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의 인문학, 육체에 관한 아주 진지한 물음들

2013. 10. 7. 13:28다독다독, 다시보기/지식창고







최근 재미있는 책 두 권을 발견했습니다. 가장 본능적이고 원초적인 물음들, 즉 내 몸에 관해 떠오르는 진지한 질문들에 오목조목 답해 주는 책들을 만난 것이지요. 생각해보면 인체는 참으로 묘한 녀석입니다. 나면서 죽는 순간까지 나를 따라다니고 또 나를 규정하지만 정작 나 자신은 내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지 잘 모른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내 얼굴을 나만 볼 수 없다는 점과 마찬가지로 아이러니하기 짝이 없죠. 그런 의미에서 인체는 경이롭고 흥미로우며, 생소하기 짝이 없습니다. 




우리 몸에 숨은 특별한 지식들


우리가 우리 몸에 얼마나 무지한가는 아이가 태어나고 더듬거리며 말을 익혀 질문을 던지는 순간 더욱 확연해진다고들 합니다. 모든 것이 새로운 아이들은 간혹 생각지도 못했던 질문들을 마구 퍼붓습니다. 이를테면 이런 것들이죠. 


왜 아이스크림을 빨리 먹으면 머리가 아파요? 혀는 맛을 어떻게 느끼나요? 하품을 할 땐 왜 입을 벌려요? 등등. 너무나 당연해서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질문들도 아무렇지 않게 던집니다. 상처가 난 곳은 왜 가려워요? 물속에서는 눈이 왜 안 떠지죠? 아기들은 왜 엄지손가락을 빨아요? 등등.




[출처 - 교보문고]


아이들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게 되면 당혹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이는 마치 여름이면 비가 내리고, 겨울이면 눈이 오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현상들로 여기고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하거나 공부해보지 않았으니까요. 그런데 이러한 어처구니없는(?) 질문들에 친절한 답을 해주는 책을 만난 것입니다. <내 몸을 알고 싶다>. 이 책은 과학자이자 인류학자인 스티븐 주안 박사가 쓴 책으로 너무나 궁금했지만 차마 묻기 민망했던 질문들까지 수백 개의 질문에 정확한 답을 해줍니다. 그 질문이라는 것도 전 세계 다양한 인종, 연령, 직업대의 사람들로부터 받은 질문들이라 더욱 재미있습니다. 스티븐 주안 박사는 방대하고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엉뚱한 질문에 답을 해주는 한편 우리가 오해했던 잘못된 상식들을 바로잡아주는 역할도 합니다. 


전 세계 다양한 사람들이 던진 질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왜 하품을 할 때는 입을 크게 벌리고, 후춧가루를 들이마시면 재채기를 할까? 아니면, 좀 더 진화적 관점에서 이런 질문도 있을 수 있습니다. 사람은 왜 나이가 들면 미각이 떨어질까? 인간의 다음 진화는 어떤 식으로 전개될까? 혹은 사회 인류학적인 관점에서 인간은 왜 박수를 쳐서 동의를 표하는지, 우리는 왜 어떤 사람에게는 매력을 느끼고 어떤 사람에게는 그렇지 않은지, 또 실제 외모가 고용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여러분은 이러한 것들이 참을 수 없이 궁금한 적 없나요? 


이 책은 재기발랄한 질문과 답변을 통해 내 몸과 그 안에 숨어 있던 인문, 사회, 역사, 과학, 의학적 지식들을 한데 어우릅니다. 호기심을 해결하며 답답한 곳을 긁어주는 동시에 지적 충만감을 채워주고 소소한 재미까지 느끼게 하는 책이죠. 한창 궁금증이 많은 아이를 키우고 있다면 이 책 한 권쯤 상비해두어도 좋을 듯합니다.  



동의보감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


<고미숙의 몸과 인문학>의 저자 고미숙은 고전평론가로 유명한 분이죠. ‘공부는 지상 최고의 가치’라는 주장(?)으로 더욱 유명해지셨고요. 저는 그녀의 글들을 참 좋아하는데 읽다보면 지긋지긋했던 공부가 재미있는 놀이처럼 다가오기도 합니다. 아마도 많은 분들이 이러한 점 때문에 그녀의 글들에 매료되는 듯합니다.




[출처 - 교보문고]


<고미숙의 몸과 인문학>은 <동의보감>의 시선에서 우리 사회의 문화, 정치, 경제 등에 대해 진단한 인문비평 에세이입니다. 전작 <동의보감,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와 <나의 운명 사용설명서>와 함께 짝을 이루는 동양의학과 역학에 대한 입문서로, 이 책에서 그녀는 우리 사회의 제반 현상 및 문제에 대해 직접적으로 이야기하며 동양의역학적 관점으로 사회비평을 시도합니다. 몸, 교육, 정치, 사회, 경제, 여성, 가족, 사랑, 운명 등 총 8개의 카테고리 안에서 저자는 기존의 보수, 진보 등과 같은 이분법적 틀에 갇힌 사회비평이 아닌 새로운 패러다임의 비평을 선보인다는 평을 받습니다. 


몸은 무엇일까요? 저자는 몸이야말로 ‘삶의 구체적 현장이자 유일한 리얼리티’라 이야기합니다. 그녀는 우울증과 공황장애 등 각종 심리적 질병이 유행처럼 번진 우리 사회에서 현대인들의 삶을 관찰하며, 이러한 사회의 제반 문제들을 ‘몸’과 결부시켜 바라봅니다. 그녀는 우리들 몸이야말로 가장 깊으면서 동시에 가장 투명하고, 가장 체계적이면서 동시에 가장 야생적이라고 설명합니다. 따라서 소외와 억압의 굴레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유일무이한 길이 그 안에 있다고 말이지요. 헌데 그 길을 탐사하다 보면 광활한 우주가 펼쳐집니다. 정치와 양생이 마주치고, 여성성과 지혜가 결합하며, 교육의 원리와 음양의 이치가 교차하는 것이지요. 저자는 이를 몸과 우주의 ‘정치경제학’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옳거니! 이쯤 되면 몸은 그저 단순한 피부겹겹의 고깃덩어리가 아니라 온 우주를 내포하고 있는 소우주쯤 될 것입니다. 


몸을 안다는 것은 사회를 읽는 것에도 탁월한 힘을 발휘합니다. 책 속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사회 전반에 불고 있는 동안열풍이나 성형중독 등은 성숙하기를 거부하게 만드는 자본주의의 산물이고, 건강은 삶에 대한 지혜와 떨어질 수 없는 것이라는 현대사회가 만들어낸 몸에 대한 잘못된 인식에 메스를 들이대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녀가 들려주는 ‘몸과 인문학’의 뒷이야기들은 현 우리사회를 새롭게 분석하고 바라보는 데도 큰 도움을 줍니다. ‘몸’이라는 하나의 주제로 이토록 많은 이야기들을 풀 수 있는 저자의 역량이 감탄스럽습니다. 부럽기도 하고요. 



인용도서

스티븐 주안 저, 홍수정 역 <내 몸을 알고 싶다>, 청림출판, 2011.10.25

고미숙 저, <고미숙의 몸과 인문학>, 북드라망, 2013.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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