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수로 해온 42인치 TV, 과감하게 버린 이유

2011. 7. 20. 09:19다독다독, 다시보기/미디어 리터러시

 

 



“세상에는 좋은 사각형과 나쁜 사각형이 있다.
좋은 사각형은 책과 신문이고, 나쁜 사각형은 컴퓨터와 TV이다.“


공감하시나요? 이 말은 NIE 담당기자로서 제가 자주 언급하는 문구입니다.


부모들이 자녀가 TV를 보면 야단치지만 신문을 보거나 책을 보면 칭찬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죠. 책과 신문, 즉 ‘보는’것이 아닌 ‘읽는’ 매체는 그만큼 ‘교육적’이라는 뜻입니다.

저희 집에는 TV가 없습니다.
제가 이 이야기를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의 반응은 한결같습니다. “불편하지 않냐?”고요.
네, 전혀 불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저는 주변 사람들에게 꼭 TV를 없애라고, 그게 어려우면 거실에서 TV를 치우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제가 결혼할 당시인 2003년엔 42인지 PDP 가격이 500여 만원이나 했었습니다. 5.1채널이니 홈씨어터와 같은 용어들도 대중화되던 때였죠. 저를 포함해 결혼을 앞둔 친구들은 PDP와 홈씨어터를 사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고, 과감하게 PDP를 ‘장만한’ 친구들은 거실의 가장 좋은 자리에 놓고 그 위용을 뽐냈습니다.
세월이 흘러도 PDP가 LED 또는 3D TV로 바뀌었을 뿐, 신혼부부들이 가장 고민하는 가전 중의 하나는 TV고 예나 지금이나 집의 가장 중심에 위치하는 것 또한 TV인 것은 변함없을 겁니다.
어쨌든 저는 PDP까지는 아니지만 큰 맘먹고 ‘프로젝터 TV'를 샀고 (요즘 아이들은 프로젝터 TV가 뭐지 할겁니다) 거실 한 가운데에 TV를 놓았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회사에서 과중한 업무에 시달린다는 이유를 핑계 삼아 ’TV 시청‘이라는 간편하고 대중적인 취미를 갖게 되었습니다. 



특히 금요일밤이면 ‘TV로 열반의 경지에 이르자’는 모토 하에 TV 프로그램을 즐겨 봤습니다. <프렌즈>와 같은 미드를 비롯해 케이블에서 재방송되는 지상파 3사의 개그 프로그램 및 간판 예능 프로그램, 미니시리즈, 수목드라마, 주말드라마와 다큐멘터리까지 모두 섭렵했죠. 아마도 제 생애 최고로 TV를 많이 보던 시절이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그러면서 당연히 책과는 멀어졌습니다. 문학소녀까지는 아니어도 나름 다독을 즐기던 저였건만 그때는 그저 신문사에 다니니 신문 정도 챙겨볼 뿐, 읽은 책이라고는 업무에 필요한 서적 몇 권과 가벼운 자기계발서가 전부였습니다. “책 좀 보라”는 남편의 잔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트렌드를 파악하려면 TV를 봐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우며 TV 앞에서 하루하루를 보냈죠. 머리가 다소 멍해지는 것 같았지만 예능 프로그램을 보며 웃고 나면 정말 스트레스가 날아가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던 2006년의 어느 날!
저는 혼수로 장만한 나의 절친 ‘프로젝션 TV’를 처분해버렸습니다. 거실에서 추방시키는 것을 넘어 친정집으로 보내버렸죠. 이유는 ‘아이’ 때문이었습니다. (부모는 참으로 위대하죠.)
딸아이를 낳은 이후로 육아에 지쳐 잠이 부족해진 저는 점차 TV를 볼 시간이 없어졌고, 각종 교육정보가 넘치는 인터넷 카페를 통해 전집의 세계에 눈뜨면서 ‘거실에 아이가 좋아할만한 동화책을 놔두는 게 좋겠다’는 생각에 이르렀죠. 그리고 마침내 ‘굳이 TV가 없어도 되겠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이른바 ‘거실을 서재로’를 실행에 옮기기로 했습니다.
남편은 “그럼 축구는 어떻게 봐야 하나” 망설였지만 이내 제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TV없는 우리집’이 탄생했습니다. 



