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왕들의 특별한 공부법 살펴보니

2012. 9. 24. 09:37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오랫동안 ‘조선’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참으로 대조적이었습니다. 역사적 지식이 부족한 탓이겠지만 개인적으로 조선을 대표하는 이미지는 두 가지였지요. 하나는 ‘폐쇄적이며 불평등한데다가 당파싸움마저 일삼던 부패한 나라’라는 밑바탕이었고, 다른 하나는 ‘세종, 정조, 성종 등의 성군을 배출한 왕의 나라’라는 자부심이었어요. 제 머릿속에 자리 잡은 이미지의 간극을 어떻게 메우면 좋을까요? 그러던 중 우연한 기회에 조선왕가의 공부법에 관한 자료를 읽게 되었습니다. 말하자면 학창시절 구구단처럼 외던 ‘태종태세문단세……’로 이어지는 조선 오백년 집권 왕가의 교육비법인 셈이지요. 그것을 접하며 역사에 대한 무지와 조선에 대한 오해로 인해 놀라움과 미안함이 불쑥 찾아왔습니다. 



[출처-서울신문]




조선은 1392년 건국하여 1910년 멸망하기까지 무려 518년간 존속한, 세계사에서도 그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긴 역사를 지닌 나라입니다. 500년에 이르는 참으로 유구한 세월동안 조선은 큰 전란기 몇 차례를 제외하고 비교적 평화로움을 유지하며 살았다고 합니다. 평화와 번영과 심지어 오늘날의 대한민국에서도 실시하지 못하는 무상의료(혜민서), 무상교육(성균관) 제도마저 존재했던 복지를 품고 있었고요.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그런데 역사학자들은 조선이 긴 세월 평화와 번영을 유지했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를 왕실만의 체계적이고 훌륭한 교육제도와 공부법이라 이야기합니다. 왕들의 공부법 안에 조선 집권 오백년의 비밀이 꽁꽁 숨겨져 있을 것만 같습니다. 



▲조선왕조실록[출처-서울신문]





지덕체의 미덕을 갖춘 군주 


조선에서 세자로 책봉된 이가 교육을 받는 궁극적인 목표는 바로 ‘지知, 덕德, 체體’의 미덕을 갖춘 훌륭한 군주가 되는데 있었습니다. 일단 세자가 되면 서연과 경연에 열중해야 했습니다. 서연이란 유교 경전과 역사서를 읽고 토론을 하며 정기시험까지 치루고 통과해야 하는 교육을 말합니다. 한마디로 왕이 되기 위해 받는 아주 특별한 교육인 셈이지요. 놀라운 것은 조선의 왕자들이 서연을 얼마나 치열하게 치루었는가 하는 사실입니다. 기록에 따르면 그들은 보통 밤 11시에 잠이 들어 새벽 4시에 기상한 뒤 하루도 빠짐없이 거의 온종일 공부에 매진했습니다. 아침, 정오, 저녁, 야간 하루에 4차례 시간을 나누어 공부를 했다고 합니다. 이 정도면 현재 고3 수험생과 비교해도 결코 뒤지지 않는 공부량이지요. 이 서연이 얼마나 중요했느냐 하면 아무리 장자라 할지라도 서연을 통과하지 못한 자는 결코 왕이 될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조선에서 장자는 왕의 자리를 숙명적으로 안고 태어난다고 믿었던 저의 어리석임이 산산조각 나는 순간입니다. 실제 조선 역대 27명의 왕 중에 장자가 왕이 된 것은 불과 7명에 불과합니다.


서연을 이해하는 것은 왕실의 교육을 이해하는 초석입니다. 실제로 서연은 오늘날 교육과정에 그대로 채택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뛰어나지요. 서연에 관한 자료를 읽다가 흥미로운 부분들을 여럿 발견하였습니다. 먼저, 서연에 참석한 세자가 치르는 시험의 형식입니다. 회강이라 불리던 정기시험은 한 달에 두 차례 열렸는데 그 형식은 스승과 마주앉아 공부했던 책의 내용을 암송하는 것이었습니다. 시험을 치를 때는 흥미롭게도 부정을 방지하기 위해 외부에서 객을 초청하기도 했습니다. 


또 눈에 띄는 것은 ‘토론식 수업’입니다. 단순한 암기를 벗어나 완벽히 몸과 마음으로 체득해야 가능한 것이 학문에 대한 토론이지요. 기록을 보면 어린 정조와 영조의 토론식 수업이 나오는데 그 내용이 의미심장합니다.(토론은 교육관이나 대신, 때론 왕이 직접 참가하기도 했습니다.) 


영조는 정조에게 묻습니다. 소인이 군자를 보고 가리는 것은 어떤가? 정조는 대답합니다. 잘못입니다. 영조는 다시 묻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좋은가? 이에 어린 정조는 대답합니다. 처음부터 악을 행하지 않아야 합니다. 영조는 질문을 바꾸어 다시 묻습니다. 나라에 임금을 세우는 것은 임금을 위해서인가, 백성을 위해서인가? 이에 너무 영특해 주변 사람들의 염려를 불러왔다고 전해지는 어린 정조는 대답합니다. 군사를 세우는 것은 백성을 편안히 하기 위해서입니다.


