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9. 16. 09:29ㆍ다독다독, 다시보기/지식창고
한 권의 책을 자신의 세계로 끌어들이기까지는 참으로 길고 긴 노력과 인내의 여정을 필요로 합니다. 여기 독자 A씨가 한 권의 책을 읽는 과정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혹은 그녀)는 그간 읽기를 희망한 책을 사기 위해 퇴근 후 서점에 갑니다. 물론 ‘읽고 싶은 책 목록’을 갖기까지의 여정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신문과 방송, 인터넷 및 지인추천 등을 통해 한 권의 책에 관한 정보를 습득하고 그 정보를 토대로 자신의 전체적인 느낌과 감상을 종합해본 뒤 최종적으로 책을 선택하게 됩니다.
서점에서 행복한 마음으로 책을 사서 나온 뒤 짧게는 이틀, 길게는 일주일가량 ‘또 다른 세계’로 나를 온전히 맡기는 모험을 하게 됩니다. 저항 없이, 편견이나 선입견을 최대한 배제하고 작가라는 창조주가 만든 인공의 세계로 여행을 떠나게 되는 것이죠. 여행은 시시한 경우도 있지만 때론 일상을 뒤흔들 정도로 강렬하기도 합니다. 끝나자마자 하얗게 잊히는 경우도 있지만 일평생 가슴에 남아 잔잔한 여운을 남기기도 합니다. 그렇게 복잡하고 번거롭고, 심지어 지루하고 고통스러운 여정을 지나야만 비로소 한 권의 책이 삶에 안착했다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최근 몇 년간 바쁜 독자들의 편의를 고려한 ‘독서에세이’가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독서에세이란 말 그대로 ‘책을 읽어주는 책’입니다. 한 권의 책 안에 여러 권의-적게는 몇 권에서 많게는 수 십 권의- 책을 담아 시간에 쫒기는 독자들에게 그 핵심만 전달하는 실용적인 장르이죠. 물론 해당 도서를 직접 읽지 않고 줄거리만 읽다보니 책 읽는 맛이 반감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콩닥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결말을 예측하며 읽는 짜릿한 맛은 없다는 얘기지요. 그러나 독서에세이에도 많은 장점이 있습니다. 제대로만 활용한다면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는 게 바로 이 장르입니다.
[출처] 예스24
하나, 안내자인 저자가 소개하고 추천하는 책들을 미리 만나볼 수 있습니다.
의외로 책을 읽고 싶지만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까마득하다 터놓는 분들이 많습니다. 선택장애로 힘겨워하시는 분들에게 독서에세이는 맛집블로거의 친절한 소개처럼 고맙게 느껴질 것입니다. 독서에세이 저자들은 대부분 자타가 공인하는 독서광이자 그 분야의 전문가들이니 그들이 소개한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을 것입니다. 그들이 추천한 책들을 간추려 나만의 독서목록을 재작성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일 것입니다.
둘, 타인의 의견을 다양하게 접할 수 있습니다.
알다시피 한 권의 책을 읽고 느끼는 점은 제각각입니다. 받아들이는 메시지와 교훈 역시 천차만별이죠. 혼자만의 세상에서 사색하며 책을 읽으면 생각할 시간이 충분하다는 장점이 있겠지만 저자의 생각이 담긴 독서에세이를 읽으면 나와 다른 타인의 의견을 엿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다양한 의견을 수용하고 이해하려 노력하는 것. 이보다 큰 공부는 없을 것입니다.
셋, 실용독서를 원하시는 분들의 시간을 최대한 절약해 드립니다.
많은 책을 읽고 싶지만 시간이 없다고 불평하시는 분들, 중심 주제와 줄거리만 알면 그만, 나머지는 시간낭비라 생각하시는 분들에게는 독서에세이가 가장 적합합니다. 수십 권의 책이 한 권에 담긴 책을 읽으며 본인이 원하는 핵심만 뽑아갈 수 있으니 제격이죠.
독서에세이도 종류가 매우 다양해 각자의 취향에 맞는 것을 선택하면 됩니다. 개중에는 CEO를 위한 인문학 독서에세이, 대학 신입생을 위한 교양인문 독서에세이, 청소년을 위한 추천 독서에세이, 방황하는 20대 청춘을 위한 독서에세이까지 연령과 신분을 고려한 독서에세이가 즐비합니다. 그 가운데서 필자의 마음을 흔들었던 독서에세이 몇 권을 소개할까 합니다.
김연수 저, <청춘의 문장들>, 마음산책, 2004.05.01
[출처] 예스24
최근 가장 ‘핫’한 소설가, 김연수의 청춘을 두드린 문장들은 무엇일까요? 그 해답은 이 책 안에 있습니다. 서른다섯의 작가는 그의 말마따나 인생이라는 풀코스 마라톤에서 이미 하프코스를 완주한 나이에 이르러 지나온 삶의 풍경들을 응시해봅니다. 그가 사랑했고, 아파했고, 그리하여 그를 뒤흔들고 지금의 그가 되는데 크고 작은 제 몫의 역할을 담당한 문장들을 한데 모은 것이죠.
저는 마라토너처럼 지치지 않고 꾸준히 좋은 작품을 발표하는 이 소설가의 청춘이 심하게 궁금했습니다. 튼실한 문학적 내공으로 오로지 글쓰기로만 승부하고 있는 작가를 바치고 있는 배경이 궁금했죠. 그는 자신의 젊은 날을 포장하지 않았으나 이 책에는 치열한 작가의 젊은 날이 고스란히 묻어있습니다.
장영희 저, <문학의 숲을 거닐다>, 샘터사, 2005.03.15
[출처] 예스24
척수성 소아마비를 앓던 1급 장애인, 두 번의 암 선고를 받고 투병생활을 견뎌낸 사람. 그러나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영미문학가이자 교수로 많은 이들에게 희망을 선물했던 故 장영희 교수. 이 책은 지난 2009년 타계한 장영희 교수의 독서에세이집입니다.
조선일보의 '문학의 숲, 고전의 바다' 코너에 실렸던 장영희 교수의 북칼럼 모음집으로 척추암 선고를 받기까지 약 3년간 연재된 글들을 모았으며, 세계의 고전문학들이 그녀 자신의 삶을 얼마나 풍요롭게 하였는지를 애틋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정혜윤 저, <세계가 두 번 진행되길 원한다면>, 민음사, 2010.03.12
[출처] 예스24
낭만적 독서가로 유명한 정혜윤 PD의 독서에세이입니다. 특히 이 책은 그녀를 방문한 아름다운 고전들을 소개하며, 고전은 지루하고 어렵다는 편견에 휩싸인 독자들을 고전읽기의 즐거움으로 안내합니다. <위대한 개츠비>에서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까지. <주홍글씨>에서 <마담 보바리>까지. 너무나 흔하게 들어온 이름인 만큼 제대로 빠져보려 시도해보지 않았던 고전들을 그녀만의 감각적인 언어로 풀어내고 있습니다.
독서의 계절 가을이 성큼 다가왔습니다. 유난히 숨 막히던 여름이 저물고 이제 가을이 제 차례의 옷으로 갈아입고 우리를 맞이하려 합니다. 책 읽기 좋은 계절 가을에 독서 에세이 한 권 읽으며 깊고 넓은 책 여행을 떠나보시기 바랍니다. 나머지 추운 겨울을 견딜 만큼 따스하고 강렬한 책으로요. 이만한 월동준비가 또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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