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5. 27. 09:20ㆍ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기자의 인생은 ‘쫓김’의 연속인 것 같습니다. 어렸을 적에는 방학 때마다 개학을 앞두고 방학숙제를 쫓기듯 ‘초치기’로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대학에 들어가면서부터는 본격적인 '쫓김'의 인생이 시작됐습니다. 대학에서 발행하는 신문을 만드는 대학생 기자가 되면서부터입니다. 비록 일주일에 한번씩 만드는 대학 학보였지만 마감 시간의 압박은 대단했습니다. 그러던 것이 대학 졸업 후 본격적인 신문기자의 길로 들어섰고, 매일매일을 마감과의 전쟁에 투입되는 ‘전사’가 되면서 쫓김의 인생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기사를 쓰면서 필요한 자료를 찾거나 취재원과 전화 통화 등을 하다 보면 마감 시간이 후딱 다가오고, 갑자기 생각이 막히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면 마음은 더욱 초초해집니다. 이때 회사 데스크로부터는 기사를 빨리 보내라고 재촉하는 전화가 빗발치면 그야말로 줄담배만 뻑뻑 빨아대면서 패닉 상태에 빠졌던 경험도 있습니다.
초년병 체육부 기자시절에는 야구장에서, 축구장에서 마감시간에 쫓기면서 경기가 빨리 끝나주기만을 바랐던 적도 있었습니다. 심지어 고육지책으로 특정 팀이 이겼을 때와 비겼을 때, 졌을 때 등 3가지 경우의 기사를 미리 써 놓고 경기가 끝나마 마자 스코어만 붙여서 기사를 보낸 적도 있었지요. 그만큼 기사 작성은 시간과의 싸움이었습니다. 이는 스포츠 경기장뿐 만 아니라 사건 현장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어찌하다 보니 지금 이 글도 마찬가지입니다. 고엽제니 뭐니 갑작스럽게 사건들이 터져 원고청탁을 받은 지가 꽤 됐는데도 불구하고 부랴부랴 급박하게 쓰고 있습니다. 시대가 바뀌면서 글 쓰는 환경도 변화하고 있습니다. 디지털 시대는 기사 작성에서 많은 시간을 절약해 주고 있습니다. 기사에 필요한 자료를 찾을 때 인터넷 검색 기능이 도움이 될 때가 많기 때문이죠.
디지털 시대는 또 전자신문을 등장시켰습니다. 전자신문은 마감시간의 개념을 바꿔 놓았습니다. 전자신문의 온라인 기사는 마감시간과 관계없이 계속 새로운 내용으로 바꿔주면 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는 독자와의 온라인 대화를 통한 쌍방향 커뮤니케이션도 영향을 끼칩니다. 온라인 기사는 오프라인 기사와는 달리 무수한 독자의 비판과 비평으로부터 자유롭기가 힘듭니다.
이런 과정들은 기사의 무한한 개작 가능성과 연결됩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생산된 글은 누구의 기사일까요. 어떤 의미에서 이 경우 기자는 단순한 전달자일지도 모릅니다. 온라인에서 기사라는 것은 한번 쓰고 마는 것이 아닌 게 돼 버렸습니다. 기자는 기사를 계속 보충해 나가도록 강요 받습니다. 디지털 시대의 기자는 과거와는 전혀 다른 직업 인간형입니다. 과거에는 신문기자는 신문, 방송기자는 방송에만 기사를 공급했습니다. 그러던 것이 요즘 신문기자는 콘텐츠를 신문에만 공급하던 과거의 관행에서 벗어나고 있습니다. 게다가 최근에는 종합편성 채널의 등장으로 기자실의 동료 신문기자는 TV 카메라 앞에서 마이크까지 잡아야 한다고 하소연하고 있습니다. 회사에서는 경제 논리를 앞세운 ‘원 소스, 멀티 유즈’를 강조합니다. 하나의 콘텐츠를 신문과 방송, 온라인 등 복합 창구를 통해 판매하겠다는 것이지요. 그러다 보니 신문기자가 문자 뿐만 아니라 소리와 그림을 통한 정보의 전달에도 끊임없이 관심을 가질 것을 강요 받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기자들의 경계 영역이 무너지고 있다는 것이죠.
