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7. 31. 09:16ㆍ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한 해의 절반이 지나고 여름의 폭염이 대지를 달구는 7월 한 달도 어느덧 마무리 됐습니다. 장마와 태풍 그리고 무더위까지 하루하루 건강하게 잘 지낸다는 게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우리는 다시 한 번 느껴보곤 합니다. 이런 7월의 역사를 되짚어 보면 유난히 계절만큼 뜨거웠던 일들이 많았습니다. 세계의 흐름을 뒤바꿔 놓은 일들도 많았던 역사 속 7월로 타임머신을 타고 잠시 떠나보도록 하겠습니다.
지난 1947년 7월 2일 뉴멕시코주의 한 시골마을인 로스웰에 미확인 비행물체가 추락했고, 미국 정부가 이 비행접시와 외계인의 시신을 수습해 비밀에 부쳤다는 사건으로 유명한 ‘로스웰사건(Roswell UFO incident)’은 미스터리 사건에 관심이 많거나 혹은 관심이 없다 하더라도 한번쯤은 들어봤을 유명한 UFO 사건으로 기록돼 있습니다. 미국 정부에서는 공식적으로 기상관측기구의 추락이라 밝혔음에도 현재까지 가장 신빙성 있는 사건으로 대중들을 인식하고 있죠.
출처_위키피디아
이 사건이 발생하고 군과 정보기관이 재빠르게 대응에 나서기도 전에 로스웰의 지역신문에서 헤드라인으로 해당 사건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면서 로스웰사건은 ‘부정과 거짓’이라는 오명을 남기며 지금까지도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실제 전직 CIA 요원이 로스웰사건 발생 65주년인 2011년 로스웰사건은 진짜였다고 주장하기도 하고, LA타임즈의 기자 제이 콥슨은 미국을 혼란에 빠뜨리려는 구소련 스탈린의 음모였다고 말하기도 하는 등 온갖 추측과 억측이 난무하는 대표적인 UFO 관련 사건인데요. 과연 진실은 어디에 있을까요? 그 진실을 아는 사람이 과연 누구일지도 너무나 궁금한 역사적 사건입니다.
7월 17일은 우리나라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가장 의미 있는 날이기도 합니다. 잘 알다시피 우리나라 5대 국경일(3.1절, 제헌절, 광복절, 개천절, 한글날) 중 하나인 제헌절이 7월 17일이죠. 식민통치라는 아픈 역사를 딛고 일어나 우리만의 첫 번째 헌법(제헌헌법)을 제정 및 공포한 날로,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이라는 사실을 전 세계에 공포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높은 날입니다.
이와 함께 7월 17일이 더욱 의미 있는 이유는 바로 조선왕조 건국일이기도 하기 때문인데요. 조선 건국일인 17일에 맞추어 제헌절을 정하기도 했습니다. 1949년부터 공휴일로 지정됐던 제헌절은 2007년을 마지막으로 법정공휴일에서 제외됐는데요. 비록 공휴일에서는 제외됐지만, 공휴일이 아니라고 관심을 갖지 않기 보다는 우리도 자주국가임을 공포했던 그때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하루를 만들어보는 게 더 좋겠죠?
1973년 7월 20일 중국의 국보라고까지 칭송 받던 영화배우 이소룡이 너무나도 갑작스럽게 거짓말처럼 세상을 떠났습니다. 홍콩의 퀸 엘리자베스 병원에서 온갖 노력에서 불구하고 허무하게 세상을 떠난 ‘브루스 리(Bruce Lee)’ 이소룡의 죽음을 믿을 수 없었던 팬들은 한동안 그의 죽음이 영화사의 홍보 전략이라고 믿기도 하고 그는 죽지 않았다는 소문도 돌면서 전 세계에 다양한 루머를 만들어냈습니다.
1940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난 이소룡은 중학생 때부터 싸움을 좋아하는 악동이었습니다. 결국 퇴학과 전학을 반복하던 그는 길거리 싸움이 아닌 진지한 쿵푸를 접하게 되고 1963년 최초의 쿵푸 도장을 차리며 조금 더 효율적인 무술로 만들기 위해 연구에 연구를 거듭했죠. 그는 다음 해 캘리포니아 주 롱비치에서 열린 국제 가라테 선수권 대회에 초청돼 그 유명한 1인치 펀치 등 신기술을 선보여 큰 관심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후 여러 할리우드 관계자들의 눈길을 끌어 각종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했고 할리우드를 떠나 홍콩에서 그가 첫 주연한 영화 1971년 작 <당산대형>이 홍콩 영화 사상 최대의 흥행작으로 떠올라 하루 아침에 톱스타가 되었습니다. 각종 무술과 영화에서 신기에 가까운 모습을 보인 그는 할리우드와의 첫 합작 영화인 <용쟁호투>의 제작을 다 마쳐 놓은 상태에서 갑작스레 생을 마감하게 됐습니다.
