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간 2900페이지를 만든 그들에게 박수를!

2013. 7. 8. 15:33다독다독, 다시보기/지식창고




<배를 엮다>일본 서점대상 1위를 차지했다고 했을 때, 그리고 그 이야기가 사전을 만드는 편집부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했을 때 그 이야기가 재미 있어봤자 얼마나 재미있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그냥 흘려 보냈었더랬다. 요즘은 모든 것이 전자사전으로 대치되어 사전 자체도 보기 힘들 뿐 아니라, 단어들만 쭉 나열되어 있고 그것이 무미건조하게 설명되어 있는 사전의 글을 만드는 일은 그냥 생각해봐도 별 재미가 없는 일일거란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러다 누군가의 리뷰를 읽게 되었고, 그 리뷰가 나의 마음을 움직여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 리뷰어의 말대로 이 책은 감!동!적!이었다.  




출처-교보문고


소설은 겐부쇼보에서 37년간 사전 만드는 일을 한 아라키와 대학교수직을 그만두고 사전 편찬의 외길을 걸어 온 전편집부 고문 마쓰모토 선생의 대화로 시작한다. 둘은 함께 수많은 함께하며 사전 만드는 일을 해왔고, 이제 마지막으로 <대도해>라는 편집부에서 심혈을 기울여 만들 새 사전을 만들 계획을 세운 참이었다. 워낙 장기 계획이기에 대를 이어 만들 새 편집자가 필요했고, 그 후보로 마지메를 추천한다. 말은 잘 못해도 상대가 책이면 차분히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마지메가 대도해 편집부에 승선하면서 본격적인 사전 만들기에 돌입한다. 



말은 때로는 무력하다. 

아라키나 선생의 부인이 아무리 불러도 선생의 생명을 이 세상에 붙들어 둘 수는 없었 다.

하지만, 하고 마지메는 생각한다. 선생의 모든 것을 잃어 버린 것은 아니다. 

말이 있기 때문에 가장 소중한 것이 우리들 마음속에 남았다.  

-327~328쪽 



사전 만드는 일은 용례채집카드를 만들면서 시작한다. 언어라는 것은 생물과 같아서 시간이 지나며 사라지기도 하고, 뜻이 변하기도 하며, 새롭게 생겨나기도 하기 때문에 단어집을 만들어 매일같이 체크하며 꼭 넣어야 하는 것, 애매한 것, 채택하지 않아도 될 만한 것들을 수시로 체크한다. 전문가의 설명이 필요한 것은 각계 전문가들에게 그 단어를 뿌리고, 편집부에서 원칙을 정해 그 용어 설명을 받아낸다. 여기서 단어 설명은 객관적이어야 하고, 간결해야하며, 분명해야 한다. 이 작업도 만만치 않다. 아무래도 사람들의 주관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수많은 논의가 오간다. 예를 들어 '남자'에 대한 설명을 '여자의 반대'라고 하면 얼마나 허무하겠는가. 또 '연애'를 '특정 이성에게 특별한 애정을 느껴 고양된 기분으로..'라고 설명하면 동성간에 느끼는 특별한 애정의 감정은 설명될 수 없기 때문에 조금 더 면밀한 정의가 필요해진다. 그렇게 너무 당연한 것들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체크하고 토의하며 더욱 더 객관적이고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단어 설명을 위해 고치고 또 고친다.   

 

그렇게 용어채집만 수 년, 그 사이 편집부에는 새로운 후배들이 들어오고 신입이었던 마지메는 편집장의 자리에 오를만큼 편집부도 변화한다. 5교는 기본이고, 단어 하나가 빠진 것이 발견되었을 때는 모든 사람이 일주일간 밤샘 작업을 하며 다른 실수가 없는지 처음부터 다시 뒤진다. 종이 하나, 장정 하나에도 몇 년간의 개발을 통해 사전과 어울리는 것으로 만들고, <대도해> 기획부터 편찬까지 15년이라는 시간이 걸렸기 때문에 바뀐 시대의 트렌드에 맞춰 끝까지 단어 선택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이 소설은 그렇게 <대도해>라는 사전이 탄생하기까지 15년의 이야기를 그린다. 그 사이 마지메는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 결혼을 하기도 하고, 마쓰모토 선생은 건강악화로 사전 완성을 목전에 앞두고 세상을 떠난다. 사전 편집부에 있다 다른 부서로 좌천된 니시오카는 밖에서도 끊임없이 사전 편집부를 지원하고, 그 사이 들어 온 신참 기시베는 이해할 수 없는 편집부의 모습에 방황하지만 어느새 가장 중심부에서 사전을 만들고 있게 된다. 사전 만드는 것도 결국 사람의 일인지라 하나의 목표를 위해 끈끈하게 뭉친 이들의 이야기는 감동을 다가온다.  


책을 읽다보니 나에게도 사전에 얽힌 추억이 있었음을 깨달았다. 처음 사전을 선물받았던 날 제일 첫 글자는 무엇인지 궁금해 첫 장을 펼쳐봤고, 몸의 은밀한 부위는 어떻게 설명되는지 궁금해 조심스레 그 단어들을 찾아봤고, 한 단어를 찾으러 페이지를 열었나 그 주변에 눈에 띄는 처음 보는 단어에 한참을 그 설명을 읽었던 기억이 났다. 잊고 있었지만 나도 사전의 영향을 받으며 자랐고, 어쩌면 그 사전 덕분에 지금 이렇게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누군가가보면 참으로 하릴없고 부질없고 지긋지긋한 일이지만 그들이 있기에 우리의 언어가 계속해서 보존되고 전승되며 진화할 수 있었을 거다. 하지만 만약에 내가 그 사전 편집부에 있었다면 과연 나의 일을 사랑할 수 있었을까? 돈이 안 된다는 이유로 몇 번이나 해체 위기에 처하며,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심지어 누군가는 나의 일을 하등에 쓸 데 없는 일이라 생각하고 있다면 말이다. 


옮긴이의 글에는 이 책을 위해 저자가 몇 년간이나 출판사의 사전 편집부로 출근을 했다고 한다. 저자의 멋진 작업에 큰 박수를, 그리고 지금도 사전을 만들고 있을 세상의 모든 사전 편집자들에게 머리 숙여 존경의 마음을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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