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을 '3D'로 읽어야 하는 이유

2012. 7. 10. 13:10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신문을 읽지 않았다. 그때의 나는 화가와 같았다. 화가가 풍경화를 그릴 때 시야에 보이는 풍경을 모두 캔버스에 담지 않듯이 나의 캔버스에도 세상의 풍경 중 내가 보고 싶은 것들, 그리고 싶은 것들만 선택해서 그렸다.





  

신문을 읽었다. 나는 사진작가가 되었다. 카메라 렌즈 안에 들어 있는 세상은 인위적으로 선택하여 없애 버리거나 지워 버릴 수 없다. 신문을 읽으면서 세상을 내가 보고 싶은 대로만 보고 사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지를 알게 되었다. 신문에는 내가 알아야 했지만 미처 알지 못했던 것들이 있었고 정면으로 마주 봐야 했지만 외면했던 것들이 있었다. 렌즈 안 나의 세상은 그대로 인화지에 고스란히 담겼다.


신문을 매일 읽고 또 읽었다. 나는 카메라맨이 되었다. 이제 나는 움직이는 세상을 담아 낼 수 있게 되었다. 신문을 매일매일 자세하게 읽다 보니 새로운 발견을 하게 되었다. 지면 안의 기사들은 고정되어 있거나 서로 단절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었다. 한 가지 사안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분야와 관련되어 있었다. 이 숨어 있는 연결 고리를 찾아낸 것이다. 이 연결 고리를 찾아 신문을 읽게 되면 더 깊이 있게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 그리고 이 연결 고리는 결국 내 삶과 이어져 있다는 것도 알게 된다. 인화지에서 스크린으로 옮겨진 나의 세상은 역동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성향이 다른 두 개의 신문을 함께 읽었다. 나는 3D 입체 영상을 만들 수 있는 기술자가 되었다. 우리는 좌우 눈을 한쪽씩 감을 때 양쪽 눈이 보는 풍경이 다름을 알 수 있다. 우리의 뇌는 이 다른 두 개의 풍경을 강제로 교차시켜 사물을 입체적으로 보이게 한다. 3D 촬영도 마찬가지이다. 사람의 눈과 눈 사이의 거리만큼 가격을 두고 카메라 2대를 설치하여 함께 촬영한다. 그러고 스크린에서 두 개의 영상을 동시에 보여 주면 사람들은 영상을 입체적으로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신문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이다. 성향이 다른 2개의 신문을 함께 읽으면 그날의 중요한 사안을 두 가지 시각을 통해 볼 수 있다. 이 두 개의 시선을 하나로 조합했을 때 그 사안을 입체적으로 바라 볼 수 있게 된다. 나의 세상은 평면의 스크린에 담겨 있지만 나의 눈은 영상을 입체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된 것이다. 


신문 읽기와 함께 나의 사고는 평면에서 입체를 만들어 낼 수 있도록 훈련되었다. 이러한 사고는 비단 신문을 읽을 때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나의 삶 곳곳에서 유용하게 활용되고 있다. 특히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필요할 때 많은 도움을 준다. 누군가 말했다. 새로운 것이란 세상에 없는 것이 아니라, 버젓이 있으나 아직 우리가 발견하지 못한 그 ‘무엇’이라고. 다양한 시각을 통해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사고야말로 숨어 있는 창의성을 찾아낼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힘이 아닐까.


이제 냄새로 맡을 수 있고 촉감도 느낄 수 있는 4D의 시대가 도래한다고 한다. 신문 읽기와 함께 나는 얼마나 더 발전할 수 있을까.



이 글은 한국언론진흥재단 <2012년 신문논술대회 수상작> 중 일반부 금상 이선미 님의 '평면에서 입체를 볼 수 있게 한 신문 읽기'를 옮겨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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