사실 그의 사망 원인도 지금까지 수수께끼로 남아 있습니다. 폭력 조직과 싸우다 죽었다는 설부터 일본인 무술가들이 죽였다는 이야기, 쿵푸 고수들이 점혈법으로 자연사처럼 보이게 죽였다는 설까지 파란만장했던 그의 삶만큼 수많은 설이 등장했는데요. 뛰어난 무술 배우이자 무술가였던 이소룡은 죽음 이후에도 현재까지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영원히 살아있습니다.
1894년 7월 25일 세계사에 한 획을 그은 비극이 벌어졌습니다. 청나라와 일본제국이 조선의 지배권을 두고 벌인 청일전쟁이 일어난 것이죠. 7월 23일 일본군이 경복궁을 공격해 서울의 조선군대를 무장시킨 후 청군을 공격할 태세를 갖췄습니다. 본격적인 전투는 25일 일본 해군이 청국함대를 풍도 앞바다에서 기습 공격하면서 시작됐습니다. 육ㆍ해상에서 연이어 승리를 한 일본군은 8월 1일 정식으로 청국에 선전포고를 했고, 청국도 이에 대응해 대일선전포고를 했습니다.
약 10개월간 조선의 지배권을 놓고 벌인 일본과 청의 전쟁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청나라의 요청으로 청나라와 일본 사이에 ‘시모노세키 조약’이 체결되면서 전쟁은 종료됩니다. 이 조약으로 일본은 조선에 대한 지배권을 확립하게 됐습니다. 청일전쟁은 청나라와 일본의 전쟁이었지만 한반도 내에서 일본군에 대항하는 동학의병과 전봉준, 손병희 등의 동학농민군이 일본에 대항한 조일전쟁의 원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출처_한국민족문화대백과
청일전쟁의 결과 조선왕조의 전통적인 지배체제가 약화됐고, 동학농민병 등 반일민중이 큰 타격을 입었으며, 일본군에게 경복궁을 점령 당하고 명성황후가 시해 당하는 비극을 만들어냈습니다. 임진왜란 이후 최대의 수난을 당한 우리의 가슴 아픈 역사의 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미군정하에 있던 1948년 ‘코리아’라는 이름을 세계에 널리 알리게 된 계기가 된 영국 런던 올림픽은 우리나라가 처음으로 출전하는 하계올림픽이었습니다. 올림픽이라는 큰 무대에서 역도의 김성집이 동메달을 따면서 우리의 첫 메달이라는 역사를 만들어냈습니다.
이렇게 시작한 우리의 올림픽 도전기는 그야말로 드라마가 따로 없습니다. 1948년 이후 금메달이라는 금자탑을 쌓기 위해 흘려야 했던 피와 땀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는데요. 결국 1976년 8월 1일 몬트리올 대회에서 온 국민의 염원인 첫 금메달을 고국에 안기게 됐습니다. 그 주인공은 레슬링의 양정모였습니다.
출처_네이버 지식백과 ‘의심 많은 교양인을 위한 상식의 반전 101’
사실 엄밀히 말하자면 우리나라의 첫 올림픽 참가는 1948년은 아닙니다. 같은 해에 열린 스위스 생모리츠 동계올림픽에 3명의 스피드스케이팅 선수(이종국, 이효창, 최용진)가 출전했기에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으로 첫 올림픽에 참가한 것은 생모리츠 동계올림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일제강점기인 1932년 LA올림픽도 비록 일장기를 달아야 했지만 마라톤의 김은배와 권태하, 복싱에 황을수 선수가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올림픽 무대를 밟을 수 있었습니다. 특히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의 손기정 선수는 한국인 첫 금메달이라는 업적을 달성하면서 지금까지도 한국인의 정신을 대표하는 인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살펴본 역사 속 7월에는 유난히 우리나라와 관련된 사건이 많았습니다. 이곳에 소개하지 않았지만, 1953년 7월 27일에는 6ㆍ25전쟁의 마침인 휴전협정을 조인하기도 했고 1907년 조선 순종이 군대 해산을 명하는 등 대부분 타국의 간섭과 전쟁이 관련된 사건들입니다. 지금의 우리가 더 희망찬 미래를 꿈꿀 수 있음은 이런 아픔을 겪고 이겨나갔던 많은 선조들의 정신이 숨어 있기 때문이겠죠. 역사적 아픔이 많았던 7월을 보내면서 한번쯤은 그들에 대한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품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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