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7. 27. 13:32ㆍ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요즘 대입시험에서 논술의 비중이 점점 높아지고 있는 추세임에도 불구하고, 청소년들은 어휘 뿐 아니라 구성력과 표현력까지 갖춰야 하는 ‘글쓰기’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청소년들의 문자메시지, 네트워크와 같은 현대적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통해 생겨난 신조어에 익숙해져 순우리말의 뜻도 헤아리기 힘든 경우가 있죠.
그렇기에 청소년들은 여름방학을 ‘글쓰기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찬스’라고도 합니다. 취약점을 발견하면 이를 교정하고 보완할 시간적 여유가 충분하기 때문이죠. 지난 7월 20일, 독서대학 <르네21>에서도 여름방학을 맞아 ‘2011여름계절학교’가 열렸었습니다. 특히 이날은 <십대를 위한 재미있는 어휘 교과서>의 저자 서보건 작가가 직접 강연에 나섰는데요. 그 현장을 다독다독이 다녀와 보았습니다.
서보건의 <십대를 위한 재미있는 어휘 교과서>는 신문 기사 등에 널리 쓰이지만 그 의미가 모호하거나 포털사이트 지식검색에서 다수의 청소년들이 궁금해하는 단어 위주로 선별하여 설명하고 있는데요. 특히 어휘의 뜻 뿐 아니라, 탄생 배경, 그 말이 유행하게 된 시대 상황 및 사회적 배경을 비롯해 원뜻은 무엇인지 등을 다양한 예를 들어 살펴보고 있습니다.
서보건 작가는 어린 시절 ‘남아수독오거서’(남자는 모름지기 다섯 수레의 책을 읽어야 한다)란 말에 감명을 받아 역사, 심리, 동양고전, 정치, 경제, 자연과학, 오컬트 등 다방면으로 독서를 즐겼다고 하는데요. 특히, 그는 “분야를 넘나드는 책 읽기와 사고 습관이 얼마나 실제적인 힘이 되는지 경험했다”고 했습니다. 실제로 사춘기를 심하게 앓은 탓에 중고등학교 땐 성적이 중위권에서 맴돌았지만, 종합적 사고력과 독해력을 요하는 수능시험이 도입된 후 고3 첫 모의고사에서 단숨에 언어영역 전교 1등을 올라서며 인생 역전을 이루었다고 합니다.
더운 날씨인데도 불구하고 아이들의 모습에서 열정을 느낄 수 있었는데요. 무엇보다도 단어와 뜻을 외우는 것이 아닌, 탄생 배경과 사상에 대한 이야기를 다뤄 자연스레 어휘를 습득할 수가 있어, 아이들이 쉽게 집중하는 모습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몇 가지를 살펴보면, 서보건 작가는 아킬레스건을 치명적 약점이라고 설명하고 있는데요. ‘누구에게나 아킬레스건은 있다’라는 이야기와 다양한 예시를 들며, 인간의 유한성 즉 이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다는 생각이 바탕에 깔려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또한, 휴머니즘은 쓰는 사람마다 의미가 다르기 때문에 문맥을 봐야 한다고 설명했는데요. 원뜻은 신본주의를 떠나 인본주의를 지향하는 것으로 르네상스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합니다. 특히나 요즘은 휴머니즘이라는 용어를 남발한다는 지적도 있었습니다.
서보건 작가의 말을 하나 하나 적어 써내려가며 열심히 듣고 있던 유형원 학생(고1)은 “어휘 능력을 키우기 위해 신문을 자주 읽으려 노력하지만 용어에서 막힐 때가 많았다”며 “책과 강의를 듣고나니 느낌으로만 알았던 용어를 이젠 확실히 뜻과 배경에 대해 알 수 있을 것 같다”고 했습니다.
마지막 시간에 서보건 작가는 국어공부와 독서의 연계성에 대해 다시 한번 언급하며 <독서, 성공의 필수조건>을 발표하기도 했는데요.
“독서하는 시간은 마른 수건 짜듯 짜내야 합니다. 자투리시간, 잠자기 전, 이동 시 등 언제라도 손에서 책을 놓지 마십시오. 한 달에 몇 권을 읽을지 스스로 강제적으로 규칙화해 그것을 지켜나가야 합니다”
서보건 작가는 독서를 ‘선택과 집중’으로 섭취하라고 했습니다. 특히, 책 내용이 어렵거나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과감히 포기하고 다른 책을 읽으라고 권유했는데요. ‘한번 시작한 책은 끝까지 읽어야 한다’라는 강박관념이 생기면 자유로운 독서를 방해하고 흥미를 잃게 할 수 있기 때문이라 합니다. 또 책을 오래 읽지 못하는 학생이라면 목차 중 관심분야부터 읽는 것도 경제적이라고 했습니다.
또한, 책을 인정사정 없이 ‘학대’하라고 했는데요. ‘어떠한 강력한 기억도 희미한 먹물보다 못하다’라는 말처럼, 독서 후 정리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적는 연습을 하다 보면 자연스레 글쓰기 향상을 키울 수 있다며 갈무리를 위한 평범하지만 강력한 방법이라고 했습니다.
강연이 끝난 후, 아이들은 큰 박수와 함께, 서보건 작가의 사인을 받는 시간을 가졌는데요. <2011청소년여름학교>를 주관한 독서대학 르네21 담당자를 만나 좀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안녕하세요. 독서대학 르네21 사무국장과 르네21 강좌 기획업무를 맡고 있는 백혜진입니다.
