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맞아 미리 정독하는 동서양 대표 연애 바이블

2013. 2. 28. 10:06다독다독, 다시보기/지식창고



나이가 나이인 만큼 주변 친구들은 하나, 둘 화려했던 연애시절을 접고 결혼에 골인하기 시작했습니다. 모임이라도 할라치면 다들 돌쟁이 아이 하나씩을 들춰 업고 나타나는 풍경 역시 더 이상 낯설지 않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결혼한 친구들과 만난 자리에서 재미난 이야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결혼해서 무엇보다 좋은 점 가운데 하나가 바로 ‘골치 아픈 밀당에서 해방되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하하. 연애라는 달콤하지만 살벌한, 아름답지만 세상 그 무엇보다 에너지소모가 극심한 감정노동에서 벗어나 안정을 찾았다는 것이 결혼의 장점 중 하나라니요. 누구에게나 연애란 만만한 일이 아니구나, 라는 생각이 들며 웃음이 났습니다.

 

 

봄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오는 달달한 계절입니다. 유난히 매서웠던 추위가 누그러지고 지나는 행인들의 외투가 한결 가벼워짐이 느껴지네요. 그러나 연애와 가장 어울리는 계절인 봄이 찾아와도 삐그덕대는 연애 때문에 밤잠 설치는 분들이 많이 계시겠지요. 연애만큼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경험하게 해주는 것도 없을 듯합니다. 미워죽겠다가 뒤돌아서면 또 사무치게 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 멘붕과 황홀경의 극단을 쉴 새 없이 오가게 하는 것. 올 봄에는 그런 폭풍전야 같은 연애에서 탈피해 봄바람처럼 따스한 사랑을 해보고 싶으신 분들께 다음 두 권의 책을 소개합니다. 이름 하여, ‘동서양 대표 연애바이블’입니다.

 


[출처-서울신문]

  



당신이 사랑할 때 알아야 할 모든 것, 에리히 프롬 <사랑의 기술>

 

사랑에도 기술이 필요한 걸까요? 물론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기술’이란 이성을 유혹하는 현란한 말솜씨나 미소가 아니라 진정으로 마음을 열고 상대에게 다가가는 기술을 말하지요. 에리히 프롬에 따르면 받기만 하는 사랑으로는 영원히 고독의 늪에서 빠져나갈 수가 없습니다. 마실수록 갈증을 느끼는 바닷물처럼 아무리 받아도 채워지지 않는 허무함의 나락으로 발을 딛게 되는 것이지요.

 

 

사랑이란 주는 것을 아는 능력이며 특정한 대상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닌 대상을 통해 이기심을 극복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그가 나를 얼마나 극진히 사랑할까 저울질하며 오늘도 밀고 당기기에 몰두하는 당신, 유치한 감정다툼은 이제 그만 내려놓는 것이 좋을 것 같네요. 어떻게 하면 더 사랑받을까를 고민하기보다 어떻게 하면 더 사랑해 줄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랑은 결국 부메랑처럼 자기 자신에게 되돌아오는 것. 그러니 덜 사랑받는다고 억울해할 것도, 더 사랑하고 있다고 분통해할 것도 없습니다.

 

 

[출처-yes24] 에리히 프롬 <사랑의 기술>



최초의 조치는 삶이 기술인 것과 마찬가지로 '사랑도 기술'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가를 배우고 싶다면 우리는 다른 기술, 예컨대 음악이나 그림, 건축, 또는 의학이나 공학 기술을 배우려고 할 때 거치는 것과 동일한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된다.

  


여기서 작가 에리히 프롬이 말하는 사랑은 일시적인 충동에 의한 감정이나 느낌이 아닙니다. 그가 말하는 사랑은 의지이자 판단이며, 결의이자 신성한 약속이지요. 따라서 피아노를 치거나 외국어를 익히듯이 자세를 낮추고 배움에 임해야 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랑은 언제나 우주보다 더 큰 기대와 희망 속에서 찬란히 시작되지요. 하지만 신과 자신을 아는 모든 지인들 앞에서 결혼을 맹세한 커플의 절반이 이혼으로 마무리되는 이 시대에 사랑만큼 실패할 확률이 현저히 높은 일도 찾아보기 힘든 것 같네요. 그렇다면 뭐가 문제일까요? 도대체 뭐가 잘못된 것일까요? 그 해답이 궁금하다면 에리히 프롬과 함께 생의 가장 가치 있는 공부, '사랑의 기술' 을 배우러 가 보심은 어떨까요.

