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삼관 매혈기’ 작가 위화 “좋은 작가가 되려면..”

2013. 10. 14. 10:18다독다독, 다시보기/현장소식





<허삼관 매혈기>. 제목만 봐서는 무슨 뜻인지 단번에 알기 어렵지만, 이만큼 내용의 의미를 잘 담고 있는 제목도 없습니다. <허삼관 매혈기>는 제목 그대로 가족을 위해 기꺼이 피를 파는 ‘허삼관’이라는 아버지의 파란만장한 이야기입니다. ‘위화(余華)’는 1996년에 발표한 이 소설을 통해 중국이 낳은 세계적인 작가 반열에 올랐습니다.




▲ (좌) 연극 <허삼관 매혈기>의 한 장면, (우) 영화 <허삼관 매혈기> 감독 겸 배우 하정우 

[출처 - 동아닷컴]


이 작품은 연극으로도 제작돼 큰 호응을 얻었고, 2014년 상반기에 인기 배우 하정우가 연출 겸 주연으로 크랭크인이 예정돼 있는데요. 이미 유명한 소설이지만, 영화화를 앞두고 대중들의 이목 또한 한껏 집중되고 있습니다.


지난 29일 ‘파주 북소리 2013’에 신작 장편소설 <제7일>의 출간을 기념해 작가 위화가 한국을 찾았습니다. 많은 이들의 관심 속에서 열린 위화 작가의 특별 강연 현장, ‘다독다독’이 다녀왔습니다!






치과의사에서 작가가 되기까지


위화는, 흔히 대륙을 휩쓴 광기라 불리는 ‘문화대혁명’ 시기에 중․고등 학업을 마쳤습니다. 문화대혁명으로 개혁이 시작된 1978년도만 하더라도, 개인은 자신의 직업을 선택할 권리가 없었습니다. 나라에서 개인의 직업을 정해주었다고 하는데요. 그래서 스스로 직접 진로를 찾는 건 상상하기 어려웠다고 합니다. 그렇게 시작된 위화의 첫 직업은 치과의사였습니다.


5년 동안 환자들의 이를 보며 일상을 보내온 어느 날, 위화는 꽤나 ‘한가’해 보이는 문화관 사람들과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을 통해 문화관에서 일하는 방법을 듣습니다. 그림을 그리거나 곡 또는 글을 쓰면 됐지만, 글을 제외한 나머지는 처음부터 배워야 했죠. 그래서 아는 한자로만 글을 써도 충분한 ‘소설’을 선택했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단편소설부터 시작해 중국 문학 잡지사에 열심히 투고를 했지만, 원고는 언제나 반송됐다고 하는데요. 그 때 위화의 소설들이 다시 돌아오면서 거쳤던 도시들이, 지금까지 위화가 다닌 도시들보다 많다고 합니다.


그렇게 위화는 83년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했고, 84년도에 소설을 발표했으며, 87년도에는 중국에서 소설로 어느 정도 이름을 알렸습니다. 유명세를 자각하게 된 계기로 ‘이전에는 내가 원고를 먼저 보냈는데, 이제는 그들이 내 원고를 원하기 때문’이라고 말하며 너털웃음을 흘렸습니다.




‘글쓰기’와 ‘독서’는 위화에게 어떤 의미일까


무엇이든 오랫동안 마음을 들이면 그만큼 소중해집니다. 위화 역시 마찬가지였는데요. 글을 쓰게 되면서 이 일을 더욱 사랑하게 됐다고 합니다. 작가에게 있어 글쓰기는 아주 아름다운 일이라고 거듭 말하던 위화. 좋아하는 것이지만 일이기도 한 ‘글쓰기’와 ‘독서’는 정신건강에도 큰 도움이 됐다고 합니다.


사람이 이 세상에 오면 다양한 감정들을 느끼게 됩니다. 하지만 사회의 현실적 제약 때문에 그 감정을 모두 표출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때문에 책을 읽는 과정에서 등장인물에게 자신을 대입하고, 그들의 운명을 함께 읽어나가며 자신의 감정을 표출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독서는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위화가 말하는 문학 : ‘상상력’ ‘통찰력’ ‘현실적 비유’


어딘가 특이하면서도 일상적인 면모를 들려주는 소설가이기 때문에 ‘문학’에 대하여 좀 더 특별한 정의를 가지고 있을 것 같았지만, 그의 문학관은 명확하고 간결했습니다. 그는 글에 날개를 달아줄 ‘상상력’도 필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통찰력’도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상상력만 있고 통찰력이 없다면 헛된 생각으로 남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요. 통찰력은 글 속에서 디테일한 묘사 외에 비유에서도 드러나기 때문에, 어느 정도 현실적이어야 한다는 거죠. 신화나 황당한 소설을 쓸지라도 현실적인 부분은 필요하다는 게 그의 설명입니다.





