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정호승의 ‘내 인생의 용기가 되어준 한마디’

2013. 10. 18. 13:22다독다독, 다시보기/현장소식





“‘외로움’이란 혼자 있는 고통을 표현하기 위한 말이고, ‘고독’이란 혼자 있는 즐거움을 표현하기 위한 말이다.” 독일에서 이주한 미국의 철학자이자 신학자인 폴 틸리히는 ‘외로움’과 ‘고독’을 서로 다른 차원에서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울지 마라 /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라고 시작하는 ‘수선화에게’라는 시, 국어 교과서에도 실리고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애송되기도 해 한 번쯤 들어보셨을 텐데요. 이 시 역시 ‘외로움’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해 외로운 이들에게 큰 위로와 희망을 주고 있습니다. 이 시를 쓴 정호승 시인을 지난 29일 파주출판단지에서 ‘독(讀)한 습관’ 7번째 연사로 만날 수 있었습니다. ‘내 인생의 용기가 되어준 한마디’라는 주제로 펼쳐진 정호승 시인의 특별한 이야기.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사랑의 세 가지 본질 ‘희생’ ‘책임’ ‘용서’



여행


사람이 여행하는 곳은 사람의 마음 뿐이다

아직도 사람이 여행할 수 있는 곳은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의 오지 뿐이다

그러니 사랑하는 이여 떠나라

떠나서 돌아오지 마라

설산의 창공을 나는 독수리들이

유유히 나의 심장을 쪼아 먹을 때까지

쪼아 먹힌 나의 심장이 먼지가 되어

바람에 흩날릴 때까지

돌아오지 마라

사람이 여행할 수 있는 곳은

사람의 마음의 설산 뿐이다



정호승 시인 말에 따르면 우리는 지구 속에 사는 ‘여행자’라고 합니다. 인생은 여행이고, 그 여행은 ‘삶’과 ‘죽음’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하는데요. 정호승 시인에게 ‘삶’이라는 여행은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사랑’을 찾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1) “‘희생’ 없는 사랑은 존재하지 않는다”


정호승 시인은 세상에서 가장 만만한 사람은 ‘어머니’이며, 만만한 사람이 있다는 건 삶의 가장 큰 축복이라고 말합니다. 어머니의 ‘사랑’은 모성을 바탕으로 한 무조건적인 사랑이기 때문에 ‘희생’이라는 본질을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2) 사랑에는 ‘책임’이 따른다


책임감 없는 사랑의 선택은, 순간은 즐거울지 몰라도 상대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안겨줍니다. 정호승 시인 역시 사랑의 두 번째 본질은 ‘책임’이라며 가정을 그 예로 들었습니다. 자신 역시 누군가에게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했고, 그 말을 책임지기 위해 결혼을 했다는 겁니다. 가정을 형성하니 아이들이 태어났고, 결국 가정을 만드는 건 제 자신이니 제가 형성한 가정은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는 겁니다.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고 책임질 줄 아는 게 ‘사랑’이라는 정호승 시인의 말을 여러분들은 공감하시나요?



3) ‘용서’는 관점의 차이다


정호승 시인은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에 누군가를 미워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관점의 변화로 ‘용서’의 새로운 방법을 제안합니다. 미움에 관점을 두면 ‘난 너를 미워한다’, 사랑에 관점을 두면 ‘나는 너를 덜 사랑한다’로(라고) 달리 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전자는 다시는 사랑하지 않겠다는 말을 전제한 것이고, 후자는 사랑은 하지만 덜 사랑하겠다며 다소 누그러뜨린 표현이라는 건데요. 그래서 그는 누군가가 미울 때 ‘나는 너를 덜 사랑한다’라고 생각한다고 하네요. ‘사랑’을 선택하니 삶이 한결 평화로워졌다고 합니다.





헨리 나우웬의 <탕자의 귀향> 속 ‘관계가 힘이 들 때 사랑을 선택하라’라는 구절과 렘브란트의 그림 <돌아온 탕자>를 통해 이러한 용서의 가치와 자세를 살펴볼 수 있다고 합니다. 이어 그는 “내가 누군가를 용서하면, 내 잘못 또한 누군가에게 용서받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게 바로 ‘용서’의 중요성이라는 거죠.



풍경 소리


운주사 와불님을 뵙고 

돌아오는 길에 

그대 가슴의 처마 끝에 

풍경을 달고 돌아왔다 

먼데서 바람 불어와 

풍경 소리 들리면 

보고 싶은 내 마음이 

찾아간 줄 알아라



또한 그는 관계라는 개념을 ‘풍경 소리’라는 시로 운을 띄었습니다. 풍경은 바람이 있기 때문에 제 소리를 가장 아름답게 낼 수 있습니다. 서로가 있음으로써 존재의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건데요. 만약 바람이 풍경을 미워했다면, 풍경이 아름다운 소리를 낼 수 있었을까요? 