르네21의 강좌는 독서와 관련된 12분의 전문가 그룹이 독서 매뉴얼 기획위원으로 참가하고 있어서 기회위원회에서 기본적인 방향과 틀이 논의되면 그 후의 과정들을 진행하는 역할을 합니다.
청소년 계절(여름/겨울)학교를 꾸준히 해 오신 걸로 아는데요. 처음 시작하게 된 계기와 청소년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청소년 인문학은 여름방학과 겨울방학에 진행되는 계절학교와 학기 중 격주로 진행되는 반토교실로 나뉘어 진행됩니다. 반토교실은 놀토가 아닌 반만 가는 토요일이라는 의미입니다. 계절학교에서는 신간 중심으로, 반토교실에서는 고전읽기 중심으로 강좌가 기획됩니다.
인문학은 누구에게나 필요하지만 특히 청소년들에게 매우 중요합니다, 성인들에게는 교양의 일부분이 될 수 있지만 청소년들에게는 인생의 전환점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 청소년 인문학교실이 처음 기획되었지요.
2008년 처음 청소년 강좌를 시작했을 때의 반응은 수강생의 수와 참여도 관점에서 폭발적이라는 단어로 표현할 수 있을 만큼 뜨거웠습니다. 강좌의 대부분이 일찍 마감되어 많은 청소년들이 수강의 기회를 갖지 못하는 안타까움도 있었죠. 엄선된 매뉴얼과 함께 ‘저자직강’이라는 르네21강좌의 특성상, 책의 저자들이 강의하시는 방식을 주효했던 것 같습니다. 강의가 끝나면 90% 이상의 수강생들이 책의 저자인 강사 선생님들에게 저자사인을 받으려고 긴 줄을 서죠.
요즈음의 작은 우려라면 아주 일부분의 학부형과 청소년들이 르네21의 강좌를 청소년 인문학이 아닌 독서 스펙 쌓기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이지요. 극히 일부분이긴 하지만 안타까운 생각이 듭니다.
동양고전, 서양고전, 인문교양 등 다양한 인문학 중에 청소년들이 방학 때 꼭 읽었으면 하는 책이 있다면 소개 부탁드려요.
올 여름에 꼭 읽었으면 하는 목록들을 2011년 청소년 여름학교 도서로 선정했습니다. 이미 7월 셋째 주부터 시작해서 참가하기에는 늦었지만 아래의 르네21 홈페이지 중 여름학교 책 선정목록을 참고하여 개인적으로 읽어도 좋을 듯합니다. 청소년 강좌 중 인문교양에 해당되지요.
(2011년 청소년 여름학교 도서목록 바로가기)
독서대학 <르네21>에서 진행하고 있는 저소득층 청소년들을 위한 ‘희망의 인문학’ 공익 사업은 독서 교육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의미 있는 프로그램으로 기억되고 있는데요. 그만큼 보람도 클 거라 생각 됩니다. 가장 기억에 남았던 적은 언제인가요?
‘희망의 인문학’ 사업은 마음의 빈곤을 가진 청소년들이 책을 통해 위로 받고 친구들과 이야기 나누며 성찰과 소통의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지원하는 프로그램입니다. 현재 서울 지역의 지역아동센터, 청소년 쉼터, 대안학교 등 8곳의 청소년 기관에서 매주 진행되고 있는 만큼 재미있는 일도 많고, 안타까운 일도 많은데요.
책은 읽어서 뭐하냐며 볼멘소리 하는 친구, 글씨가 너무 많다며 머리 아프다는 친구, 교과서도 안 읽는다며 책 한 장 넘겨보지 않던 친구들이 모인 지 3개월쯤 지나고 있을 때였어요. 학교생활만으로도 고된 친구들에게 ‘희망의 인문학’ 프로그램이 부담이 되는 것은 아닌 지 슬슬 걱정이 되어가고 있는데, 한 친구가 쓴 편지를 보게 되었지요. 새벽 1시까지 책을 읽었는데, 주인공처럼 좋은 친구들을 갖고 싶다며 다음에도 이렇게 재미있는 책을 많이 추천해달라는 내용이었어요.
밤 늦게까지 책을 읽고, 소설 속 주인공에게 공감했다는 친구가 기특해서 사진을 찍어놓고 몇 번씩 읽었어요. 그 후 아니나 다를까 자신의 고민들을 털어놓기 시작하는 친구들, 오늘은 책을 읽어 왔다며 은연 중에 자랑하며 뿌듯해하는 친구들, 책을 읽으며 눈물을 글썽이는 친구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라면 어느새 변화하고 있는 친구들을 발견했을 때인 것 같아요.
88만원 세대, 삼포세대 등 경제적 어려움을 호소하는 요즘, 그 어느 때보다 취업과 연계된 실용학문을 선호하는 경향이 많은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문학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88만원 세대에게 인문학의 필요성을 이야기하기에는 눈앞의 산적한 문제들이 단순하지 않기 때문에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전을 읽으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비고전이 도라지라면 고전은 산삼’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애플의 최고 경영자 스티브 잡스는 “아이팟, 아이패드 이런 것을 발견하게 된 가장 창조적인 원천은 대학시절에 읽은 고전읽기 100권 프로그램이었다”고 회상합니다. 상당수의 주목받는 리더들의 성공엔 인문고전의 큰 뒷받침이 있었습니다. 조금 더 덧붙이자면, 책을 읽는 데만 그치지 않고 ‘사색’과 ‘깨달음’이 함께하는 인문학 공부를 권유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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