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달필가 고우영의 만화로 배우는 역사

2013. 3. 22. 10:00다독다독, 다시보기/지식창고




활자가 가득한 책은 싫어하는 사람도 만화에는 열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책은 곧 수면유도제라고 말하는 사람도 밤새워 만화를 읽는 경우가 많고요. 제가 어릴 때만 하더라도 만화를 읽고 있으면 어른들께 꼭 한 소리를 듣곤 했죠. 잔소리의 요지인즉 만화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다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정말 그럴까요?



요즘은 시대가 많이 바뀌었는지 서점에서도 아이들의 손을 잡고 만화를 뒤적이는 어른들을 자주 뵙니다. 그도 그럴 것이 교과서 못지않은 교양이 가득한 만화가 정말 많거든요. 지루한 수학‧과학 등을 스토리텔링 형식으로 풀어낸 것도 있고, 딱딱한 역사에 모험가득한 판타지 스토리를 입힌 것도 있고요. 



우리나라 교양만화의 역사를 새로 쓴 <먼 나라 이웃 나라> 시리즈만 해도 그렇습니다. 이 만화시리즈는 무려 1,500만부 이상 판매되며 ‘국민역사교과서’라는 자랑스러운 칭호를 얻게 되었는데요, 만화임에도 불구하고, 아니, 만화이기에 더욱 이해가 쉽고 기억에도 오래 남아 이웃 문화를 공부하는데 저 역시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시대의 달필가, 고우영만이 표현할 수 있는 역사이야기


제가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 있게 읽은 만화는 고우영 화백의 역사만화들입니다. 이 자리를 빌려 꼭 추천하고 싶은 만화이기도 하고요. <삼국지>, <초한지>, <십팔사략>, <열국지> 등 그 종류도 무척이나 다양하지요. 한때 저와 제 동생은 퇴근 후 아버지가 들고 오시는 고우영 만화를 기다리는 재미에 푹 빠져 살던 적이 있었어요. 서로 읽겠다고 다툼을 벌이기도 하고, 잠들기 전까지 머리맡에 두고 읽기도 했고요. 



그렇다면 고우영 만화가 가진 힘은 무엇일까요? 아이보다 어른들이 더 열광하는 고우영 만화의 진짜 매력 속으로 함께 들어가 보겠습니다.



   

[출처-yes24 고우영 <십팔사략>]



고우영 만화는 흔히 성인만화로 통합니다. 코흘리개 아이들이나 까까머리 소년들만 만화의 독자가 되던 시절 어른들을 위한 만화의 새로운 역사를 연 분이시죠. 1954년 <쥐돌이>로 데뷔한 이래 그는 자신의 삶의 역경만큼이나 다양하고 폭넓은 만화를 그립니다. 소년용 모험 만화인 <대야망>이 있는가 하면, 성인만화의 문을 열었던 <임꺽정> <수호지>, 독특한 고전 해석으로 새로운 고전이 된 <삼국지>, 에로물 <가루지기>, 여행만화, 스포츠만화, 자전적 일상을 다룬 <무지개>, 창작극 <일지매> 등 소재의 폭이 넓을 뿐 아니라, 유려하면서도 독특한 그림체, 캐릭터로 드러나는 인간에 대한 시각, 현실과 사회, 역사에 대한 인식 등 인문, 예술적 폭 또한 넓고 깊습니다. 




만화가 끝난 후 긴 여운이 매력적인 그의 작품세계 


그의 작품을 한 권이라도 읽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고우영표 만화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유머’와 ‘해학입니다. 그저 어이없는 유머가 아니라 사회의 부조리와 역사의 오류를 마음껏 비웃어주는 호탕한 웃음입니다. 읽다 보면 고우영 특유의 유머와 해학에 풍덩 빠져들게 되시리라 확신합니다.


다양한 장르의 만화를 그린 대가이지만 많은 분들의 기억 속에 고우영 만화는 곧 역사만화와 동일시될 것 같습니다. <삼국지>, <수호지>로 이어지는 일련의 중국고전들이 그것이지요. 그의 역사만화에는 꿈과 희망이 가득한 신세계가 펼쳐져 있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잔혹하고 무자비한 어른들의 세상, 욕망의 세계가 피어있습니다. 낄낄대며 웃다 끝나는 만화가 아닌 오래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그런 만화인 것이지요.  


일례로 <삼국지> 속 각각의 인물들은 고우영의 펜 끝에서 새로운 생명을 얻고 살아 숨 쉽니다. 각각의 캐릭터-그들의 외양, 언어, 성격 등-를 마치 실제 보고 온 사람처럼 생생히 묘사해 낸 것이지요. 그토록 생생한 인물들이 그려내는 역사의 현장은 소설이나 영화만큼이나 흥미롭습니다. 고우영 자신만의 묵직한 역사의식을 바닥에 깔고 사실과 자료에 최대한 충실하여 인물들의 일생을 화폭 가득 담습니다. 배신과, 야망과, 전략과, 패배. 음모와 폭력과 좌절과 그들이 꿈꾸던 새로운 세상까지. 시대를 호령했던 영웅호걸들의 이야기를 이보다 더 흥미롭고 생생하게 읽을 수는 없을 것 같네요.




      [ 출처-교보문고 고우영 <삼국지>]



고전은 지루하다는 편견은 고우영 만화에서 조각이 납니다. 혹시나 아직까지 <삼국지>나 <초한지>, <열국지> 등 대표 고전들을 읽어보지 못한 분이 계시다면, 소설의 방대한 분량과 어려운 문턱에 쉽게 접근하지 못하고 계시다면 먼저 고우영의 만화를 집어보세요. 저 역시 고우영의 만화로 중국고전을 섭렵한 뒤 고전의 진정한 맛에 홀려 소설을 찾아 읽은 케이스랍니다. 



‘약’이 되는 만화, 재미와 감동과 교양까지 담긴 만화는 얼마든지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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