토론은 단답형의 대답을 선택할 수 없습니다. 자신의 생각을 자신만의 언어로 풀어 조리 있게 말할 수 있어야 함을 기본으로 합니다. 조선이 왕의 교육과정에 단순 암기식 교육체계를 뛰어넘어 문답식 토론을 펼쳤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앎을 단순한 앎으로 끝내기 보다 자신의 가치관을 논리정연하고 체계적으로 완성하는 교육을 지향했다는 의미라 받아들여지기 때문이지요. 



▲정조가 어린 시절 쓴 어필(좌), 역대 임금 필적 모음집인 열성어필에 실린 인조 필적(우) [출처-서울신문]





도덕과 윤리야말로 진짜 공부다


1400년 1월 1일 <정종실록>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실려 있습니다.



“임금의 학문은 글만 익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바르게 하여야 합니다. …… 마음에 숨김이 있다면, 한마디 말이나 한 가지 일의 응함에 반드시 바른 것을 얻지는 못할 것입니다.”



임금의 학문의 근본은 더 많은 지식을 쌓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바르게 하는데 있었습니다. 즉, 덕을 갖춘 진정한 성군이 되기 위한 바탕을 쌓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 덕의 근본이 바로 효의 실천이었습니다. 부모와 윗사람에 대한 예절이야말로 마음을 바르게 하기 위한 기본이었던 것이지요. 조선의 왕자들은 아침에 일어나면 가장 먼저 부모에게 문안 인사를 올리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밤에 잠들기 전에도 문안 인사를 드려야 했음은 물론이고요. 왕실에서 이토록 효를 강조한 이유는 부모를 섬길 줄 알아야 백성을 섬길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라고 여겨집니다. 


오늘날 교권의 붕괴, 천인공노할 패륜사건 등이 하루가 멀다하고 뉴스를 장식하고 있습니다. 지식의 확장만을 강조한 나머지 ‘마음공부’를 게을리 하게 된 씁쓸한 결과물인 것 같아 마음이 좋지 않네요. 돌아보면 결국 사회에서도, 각자의 삶에서도 진정한 승리자는 지식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 마음이 건강하고 강인한 사람이지요. 조선은 그 사실을 진즉에 깨치고 있었나 봅니다. 





마음 뿐 아니라 몸의 단련도 필수


빡빡한 교육과정 속에서도 조선의 왕들은 운동, 신체단련을 필수적으로 치러야 했습니다. 학습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선 적절한 운동이 효과적이라는 뇌의 비밀을 조선의 교육자들이 먼저 알았던 걸까요? 어쨌든 왕자들은 활쏘기, 말타기, 격구(서양의 폴로와 비슷한 경기라 하네요.) 등을 하며 틈틈이 건강을 다졌습니다. 


스마트폰과 온라인게임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거나 휴일의 많은 시간을 보내는 오늘날의 수많은 청소년들에게 조선 왕의 균형적인 교육과정을 소개해준다면 좋을 것 같네요. 결국 오랫동안 효율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힘은 체력에서 나오거든요. 며칠 전 전국 특목고 전교1등들의 공부비법을 소개한 프로그램에서도 이를 뒷받침할만한 결과가 나왔는데, 잠도 안 자고 코피를 쏟으며 공부만 할 것 같은 특목고 전교 1등들의 평균 수면시간은 놀랍게도 하루 6시간 이상이었습니다. 최소 6시간, 때에 따라 8시간, 9시간을 충분히 수면을 취하고 남는 시간에 최대한 집중하여 공부한다는 것이지요. 위에 소개한 조선 왕자들의 체력단련과 다르면서도 같은 맥락의 이야기라고 생각됩니다. 


조선의 왕자들은 왕이 된 후에도 공부를 중단할 수 없었습니다. 서연이 왕이 되기 위한 교육과정이었다면 이후 왕을 위한 교육과정인 경연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경연은 훌륭한 군주로 올바른 정치를 펼치기 위해 실시되는 최고의 교육이었습니다. 유교경전과 역사서에서부터 당시의 크고 작은 시사문제에 이르기까지 경연의 주제는 다양했고 학문의 너비와 깊이는 더욱 깊어졌습니다. 


  

  ▲김홍도의 ‘규장각도’(좌), 외규장각 의궤(우) [출처-서울신문]




조선에서 왕이 된다는 것은 평생 공부를 해야 할 운명임을 받아들이는 것과 동일한 듯 보여 집니다. 실제로 갖은 핑계로 경연을 빼먹다 경연을 아예 없애기도 했던 연산군은 쓸쓸하고 비참한 최후를 맞은 폭군으로 역사에 남았지요.(물론 그가 폭군이 된 이유가 경연이 전부는 아니겠지만 서연도 경연도 소홀하던 그가 결국 방탕한 생활을 일삼던 왕이 된 것은 의미하는 바가 큽니다.) 조선 집권 500여 년의 세월동안 이웃나라 일본과 중국에서는 군주의 성향에 따라 숱하게 나라의 정책이 바뀌고 외국을 침략하는 일들이 일어났지만 조선은 수백 년간 외세의 침입에도 불구하고 나라를 유지했습니다. 그것은 조선 왕들의 뜨겁고 치열한 ‘몸과 마음 공부’가 큰 역할을 했기 때문이겠지요. 왕이 되기 전에도, 왕이 되어서도 문답과 토론을 바탕으로 열린 교육을 받았던 조선의 왕들이 빛나는 문화유산을 후대에 안겨준 것도 크게 놀랄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더 훌륭한 인격을 가진 군주로 성장하기 위한 왕들만의 끝없는, 그리고 특별한 공부법, 그 자체로 이미 자랑스러운 우리 문화유산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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