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생각하는 민주주의는 정말 민주적인 것일까?

2014. 1. 2. 10:42다독다독, 다시보기/지식창고





민주주의란 무엇일까요? 이런 심각한 질문을 던져 보는 경우는 흔치 않을 겁니다.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민주주의가 좋은 것이란 점에는 대부분 동의하실테지만, 민주주의가 무엇인지를 자세하게 생각해 보진 않습니다. 흔히 민주주의가 뭐냐고 물으면, “다수결의 원칙 아냐?” 혹은 “투표로 대표를 뽑거나 중요한 사안을 결정하는 거 아냐?” 하는 말씀들을 하실 겁니다.


그런데 이런 경우를 상상해 보십시오. 어떤 교회에서 새 목사를 뽑는데 그 교회의 신도 중 가장 부유한 일가가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두 후보만이 선거에 나올 수 있도록 손을 썼다면, 그건 민주주의라 할 수 있을까요? 돌이켜 보면 우리가 “과연 이게 민주주의인가”하고 의심을 품게 되는 경우는 수없이 많습니다. <최초의 민주주의>(돌베개)는 역사상 최초의 민주주의라 일컬어지는 고대 그리스의 민주주의가 어떤 요소들을 가지고 있었는지 살펴봄으로서 진짜 민주주의가 무엇인지를 성찰해 보게 만드는 책입니다.




[출처 - 교보문고]



다수결의 원칙은 민주주의인가. 다수에 의한 독재는 다른 독재와 마찬가지일 뿐이다. 고대 그리스인이 추구한 최초의 민주주의는 다수결로 빚어지는 독재를 포함해 무엇보다 참주정을 피하는 것을 가장 큰 원칙으로 삼았다. 고대 그리스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직접민주주의’가 아니라 시민 대표단이 많은 정책을 결정했다. 하지만 대표단은 선거에 의해 구성된 것이 아니라 추첨으로 선출했다. 주요 공직과 법정도 모두 추첨으로 뽑힌 인물들로 채워졌다. 돈이나 혈연관계 등이 선거결과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경향신문 2012-07-28] 시민대표를 추첨으로 뽑은 이유



한국 사회에서 가장 많은 비난을 받는 집단 중 하나가 아마 정치인일 겁니다. 국회의원이 국민의 뜻을 받드는 신성한 직업이라기보다 그저 세비나 축내는 존재로 비춰지는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사실 어쩌면 그건 태생적 한계일지도 모릅니다. 선거라는 절차만 거치고 나면 그들은 전혀 자신들을 뽑아준 국민의 뜻을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자신들의 당선에 결정적 영향을 끼치는 소속 정당이나 특정 집단의 이해관계에 더 충실하게 되지요. 선거(election)와 엘리트(elite)가 동일한 어원에서 나온 말이란 사실은 새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시민대표단이 주요 정책을 결정했던 고대 아테네인들도 처음에 그런 한계를 느꼈습니다. 오히려 부나 혈연관계가 선거에 결정적인 영향을 목도했던 것이지요. 그래서 그들은 대신 일정한 자격을 갖춘 시민들 전부를 대상으로 추첨을 해서 시민 대표단을 구성하는 방식을 택했지요. 이렇게 구성된 대표단은 뇌물로 매수하기 어려울 정도로 규모가 커졌고, 오히려 투표 때보다 더 시민 전체를 공정하게 대표할 수 있었습니다. 소크라테스를 재판했을 때 무려 501명의 배심원이 참여했다고 하지요.


우리는 투표를 굉장히 합리적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것도 어쩌면 환상일 뿐입니다. 수학자 파울로스의 ‘전원 당선 모델’이란 것이 있습니다. 똑같은 집단의 유권자가 투표해도 단순다수투표제, 결선투표제 등 선거제도를 바꾸면 당선자가 모두 다를 수 있다는 겁니다. 먼 데서 찾을 게 아니라 우리 현대사를 봐도 그렇습니다. 단순다수투표제로 치러졌던 1987년 대통령 선거를 결선투표제로 치렀다면 똑같은 결과는 나오지 않았을 겁니다. 많은 국회의원 선거에서 전체 유권자의 정당 지지율과 달리 각 정당의 의석수가 정해지기도 하고요.



우리는 다만 편의상의 이유로 그저 그런 선거제도를 유지하고 있을 뿐이고, 그 선거제도는 우리의 의사와 관계없는 대표자 선출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이게 과연 합리적이라 할 수 있을까요? 아리스토텔레스뿐 아니라 몽테스키외, 루소에 이르기까지 민주적인 대표 선출방식을 ‘추첨제’라고 본 건 이유가 있을 겁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투표가 아니라 제비뽑기로 대표자를 선출한다면 능력 없는 사람, 심지어 범죄자나 정신병력자가 정치인이 될지 모른다고 걱정하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선거로 뽑았다는 국회의원이 그간 우리 국민들에게 얼마나 만족감을 주었는지는 의문입니다. 유권자들의 선택도 늘 합리적이진 않습니다. 영국에서는 소속 정당과 이름을 빼고 후보자 사진만 보여주면서 유권자 선호도를 조사했더니 실제 당선자와 85% 일치했다는 연구가 있을 정도입니다.


민주주의라고는 하지만 노예제도가 존재했고 남성만이 정치 참여가 가능했던 고대 그리스와 현대를 비교하기란 어렵다고 느끼실 수도 있습니다. <추첨민주주의의 이론과 실제>(이담북스)는 현대 한국 사회에서 과연 추첨으로 대표자를 선출할 수 있을지를 연구한 책입니다.




[출처 - 교보문고]



이 연구원은 대통령이나 지방자치단체장 등은 선거로 뽑되, 입법부인 국회의원과 지방의회의원은 추첨제로 선출하자고 주장한다. 독특한 점은 의원정수가 300명이라면 1명당 50명을 곱해 1만5000명의 시민의원단을 구성하자는 제안이다. 성·연령·지역·소득별로 배분된 이 시민의원단 중에서 300명의 국회의원을 추첨해 뽑은 뒤 한 명의 의원과 49명의 시민의원단을 결합한다. 의원은 시민의원단과의 심의를 거쳐 정책의견을 의회에 제시한다. 그는 시민의원단의 능력이나 책임감을 우려하는 의견에 대해 현재 추첨을 통해 국민참여재판에 참여하고 있는 배심원들을 보라고 말한다. 배심원들의 결정은 판사와 90%가 일치했으며, 항소심 파기율도 일반 재판보다 낮았다. “오히려 전문가적 능력보다는 상식이 필요합니다. 200~300명을 뽑다 보면 훌륭한 이와 그렇지 못한 이가 상쇄를 일으킵니다. 도덕이나 책임감 등도 현재 국회의원들이 국민들보다 더 우월하다고도 볼 수 없죠. 우리 시민들은 민주화를 일궈낸 주역이기도 합니다.”


[경향신문 2012-06-19] “정치는 전문성 아닌 상식이 중요… 추첨제 해 볼만”



책은 추첨제 전면 실시가 어렵다면 지방의회만이라도, 비례대표만이라도, 그것도 아니라면 선거제도를 개혁하는 특별위원회만이라도 추첨제로 구성해 보자고 제안합니다. 공감하지 못하실 분들도 많으실 겁니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의 민주주의를 신성하고 불가침한 영역으로 여기면 여길수록 역설적으로 민주주의에서 멀어질 수 있다는 사실은 염두에 둬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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