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9. 12. 13:19ㆍ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야구의 본 고장인 미국 메이저리그 무대를 호령하고 있는 코리안 몬스터 류현진(LA다저스)선수의 활약과 승전보에 우리 국민들은 힘을 얻곤 하죠. 빅리그 데뷔 2년차인 올해에는 지난해보다 더 좋은 15승 이상의 성적을 기대하게 하며 많은 야구팬들을 더욱 즐겁게 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현재 메이저리그에서 종횡무진 활약하고 있는 류현진 선수를 보며, 90년대 말부터 2000년 당시의 신문 헤드라인을 장식했던 박찬호 선수를 떠올리게 하는데요. 박찬호 선수가 활약하던 당시는 우리나라가 IMF를 겪고 있던 시기였기에 코리안 특급의 승리 소식은 단순한 1승보다 더 값진 희망으로 우리를 즐겁게 하였죠.
코리안 몬스터 류현진 선수와 코리안 특급 박찬호 선수는 모두 대한민국 아마추어 고교야구가 배출한 최고의 스타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박찬호 선수는 현재 진행중인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눈부신 활약과 잊지 못할 수모를 모두 갖고 있는 각별한 인연이 있다고 하는데요. 1971년 창설해 40여년간 국내 유일의 지역예선 없는 통합 토너먼트 대회로 아마추어 야구인들의 인기와 사랑을 독차지한 봉황대기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봉황대기가 배출한 스타들을 알아보겠습니다.
코리안 특급 ‘박찬호’를 세상에 알린 봉황대기
봉황대기가 낳은 최고 스타는 역시 ‘코리안 특급’ 박찬호 선수입니다. 공주고 시절 동기생인 손 혁 선수에 가려 두각을 나태지 못한 박찬호 선수는 3학년 때인 1991년 제21회 대회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되었죠. 특히 2회전 광주일고와의 경기에서는 단 2안타만 내주며 완봉승을 거두었는데요. 당시 선발 맞대결 펼친 광주일고 투수가 한국 프로야구 사상 첫 30-30클럽 가입으로 새로운 이정표를 세운 박재홍 선수였다는 것! 혹시 알고 계셨던 분 있나요? 당시의 경기는 아마추어 고교야구임에도 불구하고, 뜨거운 명승부를 펼쳐 봉황대기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답니다.
하지만 124승으로 메이저리그 동양인 최다승 기록을 가지고 있는 박찬호 선수도 봉황대기에서 안 좋았던 기억이 있는데요. 1학년이던 1989년 휘문고와의 16강전에서 초고교급 타자 고(故) 박정혁에게 3연타석 홈런을 맞는 수모를 당한 것입니다. 박찬호 선수에게 3연타석 홈런을 뽑아낸 박정혁 선수는 다음 날 이어진 광주진흥고 경기 첫 타석에서도 홈런을 치며 4연타석 홈런이라는 기록을 쓰기도 했죠. 이 기록은 고교야구 최초의 4연타석 홈런이라는 진기록인데요. 현 한국 프로야구 최고의 홈런타자인 박병호 선수가 고교시절 4연타석 홈런을 친 것이 가장 최근 기록이자 역사상 4번째 기록이라고 합니다.
1991년 봉황대기는 이후 92학번으로 일컬어지는 황금세대의 마지막 고교야구 시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고인이 된 조성민 선수도 신일고 3학년이던 1991년 모교에 봉황대기 첫 우승을 안기며 최우수투수상을 수상하는데요. 조성민은 홈런왕까지 차지하며 타격에서도 맹활약했죠. 1992년 배명고 우승 때는 김동주 선수가 최우수투수상에 올랐으며, 단일 대회 최다홈런(18개)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1993년 경북고 준우승 당시에는 이승엽 선수가 선발 투수 겸 4번 타자로 활약하며 대한민국 홈런 역사의 서막을 예고하기도 했죠.
전국의 모든 학교가 우승 후보!
"봉황기는 모든 고교 팀들이 출전하게 된 첫 대회였고, 동대문구장은 인산인해를 이뤘다"
- 김재박 (한국일보 기사 내용 중)
1971년 창설해 40여년간 이어져 온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는 지역예선 없이 전국의 모든 고교야구팀이 출전하는 유일한 대회입니다. 지역예선 없이 모든 팀이 참가하는 만큼, 봉황대기는 언제나 이변이 함께해왔는데요. 1971년 열린 1회 대회 때부터 이변의 스토리가 펼쳐졌죠. 당시 무명의 김재박 선수가 뛴 신생팀 대광고는 당대 최고의 고교야구 스타 윤몽룡 선수가 이끄는 중앙고를 꺾고 결승에 진출하는 파란을 일으켰습니다. 아쉽게도 김재박 선수와 대광고의 돌풍은 경북고에 패하며 준우승으로 끝났지만, 첫 대회의 이변은 지금까지도 회자되며 봉황대기에 도전장을 내민 약체들에게 커다란 동기부여가 되어 아직까지 그 도전 정신이 이어져 오고 있답니다.
3회 대회였던 1973년엔 타격상과 최다안타상을 받으며 대구상고의 우승을 이끌었던 '타격의 달인'장효조 선수가 스타덤에 올랐죠. 고(故) 장효조 선수는 이듬해에도 타율 4할1푼2리, 도루 8개로 2년 연속 우승의 주역이 되며 프로무대의 활약을 기대하게 만들었습니다.
전국구 스타 등용문! 국보급 투수를 꿈꾸며
1980년 10회 대회에서는 한국 야구사에 한 획을 긋는 불세출의 스타가 첫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얼굴의 여드름 때문에 ‘멍게’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선동열 선수는 경기고와의 1회전서 삼진을 무려 15개나 빼앗으며 노히트노런을 달성하였고, 단숨에 고교야구 최고의 스타로 떠올랐죠. 당시의 기록은 1959년 8월 20일 개장한 동대문야구장 역사상 최초의 노히트노런 기록이기도 했다고 하네요. 또한 같은 대회에서 이종두 선수는 고교야구 역사상 첫 사이클링 히트를 작성하며 한국 야구사의 역사를 더했답니다.
1981년엔 선린인터넷고의 박노준, 김건우 선수와 경북고의 문병권, 성준 선수 등 고교 스타들이 명승부를 펼쳤는데요. 그 중에서도 군산상고 조계현 선수는 대구고와 8강전에서 무려 18개의 삼진을 잡아내며 당시 야구계를 놀라게 했다고 하네요. 또한 1985년 15회 대회에서는 박동희 선수가 5경기에서 10안타만 내 주며 평균자책점 '0'의 전무후무한 기록을 달성하기도 했습니다.
한국의 ‘고시엔(甲子園)’이라 불리는 봉황대기 전국 고교야구대회는 아마추어 야구인들의 인기와 사랑을 이어오고 있어요. 현재 전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회인야구선수의 ‘선수 출신’ 신분을 봉황대기 고교야구대회에 등록한 사실 여부로 결정할 만큼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데요. 그 권위만큼 각종 이변이 속출하는 명승부를 연출하며 ‘전국구 스타’의 등용문으로 자리매김해 오고 있습니다.
지난 2011년 주말리그가 출범하면서 3년간 폐지되기도 했으나, 2013년부터 다시 부활하며 40년의 역사를 이어가고 있는데요. 다른 대회에서는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무명 선수들에게 선망의 무대이자, 명실공히 한국 야구를 성장시키는 축제의 장으로 지속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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