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2. 16. 13:08ㆍ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가난은 나라님도 못 구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아무리 도와준다 하더라도 스스로 가난에서 벗어나려 노력하지 않으면 별 수 없다는 말이지요. ‘가난은 죄가 없다’고는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가난에 편견을 갖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결국 개인의 무절제나 게으름 때문 아니겠냐는 겁니다.
일제 말기 경성제국대학이 펴낸 ‘토막민의 생활·위생’이라는 보고서도 그런 시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보고서는 도시 빈민층을 ‘토막민’이라고 규정하면서, 일반인과의 차이가 무엇인지를 연구한 결과를 담고 있습니다. 정말 가난한 사람들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걸까요?
읽는 내내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은 두 책이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의 일상을 한 편의 영화처럼 세밀하게 다룬 두 책 <산체스네 아이들>(이매진)과 <안나와디의 아이들>(반비)입니다. 각각 인류학자와 기자가 쓴 두 책은 흔히 동정의 대상 아니면 지나치게 몰상식한 집단으로 그려지곤 하는 빈민층의 삶을 정밀하게 취재해 최대한 본인들의 목소리로 보여줍니다.
[출처 - 교보문고]
가난에서 벗어나려 몸부림치는 그 흔한 이야기는 없다. 남자들은 모두 발정난 짐승 같다. 아내가 있으면서도 “불나비처럼 이 여자 저 여자 꽁무니를 쫓아” 다닌다. 헤수스는 “멕시코인들이 저지르는 가장 큰 잘못은 너무 일찍 결혼한다는 사실”이라며 “돈도 없고 확실한 직업 없이도 일단 결혼부터 하고 보면 자기도 모르는 새에 새끼들을 집안 그득히 까놓게 되고 꼼짝없이 한 치 앞도 나갈 수 없다”고 말한다. 마누엘은 숱한 돈을 경마장에 쏟아붓고도 도박에서 좀체 헤어나지 못한다. 욱하는 성질의 로베르또는 폭력을 일삼으며 교도소를 제 집처럼 드나든다.
[경향신문 2013-08-17] 가난한 사람은 별종일까, 그 편견 없애줄 ‘빈민의 목소리’
멕시코 수도 멕시코시티의 빈민가에 사는 산체스네 식구들을 보면 좀 답답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저자 역시 지역과 민족을 초월해 가난한 사람들을 가난하게 만드는 ‘빈곤의 문화’가 있을 거라고 추정하기도 합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저임금, 잡다한 미숙련 직업, 미성년 노동, 만성적인 금전 부족, 고리채 사용 같은 경제적 특징과 함께 주거공간 부족, 알코올중독, 잦은 폭력, 이른 성경험 등의 공통적인 사회문화적 특징을 가진다는 것이지요.
일견 보면 그럴듯하기도 합니다. 가난이 대물림되는 것도 이상하지 않아 보입니다. 인도 뭄바이의 빈민촌 안나와디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책의 주요 내용 자체가 주인공격인 압둘 가족이 어떻게 빈민촌에서 벗어나지 못하는지를 다루고 있습니다. 곧 빈민촌을 탈출할 수 있을 수도 있었던 압둘 가족의 발목을 잡은 건 다름 아닌 가난한 이웃들이었습니다.
[출처 - 교보문고]
정확한 나이를 모르는 압둘이 소년범 판정을 받으려고 나이를 검진받으러 가자 의사는 “2000루피를 내면 열일곱이고 내지 않으면 스무 살”이라고 말한다. 압둘은 “쓰레기 같은 짓”이라고 따지지만 의사는 “우리도 돈이 없다”고 하소연한다. (...) 아샤 같은 인물은 빈민촌에 살면서도 가난한 이웃들에게 돌아가야 할 정부기금을 가로챈다. 그러고는 “부패로 아주 많은 기회가 약탈되는 나라에서 부패는 가난한 사람들이 가진 몇 안되는 순수한 기회”라고 생각한다. (...) 고단한 삶의 이유를 고민하고 함께 모여 밖으로 표출하는 일은 없다. 심지어 보금자리를 철거하려 드는 공항공사에조차 대들지 않는다. “가난한 사람들은 연대하지 않았다. 일시적이고 알량한 이익 앞에서 서로 치열하게 경쟁했다.”
[경향신문 2013-08-31]불평등에 길들어 분노조차 내부로 수렴되는 인도 빈민가의 ‘치열한 삶’
그러나 가난한 사람들에게 ‘빈곤의 습성’ 혹은 ‘빈곤의 문화’가 있다는 점을 인정하더라도, 그건 대체 누가 만들어낸 것일까요? 그들 스스로가 만들어낸 것일까요?
안나와디의 한 어머니는 아이가 교통사고로 머리를 다쳤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쇠꼬챙이를 들고 달려옵니다. 왜냐고요? “아예 내 손에 죽어라”며 자기 아이를 혼내기 위해섭니다. 다치거나 병에 걸리는 건 곧 나락의 지름길이기 때문이죠. 심지어 한 살배기 아이의 병을 고치려다 빚이 늘자 죽으라며 끓는 콩 항아리를 들어 아이에게 쏟아 붓는 이가 있었을 정도입니다. 산체스네 큰아들 마누엘 역시 열심히 저축을 하지만 아버지가 앓아눕는 바람에 모은 돈을 다 씁니다. 그러고는 “돈이 모아지면 병마가 찾아온다”는 미신까지 갖게 되면서 저축을 포기하죠.
산체스네의 아버지 헤수스는 말합니다. “물론 멕시코는 발전했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계속 노동자 노릇만 할 것이고, 계속 가난할 것이며, 죽을 때까지도 변함이 없을 것이다. 임금이 50전쯤 올라봤자 음식값은 1페소, 2페소, 5페소씩 마구 오르기 때문이다.” 압둘의 아버지 카람 후사인 또한 이렇게 말합니다. “안나와디 사람들은 하나같이 말합니다. 우리 애는 의사, 변호사로 키울 겁니다. 그러면 그 애가 우리 집을 부자로 만들어줄 거예요. 하지만 그건 다 허세요. 작은 배가 서쪽으로 갈 때는 다들 말하죠. 내가 조종을 잘 하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그 말을 하는 순간 바람이 배를 동쪽으로 몰고 가죠.”
아이들이 아예 체념을 품는 것도 당연합니다. 압둘은 “목욕이 무의미할 뿐만 아니라 자기를 속이는 짓”이라고 생각합니다. 새 날이라고 깨끗이 씻어봤자 새로운 일은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죠. 차라리 늘 지지부진한 날이 될 거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편이 더 낫다고 봅니다. 최소한 실망할 일은 없으니까요.
우연히도 두 책 모두 ‘아이들’이란 이름이 책제목에 붙었는데요. 백 번 물러서서 가난이 개인의 책임이라고 하더라도 아무 죄도 없는 아이들까지 그 짐을 떠맡을 이유는 없을 겁니다. <안나와디의 아이들>을 쓴 저자는 책 말미에 이렇게 말합니다. “집이 기울어져서 곧 무너진다면, 그 집이 놓인 땅 자체가 비스듬하다면, 모든 걸 곧게 세우는 건 과연 가능한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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