 

 


연애를 할 수 있는 조건? 무라카미 류 <사랑에 관한 달콤한 거짓말들>

 

문정희 시인은 젊음의 최상의 꽃이 바로 '연애'라고 말했습니다. 헛되고 헛된 유한(有限), 유일(唯一)의 삶 속에서 그래도 가장 가슴 뛰는 일이 연애라고 콕 집어 말했지요. 세상에는 분명 선천적으로 연애를 잘하도록 태어난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이올린이나 외국어, 바둑이나 수학을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있듯이 일종의 타고난 재능인 것일까요? 반면 백날 연애지침서를 들여다보고, 박사학위를 써낼 만큼 이론에 빠삭해도 실전에는 백전백패하는 가련한 사람도 있습니다.

 

 

인간의 심리를 꿰뚫어보는(더 정확하게는 이성의 심리를 잘 파악하는) 능력과 센스, 세련된 매너나 자신감 넘치는 성격, 섹시한 뒤태나 눈웃음 등이 연애선수들의 조건인걸까요? 수많은 연애지침서에는 이런 외형적인 조건들을 변화시키기를 제시함으로서 연애의 달인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물론 지당하신 말씀이죠. 그런데 지금껏 어떤 책에서도 진실한 연애를 할 수 있는 인간의 자격에 대해서는 이야기 한 적이 없었습니다. 연애를 할 수 있는 자격이라니? 조금 생뚱맞다고요? 그럴지도 모릅니다. 저 역시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연애에 도대체 어떤 자격이 필요한 걸까 고민해 본적은 결단코 한 번도 없었으니까요.

 

 

[출처-yes24]



작가의 말에 따르면 홀로서기가 되지 않은 사람은 연애를 할 수가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였을까요? 그래서 릴케 역시 일찍이 사랑에 빠질수록 혼자가 되라고, 오로지 혼자가 되라고 말한 것일까요?

 

 

우리는 흔히 연애와 사랑이란 혼자만의 세계를 박차고나와 상대방의 생각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라 착각합니다. 그러나 인간에 대한 놀라운 성찰을 지녔던 작가들의 말에 따르면 오래 유지될 수 있는 사랑이란 각자 독립된 개체로서 두 사람이 함께 각자의 삶을 즐기고 영위하며 도움을 주고받으며 걷는 관계이지요. 그러니 사랑이란 기꺼이 홀로 설 준비를 마친 사람에게 찾아오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누군가 어떤 책에서 온전히 홀로 설 수도, 든든하게 함께 설 수도 있는 사랑을 원한다고 적어 놓은 것을 보았습니다. 

 

 

생각해보니 오랫동안 사랑을 지키고 유지하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온전한 자신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랑을 도피처나 은신처로 삼지 않는 것이지요. 덜 외로워지기 위해 사랑을 하거나 혼자가 두려워 사랑을 한다는 많은 이들이 실패로 관계를 끝맺음한 것과 달리 혼자서도 충분히 행복하지만 더 행복하기 위해 관계를 맺는 이들은 오랫동안 그 관계를 아름답게 유지시키곤 합니다.

 

 

달달한 봄바람이 살랑거리며 다가올 봄을 예견합니다. 이토록 아름다운 계절에 연애 때문에 골치 아파서야 되겠습니까? 사랑받지 못해 아른 연애를 하고 있다면 눈 한 번 질금 감고 ‘더 많이 사랑해주지 못할 것을 안타까워하는 연애’를 해보고, 연애를 해도 해도 외롭기만 하다면 먼저 나 자신을 사랑하고 아껴주는 법을 배워보는 것은 어떨까요? 대가라 일컬어지는 두 작가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는 겁니다.  
 

Ⓒ다독다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