사실 제가 몸담고 있는 조선일보사에서 2007년 ‘거실을 서재로’(바로가기)라는 캠페인을 대대적으로 한 적이 있었습니다.
‘거실을 서재로’ 캠페인은 가족 간의 대화를 앗아가는 TV와 컴퓨터를 안방으로 물리고, 거실에 서가를 마련해 온 가족이 함께 책 읽고 대화를 나누는 거실문화를 만들자는 독서운동이었습니다. 1년동안 총 8만 9086가구가 참여했고, 그 중 9510가구에 책장과 책이 지원되었습니다. 캠페인은 끝났지만 여전히 많은 가정에서 ‘거실을 서재로’ 만들고 있죠.



TV를 없앤 이후 달라진 점은 시간이 많아졌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통제할 수 있는 시간들이 늘어나면서 여유가 생긴 거죠.
아이와 노는 것에 좀 더 집중할 수 있게 되었고, 밤이면 습관적으로 TV 앞에서 보내던 시간 동안 다른 것을 할 수 있었습니다. 신문도 더 꼼꼼히 보게 되었고, 무엇보다 다시 책을 많이 읽게 되었습니다. 대학 때 우연히 읽었던 김영하 작가의 소설을 콜렉션으로 만들어 완독하고, <내 이름은 빨강>의 오르한 파묵을 통해 터키 여행을 계획하고, 유용한 자녀교육서를 통해 부모로서의 마음가짐을 다잡았죠. 운동할 시간도 생겼고, 숙면도 자주 취하게 되었습니다.
요컨대 TV를 멀리하면서 내 삶에 대한 통제력이 늘어난 기분을 느꼈습니다.

TV없는 집이 아이들에게 좋은 건 두 말 할 것 없습니다.
주변의 많은 엄마들이 한글을 떼기 위해 방문형 한글 학습 프로그램을 시키는 것을 보았습니다. 딸아이는 오직 책과 신문으로 혼자 한글을 뗐습니다. 그냥 열심히 그림책을 보고, 신문에서 글자찾기 놀이를 하고 칠판에 낙서를 하니 저절로 깨우치더군요. 또래 아이들이 “엄마, 물!”이라고 말할 나이에 “저 갈증나요. 물 주세요”라고 말할 만큼 어휘력도 뛰어났습니다.
글을 쉽게 뗐다는 것보다, 어린 시기에 책읽기의 즐거움을 알았다는 사실이 뿌듯합니다.
지금도 여전히 책을 즐겨 읽고, 어린 아이다운 순진함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단, 책에만 빠져 지내면 현실감이 떨어질 수 있으니 신문과 같은 미디어를 균형 있게 접하는 것이 필요할 듯 합니다. 다행히 딸아이가 다니는 유치원에서 일주일에 한번씩 NIE 수업을 하는데, 그래서인지 아니면 엄마가 신문사를 다녀서인지 신문을 친숙하게 느낍니다. 



‘거실을 서재로’를 권합니다. 아이가 책 읽는 즐거움을 느끼고, 스스로 생각하고 표현할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게 해주는 좋은 방법입니다. 특히 자녀교육이라면 두 발 벗고 나서는 엄마 아빠들부터 읽기의 즐거움을 알아갔으면 합니다. 아이가 볼 고가의 전집은 서슴없이 사지만 엄마 아빠는 일년에 책을 얼마나 읽는지요.

그리고 거실을 서재로 만드신다면, 그곳 한 켠에 종이신문도 꼭 올려두었으면 합니다.
종이신문 읽기의 즐거움은 ‘우연성’에서 옵니다. 인터넷 뉴스를 보다 보면 연관기사를 클릭 또 클릭하다가 내가 무얼 하고 있었는지 잊은 채 사이버 공간을 부유하는 자신을 발견하는 경우가 많을 겁니다. 저 또한 그러면서 흘러가버린 시간을 아까워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종이신문을 읽는 동안은 온전히 세상의 흐름을 읽는데 집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양한 영역의 기사, 사진, 광고가 담긴 하나의 패키지를 통해 골고루 정보를 습득할 수 있죠. 인터넷은 내가 관심있는 것들을 검색하고 선별해서 읽는 장점이 있지만, 그렇게 쪼개지고 세분화된 콘텐츠는 ‘정보 편식’으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종이신문이라는 패키지 안에는 내가 관심을 갖지 않았던 것, 몰랐던 것들도 담겨 있습니다. 그렇게 우연히 발견한 것이 내가 좋아하는 소설가의 신간 안내일수도 있고, 다가오는 여름 휴가를 위한 정보일 수도 있고, 지구 반대편 나라의 재미있는 소식일 수도 있습니다. 내 아이가 꿈꾸는 직업인의 인터뷰일 수도 있고요.
그런 우연성 속에서 의외의 발견이 창의적인 결과물로 이어지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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