가령 ‘누군가 죽어서 더 이상 세상에 소리를 남기지 않는다.’라는 문장을 두고, 젊은 작가들은 ‘오래된 노래처럼 사라졌다.’라고 표현할 것이고, 조금 나이가 있는 작가들이라면 ‘그가 죽었다.’며 사실적으로 쓸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위대한 작가는 훌륭한 비유를 쓸 것이라는데요. 그는 아르헨티나 작가의 문장 중 ‘물이 물속으로 사라졌다.’라는 표현이 상상력과 통찰력을 잘 결합한 예라고 말합니다. ‘죽음’을 이보다 더 깔끔하게 표현할 수 없다는 거죠.


마지막으로 그는 등장인물을 잘 이해해야 하는데, 셰익스피어의 희곡 중 막과 막이 연결되는 부분에 쓰인 글들이 이러한 모습을 잘 담고 있다고 말합니다.





‘온 몸에 피가 흐르는 사람이 개를 끌고 무대에 나타났다. 식당 한가운데에서 개가 오줌을 쌌다. 그래서 식당 사람들이 개를 때리려 했다. 개가 맞는 게 싫어서 내가 오줌을 쌌다고 말하니, 사람들이 나를 때렸다.’ 위화가 든 예문입니다. 비록 내용은 이상할지라도 그 과정은 논리적이고 뚜렷하기 때문에, 등장인물이 미쳤다는 것을 알 수 있다는 겁니다. 셰익스피어 희곡은 과장된 부분이 많습니다. 하지만 이런 과장이 힘 있게 다가오는 건 정확한 표현을 사용했기 때문이라는데요. 그건 상상력과 통찰력, 현실적 비유가 적절히 결합되었다는 거겠죠?


강연 마지막은 독자들의 작가와 작품에 대한 궁금증을 해결하는 ‘Q&A' 시간으로 꾸며졌는데요. 그의 애독자임을 자청한 많은 사람들의 질문이 쏟아졌습니다.






Q. 위화 작가님은 이야기꾼이라 불리시는데, ‘좋은 이야기’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좋은 이야기’라는 건 스토리 자체에 있지 않다. 그 이야기를 얼마나 생동감 있고 풍부하게 표현하는지가 중요하다. 결국 이야기를 읽었을 때 독자들의 감정을 얼마나 불러낼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그래서 사람을 감동시키는 글일수록 오히려 단순할 수 있다. 많은 작가들이 표현할 때 디테일한 표현에 초점을 둔다. 그걸 어떻게 표현하는지가 중요한 거라고 생각한다. 


Q. 독자의 입장에서는 결말도 중요합니다. 마무리는 어떻게 하는 게 좋은 건지 궁금합니다.


어떤 글은 결말이 맺어진 동시에 이야기도 끝이 난다. 또 다른 글은 결말이 없는 상황에서 끝이 나는 경우도 있다. 또 어떤 경우에는 이것도 저것도 결말이 될 수 있는 모호함을 가지고 있다. 저는 이 세 가지 다 좋은 방법이라고 여긴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쓰는 소설에 어떤 결말이 가장 어울리는지 깊게 생각해보고 선택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Q. 생동감 있는 표현은 직감, 계산, 무의식 중 어디에서 나오며, 좋은 작가가 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인가요?


(저 같은 경우에는) 거의 직감으로 쓴다. 어떤 부분은 간단하게 쓰고, 또 어떤 부분은 상세하게 써야 할 것 같은 느낌이 있다. 예전에 어떤 독자를 위해 글을 쓰는지 질문을 받은 적 있다. 하지만 이런 질문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독자는 다양하기 때문이다. 또 많은 사람들이 책을 읽었을 때 좋아하는 부분도 상이하기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작가나 모든 사람을 위한 책을 쓰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자신을 위해서, 독자들을 위해서 글을 쓰기도 한다. 자신도 소설을 많이 읽는 한 명의 독자이기 때문이다.


Q. ‘작가’란 무엇인지 한 줄로 표현해주세요.


한 문장으로 ‘작가’를 말하는 건 아주 힘든 일이다. 다만 전에 봤던 프랑스 영화의 한 주인공이 작

가였는데, 자신이 작가인 것을 아주 자랑스럽게 말한 대목이 있었다. ‘작가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함으로써 돈을 버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사실 작가에 대한 정의는 이게 아주 정확하다고 생각한다.



위화의 작품은 지극히 현실적이라 슬프지만, 그 속에 깃들어있는 해학에 웃음을 유발하기도 합니다. 한 시간이 족히 넘는 강연에서도, 곳곳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아마 작품 속 특유의 분위기는, 이러한 작가의 성격이 분명 어느 정도 투영된 것이겠죠? 위화는 진정성과 재미 사이를 능수능란하게 오갈 줄 아는 작가였습니다.





‘모든 작품은 누군가가 읽기 전까지는 단지 하나의 작품일 뿐이지만, 천 명이 읽으면 천 개의 작품이 된다. 만 명이 읽으면 만 개의 작품이 되고, 백만 명 혹은 그 이상이 읽는다면 백만 개 혹은 그 이상의 작품이 된다’. 위화 작가 서문의 일부입니다. 이미 전 세계 수많은 독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지만, 오늘보다 내일 더 큰 작품이 될 수 있도록 우리 같이 위화의 책을 펼쳐보는 건 어떨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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