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 위를 달리는 도서관이 있다?

2013. 8. 5. 11:44다독다독, 다시보기/현장소식





여러분이 선호하는 독서 장소는 어디인가요? 책과 나 자신만 존재하는 방 한 구석?, 여러 사람이 머무는 카페? 아님 은밀한 화장실 안? 이렇듯 책을 읽는 장소는 책장 안 빼곡한 책의 숫자만큼이나 다양할 텐데요, 그렇다면 길 한복판에서 책을 읽어 보신 적, 있으신가요? 도시의 생생함이 녹아든 여러 소음,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 틈에서 책을 읽는 다는 게 상상이 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이를 실천하고 있는 곳이 있었습니다. 


송파구는 독서의 해로 지정된 2012년 ‘책 읽는 송파'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 사업의 취지는 일상 속에 책을 두어 자연스럽게 독서를 유도하는 것인데요, 이에 송파구는 조금은 '특별한' 공간을 이용해 읽기문화 진흥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책장 밖, 길거리로 나온 책. 그 발걸음을 따라가 보았습니다.




도로 위를 달리는 도서관, '책 읽는 택시'


송파구는 언제, 어디서나 책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책 읽는 택시'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는 EBS FM(104.5㎒) '책 읽어주는 라디오', 숭실대학교 그리고 한 택시회사가 만든 것으로 현재 총 50대의 택시가 '책 읽는 대한민국' 을 위해 도로 위를 달리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책은 홀로 읽는 것이라는 개념이 강한데요. '책 읽는 택시'는 '함께' '듣는' 책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책 읽는 택시' 의 라디오 주파수는 항상 EBS FM '책 읽어주는 라디오'에 맞춰져 있습니다. 이 방송은 <어른을 위한 동화>부터, <명사가 읽어주는 한 권의 책>, <라디오 소설>까지 다양한 독서프로그램이 구성되어 있는데요. 라디오 진행자 혹은 성우의 입을 통해 택시 기사와 승객은 귀로 듣는 책을 접하게 됩니다. 택시 기사와 승객 사이에 튼튼한 유대감을 조성하고 있습니다. 


택시라는 교통수단은 우리에게 가까운 존재지만, 이를 이용한 범죄가 적지 않게 벌어지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인데요. 이에 심야시간 때나 홀로 택시를 타는 것을 꺼리는 분들도 있으실겁니다. 이 문제의 근원엔 기사와 승객 사이 소통의 부재가 자리 잡고 있는데요. 택시를 타고 이동할 때 기사님께 목적지를 간단하게 말하고 달리는 택시 밖으로 겸연쩍게 시선을 옮긴 경우가 많으셨죠? '책 읽는 택시'는 그 시선을 택시 안으로 옮겨왔습니다. 라디오에 흘러나오는 정치, 사회 문제에 관해 서로의 견해가 달라 기사와 승객 사이에서 싸움이 일어나는 경우도 있는데요, 반면 '책'에 대해선 자신의 경험, 그리고 느낀 점을 이야기 하며 인문학적이고 긍정적인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기사님들에겐 자긍심을, 승객에겐 지적이면서 안전한 택시의 이미지를 주고 있습니다.


한편, '책 읽는 택시'를 이끄는 기사님들을 대상으로 한 인문학 강연도 진행 중입니다. '책 읽는 택시'의 성공 여부는 그 무엇보다 기사님들의 역할이 중요하기 때문인데요. 따라서 두 달에 한 번, 인문학적 감성을 전달하고 책 즐기기 문화를 조성하기 위해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을 초청해 강연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눈앞에 놓인 두꺼운 책은 읽는 것 자체가 부담이 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눈이 아닌 귀로 듣는 책은 두꺼운 책에 대한 부담감은 줄이고, 새로운 감각을 이용한 독서의 경험을 할 수 있어 독서에 대한 흥미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라디오에 푹 빠져 있다가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아쉬움을 안고 떠나는 승객에게 라디오QR코드를 제공해 지속적인 독서를 위해 힘쓰는  '책 읽는 택시'. 독서는 이렇게 일상적인 공간에서 지극히 자연스럽게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요? 




