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지 않는 아이들을 위한 처방약

2013. 6. 25. 10:04다독다독, 다시보기/지식창고





큰조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 책을 멀리 하기 시작했다. 유치원에 다닐 때까지만 해도 “고모 이거 읽어줘!”라며 책을 한아름 들고 와 졸라대던 아이였는데 왜 변한 것일까? 큰조카의 학교생활을 보니 고작 1학년인데도 공부할 분량이 많다. 이걸 어찌해야 하나? 예습은 엄두도 못 내고 복습만 하는데도 분량이 어찌 그리 많은지 안쓰럽기만 하다. 그렇다고 윽박지르며 가르치긴 싫다. 난 좋은 고모이고 싶으니까! 


이때 생각난 책이 <난 무서운 늑대라구!>이다. 1학년 필독서인 이 그림책은 제목과는 다르게 전혀 무섭지 않은 늑대가 등장한다. 무섭고 싶었지만 무서울 기회가 없었고, 결국 끝까지 무서울 수 없었던 이 늑대는 농장에 사는 동물들로 인해 ‘교양’ 있는 동물이 된다. 




  

내용을 살펴보자. 여행에 지친 늑대가 마을로 들어선다. 배가 고픈 늑대는 마을 바깥에 있던 농장을 떠올린다. 농장으로 향한 늑대는 농장 안을 훔쳐본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동물들이 책을 읽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배가 너무 고픈 늑대는 이것저것 생각하지 않고 으르렁 거리며 동물들을 향해 뛰쳐나간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오리, 돼지, 젖소가 꼼짝도 하지 않는다. 그들이 말한다. “왜 이렇게 시끄러워. 책을 읽을 수가 없잖아.” 





늑대는 기가 막히다. “야, 너희들. 뭐가 잘못된 거 아냐? 난 무시무시한 늑대라구!” 그러든지 말든지 돼지가 등을 떠밀며 말한다. “알아, 그러니까 다른 데 가서 무섭게 굴어. 우리는 교양 있는 동물들이야.”





도대체 ‘교양’이란 게 뭐기에 감히 늑대를 내쫓을 수 있을까? 늑대는 어처구니가 없다. 늑대는 결심한다. “좋아. 나도 글을 배우겠어.” 늑대는 학교로 달려가 글자를 배운다. 글자를 깨우친 늑대는 농장으로 가서 큰 소리로 책을 읽는다. 하지만 한참 더 배우라는 소리만 듣고는 쫓겨난다. 이번에 늑대는 도서관에 달려가 책들을 찾아 읽고 또 읽는다. 이번엔 농장 동물들이 깜짝 놀랄 거라 생각하며 농장으로 가서 책을 읽는다. 하지만 이번에도 아직 멀었다는 소리만 듣곤 쫓겨난다. 늑대는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늑대는 자신이 가진 조금밖에 남지 않은 돈으로 책을 산다. 늑대는 그 책을 밤낮으로 읽고 또 읽는다. 한줄 한줄 정성껏 읽는다. 늑대는 다시 농장으로 가서는 풀밭에 누워 쉬다가 잠시 후 책을 읽기 시작한다. 




  

그런데 정말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돼지, 오리, 젖소가 늑대에게 다가와 아주 조용히 귀를 기울이기 시작한 것이다. 늑대가 정말 재미있게 책을 읽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하나의 이야기가 끝날 때마다 다음 이야기를 읽어달라고 조르기까지 한다. 교양 있는 늑대가 되자 동물들의 태도는 완전히 달라진다. 동물들은 정말 재미있다며 늑대에게 최고의 이야기꾼이라고 칭찬한다. 그리곤 소풍에 초대한다. 늑대는 농장 동물들과 소풍을 간다. 동물들은 풀밭에 누워 서로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며 즐거운 오후를 보낸다. 늑대는 교양 있는 동물들을 사귀게 되어 몹시 행복하다. 




    

마지막 페이지가 압권이다. 첫 페이지에서 늑대가 마을로 들어설 때 경계의 눈빛으로 바라보던 사람들은 이제 늑대를 좋아한다. 어른들은 늑대의 책 읽는 소리에 귀 기울이고 아이들은 늑대의 주변에서 떠날 줄 모른다. 늑대는 책을 읽어주는 인물로 마을의 중심적인 인물이 된다. 


정말 명료한 주제가 아닌가? 아이들에게 굳이 “책을 많이 읽어야 돼.” “책을 많이 읽으면 아는 게 많아져서 농장 동물들처럼 무서운 게 없어져.” “아는 게 많으면 친구도 많아져!” “책을 많이 읽으면 세상에 대해 많이 알게 되기 때문에 삶의 질도 올라가!” 등의 말을 하지 않아도 아이들은 책을 읽는 것이 참 좋다는 것을 배운다


참 치밀하다. 전혀 교양 없던 늑대가 교양 있는 늑대로 변해가는 과정을 패션, 태도, 글을 읽어내는 수준, 늑대의 욕구, 사회적 지위, 대인관계의 변화 등을 통해 치밀하게 보여준다. 예를 들면 학교에서 글자만 배운 늑대는 농장에 다시 찾아갔을 때 울타리를 훌쩍 뛰어넘어 들어간다. 도서관에서 다독을 한 늑대는 울타리 문을 점잖게 두들기고 들어간다. 책을 직접 사서 정독한 늑대는 울타리 문에 달린 종을 울린 후 들어간다. 글자를 읽히고, 다독을 하고, 정독을 하면서 성장하는 늑대의 모습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사건은 공간구조와 정밀하게 맞물려 표현된다. 어른들에겐 주제가 너무 눈에 확연하게 보여 인위적이고 작위적으로 느껴질 수 있지만 아이들은 아직 그런 걸 눈치 채지 못한다. 그저 이 그림책의 꼬임에 홀라당 넘어가고 마는 것이다. 의도한 대로 조카는 이 그림책을 읽고 난 후 자기도 늑대처럼 되고 싶단다. 무엇이 가장 부럽냐고 했더니 친구가 많아진 것이란다. 책을 읽지 않으면 늑대처럼 친구들에게 무시당할지도 모를 것 같단다. 친구관계를 가장 중시하는 조카가 느낀 주제이다. 책을 읽은 후 조카는 학교 숙제와 엄마가 내주고 간 학습지를 군소리 없이 한다. 


당분간 약발이 떨어질 때까지 조카는 책을 읽어달라고 할 것이고 숙제도 군소리 없이 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윽박지르지 않고 ‘책의 힘’을 빌리는 것이다. 약발이 다하면 또 다시 조카를 꼬실 수 있는 그림책을 골라 읽히면 될 것이다. 아이가 책을 읽지 않는다? 그러면 이 책을 읽혀보자. 생각 외로 약발이 길게 갈 것이다. <책 먹는 여우>와 함께 읽어봐도 좋다.   



<난 무서운 늑대라구! / 베키 블룸 글 / 파스칼 비에 그림 / 아기장수의날개 옮김 / 고슴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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