이루어졌답니다. 종합뉴스, 경제, 스포츠의 3개 묶음으로 구분한 섹션신문을 발행하며, 컬러 지면, 한글 가로쓰기 등으로 인해 ‘읽는 신문’에서 ‘보는 신문’으로 점차 변화해 갔습니다.


신문은 역사의 파노라마 


신문의 1면은 그 자체로 역사의 파노라마인데요. 을사보호조약에서부터 광주학생 사건 공판, 박정희 대통령의 선거, 박종철 고문치사 등 역사적 사건들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그 시대를 규정하는 각각의 사건들이 이후의 사건들과 어떻게 연관되었고, 역사의 굴곡을 채웠는지 당시의 시선과 언어로 볼 수가 있습니다. 


요즘 시대에는 많이 생소하지만 옛날에는 신문팔이 소년이 던지던 ‘호외’가 있었습니다. 호외는 특별한 일이 있을 때에 임시로 발행하는 신문으로, 오늘날처럼 시시각각 벌어지는 수많은 사건들을 전파매체에 의해 신속히 아는 것이 불가능했던 시대에는 호외가 속보를 전해들을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습니다. 


다른 한쪽에는 1950~60년대 기자의 책상과 프레스카드, 보도완장 등을 전시하고 있는데요. 어떠한 현실 앞에서도 초연한 자세로 기록하고 보도해야 한다는 운명은 때로는 가혹하기도 하지만, 이러한 ‘기자정신’ 이 없었다면 오늘날 신문은 사회의 혈관으로 남지 못했을 겁니다. 



신문이 전달하는 정보는 그 내용이 전부가 아닌데요. 의미 있는 정보라 할지라도 신문의 디자인 혹은 편집에 의해 그 내용은 우리의 머리 속에 깊이 새겨지기도 하고 혹은 쉽사리 잊혀지기도 하죠. 신문 광고도 그렇습니다.

한국에서는 광고를 게재할 매체도 없었던 탓에 19세기말까지 광고가 등장하지 않았었습니다. 개항 이후 외국의 무역회사가 들여 온 상품이 1889년 한성주보에 게재된 것이 우리나라 신문광고 1호로 기록되고 있죠.

당시에 실렸던 신문광고를 보면 약 광고가 주류를 이루었고 일제 시대로 접어들면서 양장, 시계, 조미료 등 근대적 문물이 소개되었으며 해방 후 1969~79년대에는 가전제품의 광고가 두드러지는데요. 신문 광고를 통해 당시의 생활수준과 유행을 가늠해 보고, 한국의 경제가 변천해 온 모습을 공식적인 통계보다 더 실감나게 이해할 수 있는 코너였습니다. 


“한 장의 사진은 천 마디의 말을 대신한다.” 진부한 말이긴 하지만 전시된 사진들을 보면 그 말이 지독한 사실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진을 찍기 위해 셔터를 눌렀던 사진기자의 숨막히는 긴장을 사진으로 느끼게 해주네요. 


소위 사람들은 신문 지면을 메우는 말들은 딱딱하고 어렵다고 합니다. 하지만 신문 소설과 삽화, 신문 만화, 시사만평 등이 정착되면서 신문에는 다양한 볼거리가 많아졌죠.
특히, 시사만평은 풍자와 해학을 통해 당대의 상황을 날카롭게 묘사해 많은 독자들에게 인기가 많았는데요.  최초의 시사만평은 1909년 이도영이 대한민보에 그린 삽화로, 식민지 시기 세태를 날카롭게 묘사한 독자만화가 널리 유행했습니다. 아래 1987년에 일어났던 사건을 표현한 시사만평도 감상해 보세요. 



1987년 88서울올림픽을 앞두고 북한의 테러로 인한 KAL기 폭파 사고가 있었습니다.
당시 탑승하고 있던 승객 115명 전원이 사망하는 대형 참사였는데요. 일본인 ‘하치야 마유미’라는 이름으로 탑승했던 김현희는 1988년 1월 15일 기자회견을 가지고 본인이 KAL기 폭파범이며 북한 김정일의 사주로 88서울올림픽 방해, 선거분위기 혼란 야기, 남한 내 계급투쟁 촉발을 목적으로 폭파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를 만평으로 북한을 ‘괴뢰’로 표현하여 당시 부정적인 여론에 대해 묘사하고 있습니다.



시대가 많이 지났지만 지금 보아도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지 톡톡 튀는 아이디어의 감탄할 수 밖에 없네요. 





미디어영상관 4층에는 신문 제작을 체험해 볼 수 있는 코너와 신문 퀴즈 게임 등 직접 할 수 있는 코너가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신문 제작 체험코너에는 실제 신문사에서 사용하는 신문제작 시스템을 이용하여 본인이 기사를 쓰고 직접 찍은 사진으로 편집하여, 나만의 신문을 만들 수 있는 코너라 아이들에게도 인기가 좋다고 합니다. 



신문 박물관에 왔는데 신문도 없이 그냥 간다면 왠지 서운한 느낌이 들 것 같지 않나요? 그럼, 기념신문제작 코너를 가보셔도 좋습니다. 12개 중에 1개를 배경으로 선택하여 사진을 찍고 기사 내용을 몇 마디 적은 후 인쇄를 하면 당일 신문 1면에 방금 찍은 사진이 나오는데요. 



가족과 함께 찍어 좋은 추억으로 남길 수도 있고, 신문 1면에 나왔다고 친구들에게 자랑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아직 아이들에게 신문은 어렵게만 느껴질 수 있는데요. 다양한 체험을 통해서 신문과 좀더 가까워질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는 건 어떨까요. 아이들과 함께 문화와 재미를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신문 박물관에서 좋은 추억을 쌓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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