이와 함께 취재에 동원할 수 있는 정보획득도구가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아진 요즘에는 기사 자체보다 사람들과의 연결을 더 중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기사를 작성할 때 공동체적 대화망이나 대화공간을 염두에 둬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문과 방송, 온라인 매체 등이 모두 같은 사이버 공간에서 비슷한 서버를 갖고 경쟁을 하고 있는 시대라는 점에서 기사 작성의 원칙도 바뀌고 있습니다. 과거의 3C(Correct, Clear, Concise) 원칙 보다는 즉각성 또는 즉시성이 매체의 경쟁력을 좌우하고 있습니다.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잉크냄새 나는 신문의 매력은 여전합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최근 실시한 논술대회에서 대상을 차지한 고교생이 언론 매체를 ‘길’을 통해 비유한 것은 탁월한 시각으로 여겨집니다. 그는 “한 청년이 이정표에 의지해 목적지를 찾아간다. 고속도로, 일방통행 길, 한적한 시골길 중 목적지에 도달할 때까지 가장 도움이 되는 길은 어떤 것일까?”라는 질문을 던진 후 해답을 찾아 나섰습니다.
이 고교생은 “고속도로는 넓지만 어느 차선을 타야 할지 갈피를 잡기 힘들고 이정표를 보기에도 속도가 너무 빠른 단점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또 “일방통행 길은 ‘전진’이라는 선택지만을 주는 까닭에 불편하다”고 지적했습니다. 그가 가장 편리한 길로 뽑은 것은 속도는 느리고 울퉁불퉁해 불편해 보이지만 편안함과 친근감을 느끼며 목적지에 도달하게 하는 시골길을 들었습니다. 그는 고속도로의 경우 정보의 양은 많지만 혼란을 주는 인터넷에, 일방통행 길은 정보를 선택해서 볼 수 없는 TV에 각각 비유했습니다. 가장 큰 도움이 되는 시골길은 속도는 느리지만 꼭 필요한 정보를 전달하는 신문과 닮았다고 설명했습니다.
신문기사의 가장 큰 명제는 정확성이란 점에서 이 고교생의 비유는 적절합니다. 스마트폰을 통해 시도 때도 없이 방대한 정보가 나오지만 과연 그것이 정확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되기 때문입니다. 이때 신문은 정확한 게이트 키핑 기능을 통해 신뢰성 있는 정보를 독자들에게 전달한다는 사실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사람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어느 한 길만을 다니는 것은 아니겠지요. 급할 때는 고속도로를, 지름길을 택할 때는 일방통행로를, 차분하게 생각하고 싶을 때면 시골길을 선택하니까요. 정보를 접하는 길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시골길도 세월이 가면 조금씩 변하듯 신문기사도 환경에 따라 변화해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실제로 과거에는 언론인들이 어떻게 하면 많은 정보를 남들보다 빨리 얻는가를 가장 중요한 문제로 여겼습니다.
이제 환경은 바뀌었습니다. 정보 홍수시대인 이제는 ‘무엇이 중요한 것인가’와 ‘무엇이 관련 있는 내용인가’, ‘어떻게 하면 쓸모 없는 정보를 걸러내 독자에게 전달해 낼 수 있는가’가 신문의 과제가 됐습니다. 즉, 사람들로 하여금 세상을 제대로 인식할 수 있도록 해석해 주는 일을 가장 중요한 사명으로 여기게 됐다는 의미입니다. 심지어 미래의 특종은 최상의 해석, 가장 세밀한 상황묘사 등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예견한 닐 포스트(Neil Postman)만 같은 학자도 있습니다. 저명한 방송인 다니엘 쇼(Daniel Schorr)도 십 수 년 전 일찌감치 비슷한 지적을 했습니다. 그는 “특종이란 가장 잘 쓰여진 글, 가장 잘 묘사된 글, 그러면서도 독자에게 왜 그 사실을 알아야 하고 그 사실의 의미는 무엇인가를 깨우쳐주는 글을 말한다”고 지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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