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8. 29. 11:45ㆍ다독다독, 다시보기/지식창고
인터넷을 하다가 한 기사를 접하게 되었다. 위안부 할머니들을 주제로 한 글이었다. 그 기사를 읽게 된 이유는 ‘종군 위안부라니 무슨 그런 망발을…’ 하는 과격한 제목 때문이었다. 평소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해 관심도 많았지만, 제목이 제목인지라 읽고 싶다는 호기심이 크게 생겼다. 그러곤 천천히 읽어 나갔다.
▲서울 종로구 중학동 위안부 소녀상의 어깨 너머로 보이는 주한일본대사관[출처-서울신문]
다 읽어 보고 나서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핵심 내용은 1930년대부터 1945년 일본이 패망하기까지 강제로 전선에 끌려가 일본군의 성노예가 된 여성들을 지칭하는 말인 ‘위안부’와 ‘종군위안부’는 같다고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지만, 사실 뜻이 하늘과 땅 차이라는 것이다. 설명을 하자면 우선 종군위안부라는 말은 군대를 따라 전쟁터로 나감, 전투 목적 이외의 일로 군대를 따라 같이 다님이라는 ‘종군’(從軍)이라는 단어와 ‘위안부’라는 단어가 붙어서 된 말이다. 비슷하게 쓰이는 ‘종군기자’라는 말과 같이 ‘자신의 의지 혹은 자발적 태도’라는 의미가 추가되고 만다. 따라서 종군위안부는 ‘일본군의 강제에 의한 위안부’가 아닌 ‘자신의 의지로 된 위안부’를 뜻하는 말이 된다.
그때 나는 ‘종군위안부’, ‘위안부’ 그 둘을 구분 없이 써 왔다. 오히려 좀 더 유식해 보이는 종군위안부라는 말을 자주 썼다. 그런 내가 너무 부끄러웠다. 육체적·정신적으로 오랜 세월 고통받아 오신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로해 주지는 못할망정 잘못된 단어의 사용으로 가슴에 또 한 번 상처를 안겨 드리는 것 같아 죄송할 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다짐했다. 이 글을 평생 기억하기로, 그리고 ‘종군위안부’같이 잘못된 명칭을 쓰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고쳐 주기로.
그 다짐을 하고 나서부터 약 6개월이 채 안 되었을 때 내게 기회가 왔다. 역사 탐구 대회를 나가게 된 내 친구들이 주제를 ‘위안부’로 선정한 것이다. 전의 나처럼 위안부 할머니들께 상처를 주는 ‘종군위안부’라는 말을 하지 않도록 나는 그들에게 다가가 적극적으로 가르쳐 주었다. 예상대로 친구들 중 대부분이 그 사실을 알고 적잖이 놀란 눈치였다. 그때 친구들을 보는 그 기분이란! 내가 가르쳐 줬다는 뿌듯함에 이제 바른 단어를 알게 된 사람들이 늘어났다는 그 흐뭇함. 그것들이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죄송함을 조금이나마 갚은 듯해서 정말 다행이었다. 그 기억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문득 생각이 하나 든다. ‘내가 만약 그때 그 온라인 기사를 보지 않았더라면….’ 정말 보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여전히 나는 친구들과 ‘위안부’ 얘기가 나올 때마다 ‘종군위안부’라는 단어를 언급했을 것이고, 역사 탐구 대회를 준비하는 친구들에게 도움도 줄 수 없었을 것이다. 사실 단어 하나 고쳐 쓴다는 게 사소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현재 우리 역사에는 잘못 쓰이고 있는 단어도 많고, 잘못 알고 있는 사람도 많다. 이런 상황에서 역사의 잘못된 부분을 꼬집어 주는 이 기사는 단순한 글이 아닌 사람들을 깨우치게 하여 우리 역사를 스스로 고쳐 나가게 하는 일종의 ‘촉매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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