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계의 거장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 ‘재밌게 비평하라!’

2013. 10. 11. 13:14다독다독, 다시보기/지식창고





독일에서 ‘문학의 교황’이라고 불리는 문학비평가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 독일 문학계를 뒤흔든 최고 권위의 비평가였던 그가 지난 9월 향년 93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우리에게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라이히라니츠키는 독일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유명인입니다. 실제 그가 세상을 떠난 날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애도 성명을 발표했고 그에 대한 영상이 그날 TV화면을 채우기도 했습니다. 작가도 아닌 평론가가 이렇게 유명하게 된 사례는 전 세계적으로도 거의 없죠. 그래서 다독다독에서 준비한 특별한 소개!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입니다.




▲마르셀 라이히나니츠키와 그의 부인 [출처 - ARD Kultur]


그는 2차 대전 후의 독일에서 가장 성공한, 가장 영향력이 큰, 동시에 가장 논란이 된 문학평론가로 알려져 있는데요. 그래서 논란과 비난, 비판의 대상이라고도 할 수 있죠. 하지만 독문학 교수이자 비평가인 토마스 안츠는 그를 “평론가로서 그 이상을 이룰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어떤 사람도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의 문학에 그처럼 깊은 족적을 남기지는 못했다”라고 표현했습니다.




▲마르셀 라이히니츠키 생전 모습 (맨 오른쪽) [출처 -  ARD Kultur]


그는 TV 프로그램인 <문학 4중주(Literarische Quartett)>로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졌는데요. 무려 13년에 걸쳐 진행된 이 서평 프로그램에서 그의 문학 비평은 독일을 비롯해 유럽 출판계에 큰 영향을 미치기도 했습니다. 특유의 거침없는 언변과 날선 판단으로 시청자들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물론이고요. 무수한 작품들에 대한 그의 판단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많았지만 그가 독일에서 비평가의 대명사로 우뚝 선 인물이라는 것, 문학에 대한 일반의 관심을 누구보다도 크게 불러일으킨 사람이라는 것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게다가 대중적이고 떠들썩한 삶을 누렸던 그의 자서전 <나의 생애(Mein Leben, 1999)>는 지금까지 120만 권이 팔려 독일 최고의 베스트셀러 중 하나인데요.



사로잡힌 영혼 | 마르셀 라히니라니츠키 | 2002 | 빗살무늬




[출처 - yes24]


라이히 라니츠키의 자서전, 파란만장하고도 감동적인 자신의 인생을 풍부한 일화를 곁들여 다채롭게 묘사했다. 아울러 <디차이트>의 고정 비평가 및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네 차이통>의 문학부장 시절, 잉게보르크 바흐만, 볼프강 쾨펜, 막스 프리쉬를 비롯한 여러 독일 현대 작가들에 대한 회상을 담아 독일 문학계에 대한 풍부한 정보와 문학계가 갖고 있는 의외의 면모를 신랄하게 그려냈다.



우리나라에서는 『사로잡힌 영혼』으로 출간된 이 책은 독일에서 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 리스트에 올랐으며 해를 넘겨 2000년까지 53주간이나 연속으로 슈피겔 비소설 부문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하였습니다. 비평가이자 문학저널리스트인 그는 이 책으로 독일에서 가장 성공한 작가가 되기도 했죠. 우리나라에서는 소설가 신경숙씨도 <지식인의 서재>에서 이 책을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은 제게 묻습니다. 한 권의 시집이나 소설에 대한 평가를 어떻게 내리냐고요. 책을 읽다보면 어떤 책은 제게 즐거움을 줍니다. 반면에 지루한 책도 있고요. 사태가 아주 흥미로운 책도 있고 시들한 책도 있습니다. 가슴이 뛰기도 하고 무릎을 치기도 하지요.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에 그 책을 읽었을 때 내게 생겼던 감정이며 느낌의 이유가 무엇인지 곰곰이 따져 봅니다. 납득할만한 이유가 당장 생각나지 않을 때도 있지만 결국은 밝혀지게 마련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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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강한 힘이라고 표현한 것은 하늘에서 거저 떨어진 게 아닙니다. 그것은 수십 년에 걸쳐 타자기로 글을 쓴 결과입니다.


