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5. 31. 13:46ㆍ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어린이에게 책은 미래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책은 가보지 못한 나라를 가보고, 경험해 보지 못한 세상을 알게 해주는 창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모님들도 어린 시절에 되도록이면 많은 책을 읽히려고 합니다.
다만 우리나라의 경우 해외에서는 살펴볼 수 없는 독특한 경향이 하나 있는데요. 아이가 본인이 읽고 싶은 책을 직접 고르는 것이 아니라, 부모님이 골라준 책을 읽는 경우가 많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읽게 되는 책은 대부분 고전이나 교양서적 등 향후 학교를 다닐 때 도움이 되는 ‘선행학습’용 서적이 주류를 이루게 되는데요.
왕성한 호기심으로 여러 가지 책을 읽으며 상상의 나래를 피워야 할 시기에 이미 부모가 정한 ‘틀’에 갇히게 되는 셈입니다. 이런 불필요한 가이드라인으로 인해 다양한 창의력을 갖춰야 할 아이의 생각이 획일화되는 부작용을 낳기도 하는데요.
<국내의 독서교육은 대부분 ‘입시’와 연관되어 있다.>
책을 통한 독서교육이 긍정적이라는 사실은 이견이 없습니다. 하지만 지나친 입시 위주 교육 때문에 ‘논술에 출제될 만한’, ‘시험에 도움이 되는’ 이라는 커트라인을 거친 책들만 아이들에게 권하는 우리나라의 실정은 올바른 독서교육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독서 선진국이라고 부르는 외국의 사례는 어떨까요?
아이들에게 독서 쿠폰 선물하는 영국 북토큰운동
영국에서는 셰익스피어의 탄생일이자 유네스코가 지정한 책의 날이기도 한 4월 23일 ‘북토큰(Book Token)’이라는 쿠폰을 아이들에게 선물합니다. 영국의 서점상 연합이 주관하는 이 행사는 영국과 아일랜드의 모든 어린이들에게 1파운드짜리 북토큰을 나누어 주며 어릴 때부터 어린이들이 책 읽기에 대한 관심을 기를 수 있도록 하고 있는데요. 물론 북토큰으로 아이가 무슨 책을 살지는 전적으로 아이의 자유에 맡깁니다. 어떤 종류의 책이든, 책을 읽는 문화를 확산시킬 수 있다면 좋다는 뜻이지요.
짧은 시간 꾸준한 독서 권하는 일본 아침독서운동
일본에서는 아침 짧은 시간동안 책을 읽는 ‘아침독서운동’이 보급되어 있습니다. 최초로 아침독서운동을 실시한 학교는 도쿄 가츠시카구에 위치한 가미히라이 초등학교. 이곳에서는 매일 아침 8시 30분 ‘아침독서’ 시간으로 수업을 시작합니다. 비록 10여분의 짧은 시간이지만 아침의 맑은 정신으로 교사와 아이들이 함께 책을 읽는 동안 교실에는 산사와 같은 고요함이 찾아옵니다. 학생들이 읽는 책은 다양합니다. 역사책, 동화책, 과학책 등 아이들은 그저 자신이 읽고 싶은 책을 가져와 읽으면 됩니다. 그리고 책을 읽고 난 후 독후감 등 과제물을 제출해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일본 도요 초등학교 학생들이 수업 전 각자 준비한 책을 읽고 있다.>
아무런 부담을 느끼지 않고, 단지 책에 재미를 붙이고, 독서 습관을 형성하도록 돕는 것이 아침독서운동의 목적입니다. 아침독서운동을 실시하기 이전, 가미히라이 초등학교는 이지메, 등교거부, 수업 불성실 등으로 갈등을 겪는 소위 문제학교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침 짧은 시간 동안 책을 읽는 독서운동 이후 아이들의 성품이 차분해지며 성적이 올랐고, 이 학교의 사례가 소개된 후 현재는 일본 전국 2만 5000여 학교에서 아침독서운동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지역사회 문제를 독서로 승화시킨 시카고 한 도시, 한 책 읽기운동
미국 시카고시는 2001년부터 시 도서관과 함께 ‘하나의 책, 하나의 시카고’라는 지역 독서 캠페인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 운동은 1998년 시애틀에서 시작된 ‘한 도시 한 책 읽기(One City One Book)’ 운동에서 비롯되었는데요. 미국 여러 도시 중 시카고에서 가장 큰 성공을 거두었다고 합니다. 2001년 당시 시카고 공공도서관은 시민 모두가 함께 읽을 책으로 ‘앵무새 죽이기’라는 인종문제를 다룬 소설을 선정하고 리처드 델리 시장이 직접 나서 시민참여를 호소하면서 온 시민이 독서열풍에 빠졌는데요.
<시카고 시내 해롤드 워싱턴 도서관 특별 전시관에 진열된 ‘앵무새 죽이기’ 자료.>
시카고 도서선정 위원회는 ‘시민이 매일 접하는 보편적인 문제를 반영한다’는 기준 아래 책을 선정하고 있는데요. ‘한 도시 한 책 읽기’ 운동은 한 권의 책을 통해 공통의 화제를 찾아내고 그 도시가 지닌 문제를 시민들이 함께 생각해보는 계기를 만든다는데 의의를 두고 있습니다.
해외 사례를 통해 살펴본 어린이 독서교육의 공통점은 ‘스스로 책을 선택하게 할 것’, ‘책을 읽고 결과물을 강요하지 말 것’ 등 학습이 아닌 독서습관을 형성하도록 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지막에 예로 든 시카고의 경우 도서선정 위원회에서 읽을 책을 선정하기는 하지만, 이 역시 입시나 선행학습 같은 개인적인 문제가 아닌 ‘사회구성원으로서 관심을 가지고 고민해보아야 할 문제’라는 거시적인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습니다.
독서를 하는데 있어 분명 목적은 존재합니다. 하지만 ‘용도에 맞는 책 읽기’는 충분히 성장한 다음 어른이 되었을 때 하는 독서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이 책이 인생에 도움이 될지, 입시에 도움이 될지’의 문제는 부모님과 어른의 시각일 뿐입니다. 어린 시절에는 될 수 있으면 다양한 책을 읽으면서 간접 경험을 쌓는 것이 좋습니다. 먼저 책에 대한 부담을 없애고, 자연스럽게 독서하는 습관을 들이게 되면, 아이는 스스로의 판단을 통해 본인에게 맞는 책을 찾아갈 것입니다. 교육이라는 이름 아래 진정한 독서의 의미를 잃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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