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국주의로 물드는 일본, 이를 바라보는 두 가지 시각은?

2014. 2. 19. 13:59다독다독, 다시보기/지식창고





요즘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져 나오는 일본의 우경화 움직임에 눈살을 찌푸리시는 분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나 NHK 간부들의 잇따른 망언은 그렇다 쳐도 일본 사회의 구석구석조차 군국주의로 물들고 있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요즘 일본에선 2차 세계대전 당시 자살특공대원을 소재로 한 영화 <영원의 제로>가 인기를 끌고 있다고도 하죠.


나치의 만행에 대해 늘 사죄하고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는 독일을 보면 특히나 ‘일본은 도무지 왜 저럴까’ 하는 의문이 드는 게 사실입니다. 물론 여러 가지 이유가 많을 테지만, 여기선 일본 사람이 쓴 두 역사책을 통해 그 실마리를 짚어보고자 합니다. 우선 <미국은 동아시아를 어떻게 지배했나>(메디치)라는 책을 봅시다.




[출처 - 교보문고]



오자와 이치로는 2009년 9월 일본 민주당의 승리를 이끌면서 총리가 될 수도 있었다. 그해 초 시작된 도쿄지검 특수부의 수사에 연루됐다는 점이 발목을 잡았다. ‘총리 킬러’로 불리는 도쿄지검 특수부는 단호한 수사로 유명하다. 1976년 록히드 사건으로 다나카 가쿠에이 총리가, 1988년 리쿠르트 사건으로 다케시타 노보루 총리가 그 칼날에 쓰러졌다. 그런데 이 모든 사건이 만약 미국 정보기관이 반미 정치가를 쫓아내려고 일본 검찰에 정보를 흘렸기 때문에 일어났다면 어떨까. (...) 저자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을 만들어낸 가장 큰 힘은 미국이라고 본다. 미국에 대한 자주 혹은 추종이라는 선택만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역대 정치가 중 자주파는 늘 미국에 의해 밀려났다. 오자와는 주일미군 축소와 중·일관계 개선을 주장했고, 다나카는 미국보다 앞서 중국과 국교 정상화를 추진했다.


 [경향신문 2013-04-13]미 비판 총리 몰락의 비밀… 일본 정치를 지배하는 미국의 깊숙한 손길



책은 대미 자주 노선을 펼친 역대 일본 총리들이 미국에 의해 몰락했다는 ‘음모론’ 같은 주장을 펼쳐냅니다. 하지만 일본 외무성 고위관료 출신인 저자가 철저한 고증과 사료를 바탕으로 썼다는 점에서 그렇게 단순히 치부하긴 어렵습니다. 오히려 저자가 제시하는 패턴을 보면 일본의 움직임이 보다 명징하게 읽히는 부분이 있습니다.


대미 자주 노선은 크게 두 가지로 상징됩니다. 하나는 주일미군 기지를 축소하거나 혹은 최소한 오키나와 외부로라도 이전하자는 주장입니다. 다른 하나는 미국보다 중국과의 관계를 강화하고자 하는 움직임입니다. 미국은 일본이 이 두 가지를 입장을 취하는 걸 적극 반대해 왔고, 이를 위해선 총리까지 끌어내리는 걸 서슴지 않았습니다. 반대로 생각해 보면 이 두 가지를 확실히 협력하는 총리는 적극 지원해 준다는 얘기겠죠.


아베 신조의 경우를 봅시다. 2013년 2월 워싱턴에서 미일정상회담을 마친 아베 총리는 ‘일본이 돌아왔다(Japan is back)’고 선언합니다. 앞으로 미국의 품에 확실하게 안기겠다는 신호지요. 아베 정권은 오키나와 미군 기지의 현내 이전을 강행하려고 합니다. 미국이 주도하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도 적극 참여하고자 하고요. 미국은 그런 아베이기에 우경화 움직임이 혹여 마뜩치 않더라도 두둔하거나 적어도 수수방관하고 있는 건 아닐는지요.


