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문화가 있는 사회, 읽고 쓰기에서 부터

2014. 5. 9. 11:13다독다독, 다시보기/미디어 리터러시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이 무엇일까요. 직립, 도구 사용 등과 같은 차이를 말하지만, 인간에게는 동물에 없는 언어가 있다는 것이 인간과 동물을 가르는 가장 큰 차이라고 봅니다. 언어를 통해 인간은 문화를 발전시켜 왔고 삶이 풍성해져 왔죠. 동물의 삶은 수천, 수만 년 전과 지금이 다르지 않지만, 인간의 삶은 꾸준히 달라져 왔습니다. 사상이 무르익고 과학이 발전하는 등 이 모든 것이 언어를 통해서 이루어졌죠.

 

언어를 사용해온 인간의 역사에서 큰 변화가 있었으니, 바로 ‘문자’의 발명입니다. 문자가 생기고 나서 글과 책이 생겼죠. 이어서 독서가 따랐습니다. 문자의 발명은 어느 한순간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죠. 그림문자에서 서서히 상형문자로 진화하고 다시 소리 문자로 발전이 되었습니다. 한민족의 경우에는 한자를 빌려 쓰다가 어느 순간 소리 문자인 한글이 창제되었지만 말이죠.

 

이미지 출처_ 위키백과 

 

세계 여러 곳에서 일제히 문자가 생겨난 것은 아닙니다. 수천 년 전부터 문자생활이 이루어진 곳이 있었는가 하면, 심지어 아직도 문자 없이 입말만으로 언어생활을 하고 사는 사람들도 있죠. 태평양의 섬나라 파푸아뉴기니에서 문자생활을 하는 지역이라 해도 그 지역의 모든 주민이 문자생활을 하는 것도 아닙니다. 문맹자, 즉 비문해자가 여전히 있답니다. 심지어 우리 주변에도 70, 80대 연령층에서는 한글을 깨치지 못한 이들이 상당수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되죠.


 

 

그럼 문해자인 사람들은 글을 충분히 부려 쓰고 있을까요? 이 질문에 답하려니 암담한 생각이 듭니다. 오늘날 많은 신문이 적자에 허덕이고 출판시장은 오그라든 지 오래죠. 그 흔하던 무가지조차 최근에는 부쩍 줄어든 느낌입니다. 사람들은 왜 잘 안 읽을까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텐데요. 책 읽기보다는 텔레비전 보기에 더 빠져들고, 책보다는 스마트폰에 더 빠지기 때문이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사람들이 놓인 환경이 바뀐 것이죠.

 

출퇴근 시간 지하철을 타보면, 스마트폰을 안 꺼내 든 사람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스마트폰을 꺼내서 뭘 할까요? 텔레비전을 보는 사람, 게임을 하는 사람, SNS를 하는 사람, 검색하는 사람, 기사 읽는 사람 등 다양한 방법으로 이용합니다. 진정 스마트폰 세상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이렇게 텔레비전과 스마트폰 그리고 게임에 몰입하는 사이에 사람들의 읽기 능력, 나아가 쓰기 능력은 현저히 떨어지고 있다고 필자는 생각합니다. 사적인 가벼운 담화는 불편 없이 하지만, 글을 명료하게 쓰는 사람은 쉽게 보기 힘든 게 현실입니다. 직업적으로 글을 쓰는 작가, 기자, 법조인, 교원 등 일부 직업인을 빼고 말이죠.

 

 

이미지 출처_ 한겨레

 

우선 글을 쓸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학교 졸업한 이후로는 글을 써야 할 일이 별로 없기 때문인데요. 일기를 쓰는 사람도 드물죠. 심지어 해외여행객이 넘쳐나 세계에 한국인 관광객의 발길이 닿지 않는 데가 없을 정도지만, 그 많은 여행객 중에서 여행에서 돌아와 보고 듣고 느낀 바를 글로 남기는 사람은 소수에 그칩니다.


 

 

왜 글을 쓰지 않을까요? 돈이 되지 않아서인지, 읽어주는 사람이 없어서인지, 칭찬해주는 사람이 없어서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그 모두가 다 이유일지도 모릅니다. 어떻든 글을 잘 안 쓰는 사이에 우리 사회에선 직업적으로 글 쓰는 사람 말고는 글 쓰지 않는 풍토가 굳어지고 말았죠.

 

이렇게 글을 쓰는 게 몸에 배지 않은 사회에서는 작가, 기자처럼 글 쓰는 사람들의 글마저도 그리 수준이 높지 않습니다. 오늘날 NIE라고 해서 신문 읽기를 권장하고 있지만, 매체가 다양해지고 수적으로 많아지면서 신문기사 문장 속에서 오류가 꽤 많이 발견되고 있죠. 말이 안 되는 비문 찾기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문법적으로 완벽한 문장, 의미상 명료한 문장만으로 된 기사를 찾기가 오히려 힘들 정도죠. 글쓰기 훈련이 되지 않은 채 글을 대충 쓰다 보니, 문장의 오류, 맞춤법의 오류, 논리의 오류 등의 오류가 숱하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미지 출처_ pixabay by PublicDomainPictures


이런 불완전한 문장이 난무하는 현상은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기자나 작가란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게 아니고 어차피 보통 사람 중에서 나오게 돼 있는데, 사회 전체적인 글쓰기 수준이 전반적으로 매우 낮다면 그중에서 우수한 사람일지라도 그 글의 품질이 높기를 기대하기 어렵죠.

 

단순히 지식을 묻는 객관식 시험의 폐해에서 벗어나고자 오래전부터 논술이 강조되어 오기는 했으나, 그것이 곧 훌륭한 글쓰기 습관을 키워주는 데 이르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논술 점수를 높게 받는 기술은 익혀 주었지만, 글쓰기의 기초를 닦아주고 글쓰기 습관을 몸에 익게 해주지는 않은 것 같으니 말이죠.


 

 

왜 어릴 적부터 글쓰기 습관을 배게 하고 바른 글쓰기의 기초를 닦아주어야 할까요? 글쓰기가 삶을 풍요롭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유한한 인생에서 사는 동안 인간답게 살고 풍요를 누려야 하는데, 단지 맛난 음식 먹고 좋은 옷 입는 것으로 만족할 수는 없지 않을까요? 거기서 한 걸음 나아가 깊이 사유하고 풍부하게 느끼고, 그것을 다양하게 표현하고 남들과 나눌 때에 비로소 인간답게 산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미지 출처_ 위키백과

 

한류가 널리 퍼져 온 국민이 뿌듯한 긍지를 느낍니다. 한국의 가수들에게 중국과 일본, 동남아 사람들이 열광하죠. ‘강남스타일’을 유럽과 미국의 백인들이 따라 할 줄 누가 알았을까요? 하지만 한국문학을 찾아 읽는 외국인들은 별로 많지 않습니다. 번역이 신속하게 따르지 않기 때문도 있지만, 콘텐츠 자체가 빈약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세상은 점점 더 창의력이 중요시되고 있습니다. 새롭고 신선한 사유는 언어로 표현될 때 비로소 다른 사람에게 전달되고 세상을 바꿀 수 있죠. 굳이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동물이 아닌 인간으로서,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 더 많이 읽고 느낌과 주장을 글로 표현해보는 삶을 살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술 권하는 사회가 아니라 읽고 쓰기를 권하는 사회가 진정 문화를 담은 사회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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