시 <수선화에게>를 통해 본 ‘외로움’과 ‘고독’의 차이


정호승 시인의 대표 시 <수선화에게>는 10년 만에 찾아온 동기가 너무나 외롭다는 고민을 털어놓은 것에 대한 답이라고 합니다. ‘외로움’은 인간의 본질이며, 모든 사람은 외롭고, 사람이기 때문에 외롭다는 것입니다. 결국 외로우니까 사람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는데요.


그는 ‘외로움’과 ‘고독’을 구분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외로움’은 사회적이고 상대적인 개념이라는데요. ‘혼자’라는 말도 마찬가지입니다. 외로운 이웃이라는 말은 쓰지만, 고독한 이웃이라는 말은 쓰이지 않는 것처럼 말이죠. 





반면 ‘고독’은 절대적인 개념이라고 합니다. ‘홀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즉 함께 있고 싶데 혼자 있는 것이 ‘외로움’, 내 존재의 의미와 가치를 성찰하고플 때 자발적으로 선택하는 행위가 ‘고독’이라는 것입니다.

또 그는 ‘외로움’이라는 건 사랑이 결핍돼 있거나 누군가를 사랑할 때 발생한다고 말합니다. 그런 모순된 구조를 가지고 있는 게 ‘외로움'이라는 건데요. 따라서 우리는 외로울 수밖에 없는 존재라며 그는 성숙한 ’위로‘를 건넸습니다.


강의 후에는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는데요. 정호승 시인의 책에 대한 생각은 물론 책과 함께한 지난 나날들을 살짝 들어볼 수 있었습니다.






Q. 책 읽기 습관을 위한 시인님만의 방법이 있으신가요?


책 읽는 건 밥 먹는 것과 같다. 육체의 배고픔을 위해 밥을 먹고, 영혼이 고플 때는 책을 읽는 거다. 누구나 배고프면 밥을 먹기 위해 시간을 낸다. 마찬가지로 책도 읽기 위해 시간을 내야 한다. 내 방과 작업실은 창피할 정도로 잡지부터 단행본까지 이것저것 쌓여 있다. 그것은 내 나름의 ‘책 읽기’ 방법이다. 책은 항상 손 닿는 곳에 있는 게 중요하다.


Q. ‘용서’라는 게 참 쉽지 않은데요. 이전에 용서를 해줬는데 그 사람이 같은 잘못을 또 저질렀을 경우에도 용서를 해주어야 할까요?


그렇기 때문에 용서라는 게 어렵다. 인간의 본질 속에는 선과 악이 공존한다. 마음속에 있는 악을 조금이라도 선한 방향으로 틀도록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용서하는 것 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 어머니를 한 번 생각해보자. 어머니는 잘못을 거듭해도 용서해주지 않는가? 그래서 모성을 통과한 사람은 진정한 용서와 사랑에 도달할 수 있는 것 같다.


Q. 시인님이 20대 때 가치관을 형성하기 위해 읽었던 책의 종류와 책을 고르실 때 어떤 점을 고려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사실 나와 내 윗세대는 읽을 책이 많지 않았다. 중 2때, 아버지가 한국문학전집 33권짜리를 사주셨다. 그 때부터 책을 읽기 시작했다. 도서관에 있는 세계 명작 다이제스트도 읽었다. 동네의 돈을 주고 책을 대여해주는 곳에서 빌려 읽기도 했다. 시는 그 당시 학생들을 위한 <학원>이라는 잡지가 있었다. 그 잡지에는 고등학생들이 투고한 시를 박목월, 박두진, 조지훈, 박남수 같은 시인들이 일일이 평해서 실어주는 코너가 있었다. 그게 놀랍고 신기했다. 나 역시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투고를 하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버지가 한국문학전집을 사주신 걸 감사히 생각한다. 그래서 아직도 가지고 있다. 


30대 초반까지는 시집을 많이 봤다. 요즘은 대체로 ‘인간의 존재는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에 대해 깊게 생각할 수 있는 책들을 찾아 읽고 있다.





이번 독(讀)한 습관 강연은 ‘사랑’, ‘상처’, ‘외로움’에 대한 생각을 들어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이 세 가지는 삶을 살아간다면 언제나 우리 곁에 맴돌 단어들이기 때문에, 그의 말 하나하나가 한층 깊게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시’는 시인의 것이 아니라 읽는 사람의 것이라고 말하는 정호승 시인. 제법 추운 요즘, 가슴 포근해지는 정호승 시인의 시로 가을밤을 물들여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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