- 어느 독일 문학비평가의 내면 풍경(페터 폰 마트와의 대담) 中 -



그가 가장 중요시 여기는 글쓰기의 대원칙은 간결, 단순, 명료, 평이함, 신랄함이라고 합니다. 내용에 있어 재미와 오락을 아주 중요시 여기는 것도 그에게는 당연한 것이었죠. 독자를 지루하게 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의 비평을 읽다보면 오랜 사색이 바탕이 되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함축적인 문장들이 돋보이는데요. 오랜 세월 걸쳐 종합하고 수정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나오기 힘든 문장들이며 그의 판단들은 대개 정확했습니다. 


폴란드인 아버지와 독일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는 1929년 폴란드를 떠나 독일 베를린에서 성장했으나 1938년 폴란드로 강제 추방된 후 수용소를 탈출해 1958년 서독으로 넘어옵니다. 당시 독일 작가 귄터 그라스가 그에게 “당신은 폴란드인입니까, 독일인입니까”라고 묻자 그는“나는 반편의 폴란드인, 반편의 독일인, 그리고 온전한 유대인입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의 이 같은 유대인 정체성은 『작가의 얼굴』에서도 여실히 드러나는데요. 그가 논한 40여명의 작가 중에는 독일을 대표하는 작가들도 있지만 대부분이 유대인입니다. 



작가의 얼굴 - 어느 늙은 비평가의 문학이야기 |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 지음 | 2013 | 문학동네




[출처 - 교보문고]


평생을 독일문학에 헌신해온 한 늙은 비평가가 권하는 책을 보라! 독일 문학비평가이자 ‘문학의 교황’이라 불리우는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가 사랑한 작가들을 소개한 책이다. 특히 지인들에게서 선물로 받은 그림부터 경매장이나 골동품상 같은 곳에서 구입한 그림까지 저자가 평생 수집한 작가들의 포상화가 60점 넘게 실려 있으며, 철판화, 석판화 에칭, 드라이포인트 등 그림의 종류 또한 다양하다. 저자는 이런 작가들의 초상화를 한 점 한 점 소개하며 그들의 삶과 문학에 대한 이야기를 진솔하게 풀어놓는다. 때로는 진지하고, 때로는 유쾌하지만 특유의 솔직하고 명료한 표현이 돋보이며, 유대계 작가들에게 보이는 그의 편애를 엿볼 수 있다. 



라이히라니츠키가 지나치게 솔직하고 독선적인 태도에도 불구하고 ‘문학의 교황’으로 군림한 이유는 작가와 문학을 대하는 자기만의 뚜렷한 비평관 때문인데요. 그의 글은 때로는 진지하고, 때로는 유쾌하지만 특유의 솔직하고 명료한 표현만큼은 일관됩니다. 거기에 쉬운 말로 곧장 정곡을 찌르니 작가들 사이에선 가장 미움 받는 평론가로 통했겠죠? 하지만 그는 독자들에게는 책을 고르고 읽기에 아주 유용한 팁을 제시하였기에,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우리에게 읽는 법을 가르쳐 준 사람’이라고 표현합니다. 또한 그는 작가의 명성이나 중요도에 상관하지 않고 자신만의 독자적인 판단을 주저 없이 표명했고, 혹독하리만치 부정적인 그의 판단들은 대서특필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혹평이든 호평이든 그가 언급한 책들은 확실히 더 잘 팔렸다고 하니, 판매량만 생각한다면 혹평이라도 받는 것이 훨씬 나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에둘러 말하지 않고, 어렵게 말하지 않으며, 자신이 아는 것에 대해서만 말하는, 재미있는 문학 비평! 평소 문학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면 그의 비평을 먼저 읽어보세요. 우리의 삶에서 왜 문학이 필요한지, 왜 거장들의 고전을 읽어야 하는지 자연스레 알 수 있는 시간이 될 테니까요. 




ⓒ 다독다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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