공중전화부스의 독讀한 변신


가볍고 똑똑한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갈 곳을 잃게 된 공중전화부스. 사용하는 이가 드물고 관리도 되지 않아 길거리 한 복판에 서있는 그 모습이 애물단지로 여겨질 때가 있는데요, 송파구는 이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출처 http://www.bbc.co.uk/

 

어느 날 흥미로운 이야기를 접하게 됩니다. 바로 영국 남부 웨스트버리의 마을 주민이 만든 특별한 도서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도서관이 없어 불편함을 겪던 영국 남부 웨스트버리 마을의 주민들은 직접 간이도서관을 만들게 됩니다. 바로 오래된 공중전화 부스를 이용해서 말이죠. 이는 공중전화부스를 개조해 작은 전시관이나 여행자를 위한 안내소를 만든 것에서 착안한 것인데요, 더욱 놀라운 것은 이가 무인도서관으로 운영된다는 것입니다. 이는 자신이 읽은 책을 기증하고, 원하는 책을 가져가는 일종의 '교환 방식'으로 운영됩니다. 


이에 송파구는 오래된 공중전화부스의 재활용, 시민들의 참여로 이루어지는 이 사례에서 아이디어를 얻습니다. 그리고 ‘두 줄 책장’이라는 이름으로 공중전화부스를 개조해 사업을 시작하게 됩니다. 이 명칭은 대부분의 공중전화가 두 개씩 한 세트로 이루어져 있는 것과 바쁜 일상 속 단 한두 줄이라고 책을 읽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지어진 것으로, 현재 공원, 아파트 단지 그리고 버스 정류장등을 포함한 24개소에 30대가 설치되어 운영 중입니다.


일상 속 책읽기를 실천하고, 재활용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만드는 ‘두 줄 책장’, 이를 책임지고 계시는 송파구 교육협력과 독서문화팀의 문일형 선생님을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변신의 귀재, 카멜레온 같은 ‘두 줄 책장’."





Q. ‘두 줄 책장’에 수납되는 책들의 선정 기준이 있나요?

A. 잠시 머물러 읽기 편한 수필, 시집, 그림책이 주로 비치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를 이용하는 주민분이 자신이 소장하고 있던 책을 이곳에 꽂아 기증해주는 경우도 있어 다양한 종류의 책들이 비치되어 있습니다.


Q. 버스 정류장에도 이를 설치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A. 버스정류장이라는 다소 특이한 장소는 그것만의 특별함이 있습니다.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엔 대부분 핸드폰을 만지거나 멍하게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 시간에 짤막한 글이라도 읽으면 지루하게 느껴지던 그 시간이 짧게 느껴질 것이고, 생활 속 책읽기를 실천할 수 있어 독서에 대한 부담감을 줄일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Q. 무인 도서관이라 이를 관리하는데 힘들지 않으신가요?

A. 담당부서와 도서관 직원 그리고 자원봉사자들이 ‘두 줄 책장’을 수시로 점검하고 있습니다. 운영초기에는 책을 가져가 반납 하지 않거나 책장 안에 종교 관련 전단지를 넣어 놓는 분들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지만, ‘반납약속대장’과 ‘도서반납안내문’등을 설치해 자신과의 약속을 통한 타인에 대한 배려와 노력을 고취하고 있습니다. 또한 수납되어있는 책을 정기적으로 바꾸며 다양한 책을 선보이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Q. 이용자분들의 반응은 어떠한가요?

A. 책을 깨끗이 사용하는 것은 물론, 대출과 반납 횟수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용하는 분 중에는 도서를 기증하겠다는 문의 전화를 주시기도 하고, 몰래 기증도서를 놓고 가시는 분도 계십니다. 또한 잊고 지내던 공중전화부스를 통해 옛 감성이 자극된다는 의견을 주시고 계셔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Q. 두 줄 책장의 정의를 내려주신다면?

A. ‘두 줄 책장’은 카멜레온이라 생각합니다. 오래된 공중전화부스가 작은 책장으로 변신했고, 그 속의 책들은 상처를 치료하는 의사선생님이 될 수 있고, 멋진 여행지로 안내하는 여행가이드가 되어 우리의 인생을 다채롭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독서광’으로 유명한 영화평론가 이동진씨는 책 읽는 습관을 위해 언제나 책을 휴대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일상 속 책을 가까이 하는 것이 중요한 것임을 의미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바쁜 일상에 치이며 책을 항상 휴대하는 것이 버거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책을 매일 지니고 다닐 순 없어도 발걸음이 닿는 곳, 시선이 머무는 곳에 나를 기다리는 책이 있다면 상황은 달라지겠죠. 책장 밖을 벗어나 길거리로 나온 책, 길을 걷다 마주치거든 간단한 인사라도 건네 보는 것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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