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6. 20. 09:11ㆍ다독다독, 다시보기/미디어 리터러시
초등학교 4학년 어느 날, 나는 맞선을 보았다. 그의 성은 신이요, 이름은 문이었다. 중매쟁이 엄마의 권유로 처음 신문과 마주하게 된 날, 신문의 첫인상은 정말 최악이었다. 작은 글씨의 빼곡한 기사만을 담고 있는 사각형의 얼굴과 몸을 보고 연상되는 것은 무뚝뚝하고 까칠해 보이는 아저씨였다. 그날 나는 신문 읽기에 몸서리치며 다시 신문과 마주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엄마의 시도는 계속되었고 난 그때마다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신문과의 만남을 거부하였다.3년 뒤 중학생이 된 나는 국어 시간에 NIE(Newspaper In Education)라는 만남의 다리를 통해 운명적으로 신문과 재회하였다. NIE란 신문을 읽고 한 기사를 골라 노트 한 면에는 기사 내용을 요약하고 다른 한 면에는 기사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주장을 쓰는 활동으로, 그로 인해 나는 매주 신문과 만나야 했다. 그렇게 매주 신문을 읽고 열심히 글을 쓰던 중 나는 신문에 대한 편견으로 가려져 있던 신문의 진가를 발견할 수 있었고 신문은 나에게 고마움의 표시로 선물을 안겨주었다.
신문의 첫 번째 선물은 ‘명확하게 내 생각을 글로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이었다. 나는 평소에 적극적으로 주장이나 생각을 말하는 타입도 아닌데 글로 나의 생각을 전달할 수 있을지 막막했다. 아니나 다를까 초반에는 내 생각이나 주장이 명확하지 않고 두루뭉술하여 글을 쓴 내가 읽어도 “도대체 내가 이 글에서 하고자 하는 말이 뭐야?” 할 정도였다. 하지만 신문의 사설과 기사들을 읽으면서 논리적으로 글을 쓰는 법을 배우게 되었고 나의 주장과 생각을 한층 명확하게 전달할 수 있게 되었다.
신문의 두 번째 선물은 ‘같은 논제를 두고 다양한 관점에서 생각하는 능력’이었다. NIE 공책을 제출하는 날, 친구의 NIE 공책을 보니 나와 같은 제목의 기사였다. 하지만 같은 기사에 대한 친구와 나의 생각은 확연히 달랐다. 그 때 나는 같은 글을 읽어도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단지 정보습득용으로만 신문을 읽는 것이 아니라 기사의 내용을 다양한 관점에서 생각하면서 신문을 읽게 되었다.
신문의 세 번째 선물은 ‘글 쓰는 재미’였다. 그 전까지 나는 ‘글을 잘 쓰고 싶다’는 생각은 있었어도 ‘글을 쓰는 것이 재미있다’는 생각은 없었다.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글을 쓰는 시간이 매우 즐거워졌다. 예전에는 노트에 빈 여백을 채우는 데 급급했지만 언젠가부터 글의 분량이 노트 다음 장으로 넘어가는 일이 많아졌다. 글을 쓰는 과정을 즐기게 된 것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첫인상을 보고 쉽게 그 사람을 판단한다. 나는 신문의 첫인상을 보고 신문의 가치를 판단하였다. 하지만 겉모습만 보고 사람의 속까지 판단해선 안 되는 것처럼 신문도 그 어렵고 지루해 보이는 첫인상만 보고 판단하지 말고 그 속에 숨어있는 가치를 눈여겨본다면 나처럼 신문과 행복한 로맨스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에 새로운 소식을 담고 집으로 올 신문을 나는 오늘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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