 책의 저자는 동아시아의 영토분쟁 또한 미국이 배후에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점령국이 식민지에서 철수할 때는 그들이 단결하는 걸 방지하기 위해 분쟁의 여지를 남겨두고 물러나는 경향이 있는데 미국 또한 일본에게 그렇게 했다는 겁니다. 예컨대 일본과 러시아의 쿠릴 열도 분쟁도 그렇습니다. 1956년 일·소 공동선언에서 이 문제는 양측의 양보로 타결됐지만 미국의 반대로 무산됐습니다. 중·일, 한·일간 영토분쟁도 마찬가지라는 것이지요.


<중국화 하는 일본>(페이퍼로드)은 또 다른 측면에서 일본의 우경화를 음미해 볼 수 있는 책입니다. 책은 ‘중국화’라는 키워드로 동아시아의 역사를 꿰뚫어봅니다. 중국화라는 건 중국 물건이 세계를 지배한다는 식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1000년 전에 이미 확립된 ‘차이나 스탠더드’를 따랐느냐 아니냐에 따라 이후 국가의 판도가 달라졌다는 설명입니다. 책은 현재 일본의 분위기가 이 ‘중국화’의 흐름과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출처 - 교보문고]



2011년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일어나기 전부터 이미 일본 사회는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다. 3·11은 그것을 명확하게 보여준 최후의 일격에 지나지 않았다. (...) <중국화하는 일본>의 현대 일본 진단은 몹시 냉소적이고 신랄하다. 중국과 일본의 국내총생산(GDP) 규모 역전, 삼성전자에 추월당한 소니 등을 얘기하면서 요나하 교수는 말했다. “일본에서 ‘혐한류’의 쇄국주의자가 위정척사파(조선 말기의 배외주의적 보수파)처럼 ‘한류 반대’를 외치고 있는 것이야말로 한·일의 위치가 19세기와 정반대가 되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한겨레신문 2013-07-01] 근대 기원은 중국, 일본 출구는 중국화



천 년 전에 확립된 ‘글로벌 스탠더드’라니, 무얼까 궁금하실 겁니다. 바로 ‘송나라’의 사회, 경제체제입니다. 흔히 근대의 출발을 르네상스라고 생각하지만 저자는 중국 송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먼저 근대로 들어섰다고 봅니다. 귀족제도를 없애고 과거시험으로 관료를 뽑으면서 기회의 평등을 제공하고, 황제 중심의 중앙집권제를 확립하는 동시에 경제와 사회제도는 자유시장에 맡겼다는 것입니다. 비록 서양이 산업혁명 등을 먼저 일궈냈지만 최근까지도 귀족의 특권을 인정하는 등 전근대적 면모를 지니고 있었던 걸 감안하면 혁신적이었다고 할 수 있죠.


조선과 중국을 비롯해 전 세계가 이렇게 ‘중국화’되어 갔는데도 일본만은 이 흐름에서 이탈합니다. 도쿠카와 이에야스가 권력을 잡으면서 정치는 소수 지배가문까리 나눠 먹고 신분제와 장원제도를 고수하는 봉건제를 유지했던 것인데요. 훗날 일본이 서구화에 몰입할 수 있었던 건 바로 이렇게 ‘중국화’가 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중국이나 한국은 근대화에 뒤처졌던 것이 아니라 이미 중국화라는 ‘근대’를 이루고 있었기 때문에 굳이 왜 ‘서양화’를 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라는 설명이지요.


그 이후 이런저런 변화가 있었긴 하지만 결국 저자는 아직까지도 일본이 제대로 ‘중국화’ 흐름에 동참하지 못하고 있다고 봅니다. 국수주의, 폐쇄주의로 대변되는 일본의 우경화나 군국주의는 이런 흐름의 한 가지로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일본의 오늘날 모습을 한두 가지 이유로 설명하긴 어렵습니다. 다만 우리는 모든 걸 선과 악의 너무 단순한 구도로 만들어버리면서 분노를 터뜨렸다가 또 잊어버리는 데 익숙한 것 같습니다. 일본의 우경화 움직임도 넓고 깊게 보면서 좀 더 진중하게 고민하고 대응하는 자세가 필요할 듯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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