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작품 속 ‘시적 허용’, 어디까지 허용해야 할까?

2013. 10. 23. 14:53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시적허용


시는 인간의 다양한 감정과 정서를 섬세하게 표출하는 문학이기 때문에 시 창작에 있어서 인간의 감정은 인간이 만들어 놓은 어휘보다 더 섬세한 예술적 효과를 얻기 위하여 용인된 기준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가정으로서 문법, 어법, 리듬, 운(韻), 역사적 사실 등에서 이탈의 구실로 인용된다. 이를 시적허용 또는 시적자유, 시적 파격(詩的破格)이라고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시적 허용 [詩的 許容, Poetic licence, license poétique]



오직 문학에서만 허용되는 합리적인 도구 중의 하나. 바로 ‘시적 허용’입니다. 학창시절 국어시간에 자주 들었던 시적허용은 특히 시를 창작하는 과정에서 자주 사용되는 특별한 장치입니다.



'시적 파격, 시적 자유, 시적 허용.'


모양은 다르지만 뜻은 비슷한 말들이다. 의미를 살리기 위해 문법을 어긴 표현,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 표현을 인정하는 것을 가리킨다. 미당 서정주의 시 <국화 옆에서>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가운데 '머언, 노오란'이 바로 시적 파격인 것. 


[출처] 이진원 기자, '섀시'와 '새시', 바른말 광, “부산일보”, 2013-03-05

 


‘시적 허용’은 다양한 감성을 전달하는데 효과적이라서 시 뿐만 아니라 노래 가사에도 다채롭게 나타납니다. 하지만 이로 인해 자칫 맞춤법 파괴를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도 있는데요. 방송심의 규정에서는 가사에 드러나는 시적 허용에 엄격한 잣대를 가하기도 합니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예술 콘텐츠 창작의 과정을 이해하지 못한 행태라는 지적이 있습니다.




▲ 가수 장기하 [출처 - 서울신문] 



장기하는 9일 새벽 0시 10분께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드라마에서 허용되는 비표준어나 비속어가 음악에 있어서는 방송심의 부적격 사유가 된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라며 "시적허용을 고려한다면 오히려 가사에 더 관대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이의를 제기했다.


[출처] 김유진 기자, 장기하 "방송심의 이해 어렵다..시적 허용 돼야", “머니투데이”, 2011.05.09. 



할리우드의 유명 작가 Amy Tan은 “Mother Tounge”에서, 본인이 영문과에 진학할 수 있었던 이유로 유난히 낮았던 본인의 영어 성적을 꼽습니다. 언어 성적이 낮아 작가가 되었다니 매우 아이러니 한데요. 그녀는 작가에게 언어는 도구일 뿐이므로, 정형화된 맞춤법에 얽매이지 않아도 된다고 말합니다. Amy Tan은 비록 자신의 영어 성적은 좋지 않았지만 언어를 남들과는 다르게 보는 시각을 지녔기 때문에 더욱 형식에 얽매이지 않았고, 개성 있는 글을 쓸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 할리우드 유명 작가 Amy Tan [출처 - 교보문고]




합리적인 ‘시적허용’


아름다운 감성과 특정한 느낌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시적허용은 작품을 감상하는 이의 공감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러나 다른 목적으로 쓴 과도한 시적허용은 껍데기만 시적허용일 뿐이라는 논란을 야기하기도 했지요. 표현의 자유라는 입장과 대중문화가 미치는 영향력을 생각하면 엄격하게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은 아직까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습니다.




▲ PPL 의심을 받았던 드라마 ‘착한 남자’. 제목 변경 전의 ‘차칸 남자’ 포스터

[출처 - 헤럴드경제]



KBS 드라마 ’차칸 남자’를 둘러싼 맞춤법 논란이 시끄럽다. 한글단체들은 방송가처분신청까지 냈지만 KBS는 ‘시적 허용’이란 테두리에서 이해해달라는 설명이다. 시적 허용이란 시의 맛, 감동을 위해 시에만 허용되는 문법적 예외 상황을 말한다. ‘차칸 남자’는 알고 부러 그랬다지만 모르는지도 모르고 틀리면서 막말을 밥 먹듯 하는 방송언어의 실태는 또 어떤가. 


[출처] 차칸 남자, 쉼표, 헤럴드 경제, 2012-09-18

  



창작 과정을 이해하는 유연한 사고 필요해


‘시적 허용’의 정도가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문학이 다양하게 해석될 여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시적허용은 전체적인 글의 분위기와 맥락, 읽는 사람의 경험에 따라 달리 읽힐 수 있다는 것인데요. 이에 대해 엄격한 잣대나 기준을 적용한다는 것 자체에 의문을 품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공공연히 음주 장면과 클럽신, 욕설과 잔인하거나 선정적인 내용이 등장하는 드라마는 황금시간대 방송이 용인되고 있는 상황에서 가요에만 너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또 가사의 앞뒤 문맥과 상관없이 단어 하나 때문에 유해매체판정을 받는 경우도 적지 않다. 심지어 '시적 허용' 개념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은유적 표현까지도 애써 선정적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출처] 이민지 기자, 쏟아지는 유해매체판정 곡, 왜 노래만? 가요계 억울 항변 , 뉴스엔, 2011-08-09 



‘창작의 글을 쓰고자 할 때는 언어의 규칙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는 Amy Tan의 의견처럼 문학에서는 작가의 의도에 따라 개성 있고 특별한 언어가 종종 사용됩니다. 다양한 작품들이 독자들에게 더욱 흥미롭게 다가가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시적허용은 필요합니다. 넘쳐나는 예술작품의 홍수 속에서 시적허용의 범위에 대해서는 아직도 많은 논의가 있어야겠죠? 다독을 통해 독자 스스로의 안목을 키운다면, 창작의 과정이라는 시각으로 시적 허용에 좀 더 유연하게 접근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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