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의 눈물, 천종호 판사가 들려주는 학교폭력과 소년재판 이야기

2014. 12. 11. 13:01다독다독, 다시보기/지식창고

출처_ 오마이뉴스 / 법정에서 사과한 부장판사, 왜 그랬을까 / 2014, 09, 25



학교폭력이라는 단어는 이제 우리에게 더 이상 낯선 단어가 아닙니다. 대구에서 학교를 다녔던 한 중학생의 자살 사건 이후 물 밑에서 덮어지기만 했던 학교 폭력 사건이 물 위로 올라왔고, 많은 사람이 학교 폭력을 해결하기 위해서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요.


그러나 이런 일련의 노력에도 여전히 ‘왜 한국은 학교 폭력을 해결하려고 하지 않는가?’는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일은 일어나고 있습니다. 자신의 아이가 가해 학생이 되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부모는 피해 학생의 모자람을 탓하고, ‘내 아이는 착한 아이인데, 나쁜 친구를 만나서 망가졌다’고 말하곤 하는데요, 대체로 그런 부모는 진심으로 잘못을 뉘우치지 못하고 피해 학생과 그 부모님께 사과를 하지도 않는다고 하지요. 그런 부모는 ‘재수 없게 똥을 밟았다.’고 가볍게 생각하면서 자신의 아이가 저지른 잘못을 수정하기보다 ‘피해 학생 부모가 많은 보상금을 요구하는 게 불합리하다.’고 말하면서 아이를 감싸면서 피해 학생과 부모를 기회주의자로 몰아붙이기도 합니다.



 학교 폭력, 누구의 문제일까요?


판사 : 너희들 보니까 일진이네. 부모님,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부모 : 제가 볼 때 우리 아이는 일진과는 전혀 관계없는 걸로 보고 있거든요.

판사 : 솔직히 이야기해봐, 아버님한테. 네가 일진인지 아닌지.

아이 : 일진 아닙니다.

판사 : 그럼 왜 피해자들이 그렇게 순순히 너희에게 돈을 주나?

아이 : 나이 차이가 좀 나니깐 무서워했던 점도 있었어요.

판사 : 일진입니까? 아닙니까?

부모 : 아닙니다. 절대 그런 쪽으로 빠질 애가 아니거든요.

판사 : 빠진 애가 아니고요. 이 아이들이 그렇게 논다니까요. 자기들끼리 무리 지은 게 일진 아닙니까! 그걸 모르면 아이 교육 방침을 어떻게 세울 거예요? 어떻게 교육시킬 건지 이야기해보세요.

부모 : 제일 첫째가 인성교육이겠죠.

판사 : 그게 틀린 거예요. 집단 따돌림 같은 경우에나 인성교육 하지요. 일진 아이들은 그렇게 교육시키는 게 아닙니다. 지금 만나는 친구들을 못 만나게 해야 돼요!! 부모님 앞에선 착한 아이죠? 하지만 저 아이들이 무리를 지으면 두려움이 되는 겁니다. 그게 바로 일진입니다.

(학교의 눈물, p34)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몇 년 동안 10대 청소년의 범죄 수준이 성인 범죄 못지않은 잔인성을 띄기 시작했습니다. 얼마 전에 선고를 받은 김해 여고생 생매장 사건에도 10대 청소년이 관여되어 있었는데요, 가만히 서서 ‘내가 학교에 다녔던 시절’을 떠올려보면 지금의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가 도대체 어떤 학교인지 어른은 쉽게 알 수 없을 정도입니다.


학교라는 것은 본디 사람을 가르치는 곳이지요. 하지만 요즘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는 오직 시험을 쳐서 좋은 결과만 내면 모든 것이 마음대로 되어버리는 곳으로 바뀌어 버린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런 변화를 주도한 것은 아이들이 아니라 바로 어른들이겠지요. 부모와 교사를 비롯한 어른이 ‘일단 공부만 잘하면 된다.’는 잘못된 가치관으로 아이를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출처_ SBS스페셜 ‘학교의 눈물’ 캡처



그래서 학교 폭력은 가정 해체를 직면해 아파하는 아이들만 해당하는 게 아닙니다. 평범한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 그리고 학교에서 반장을 하거나 전교 1등 혹은 학생회장을 하는 아이들도 해당되는 일인데요, SBS<학교의 눈물>에서 볼 수 있었던 천종호 판사님이 “어른들의 문화가 지금 아이들 학교 내에서 그대로 드러나 있습니다. 서열, 세력, 권력…” 같은 말을 한 것도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필자는 과거 학교 폭력의 피해자였던 동년배의 다른 누구보다 좀 더 학교 폭력과 교육 문제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직접 운영하는 블로그 <노지의 소박한 이야기>에서도 한동안 교육에 대한 글을 자주 올렸던 해가 있었는데요, 그 글은 모두 직접 겪었던, 그리고 살아있는 것이 더 힘들었던 중학교 시절이 배경이 되었던 글들이지요. 그리고 지금도 학교 폭력, 교육과 관련한 많은 책을 읽거나 다큐멘터리를 시청하면서 교육 문제에 대한 제 의견을 블로그를 통해 표출하고 있습니다. 다큐멘터리로 보고, 책으로 읽었던 <학교의 눈물>이 그 대표적인 예이고, 오늘 ‘다독다독’ 독자 분들께 소개하고 싶은 <아니야, 우리가 미안하다>이라는 책도 그런 책 중 한 권입니다.



 천종호 판사의 사과


<아니야, 우리가 미안하다>는 SBS ‘학교의 눈물’과 KBS ‘두드림’에 출연했던 천종호 판사님이 소년재판을 하면서 겪으신 이야기를 엮은 책입니다. 이 책을 통해 ‘학교 폭력’만이 아니라 ‘소년 범죄’라는 그 근본에 대해 읽어볼 수 있었지요. 특히 소년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소년들을 바꾸기 위해서 우리 어른이 무엇을 해야 하는 지를 말입니다.


학교 폭력이 발생하고 많은 사람이 ‘학교 폭력은 교육의 문제다.’라고 말하면서 좀 더 나은 교육을 통해 이를 해결하려고 했습니다. 교육부는 학교에 심리 상담사 선생님을 배치하고, 인성 교육을 추가하면서 일시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그런 제도가 시행되었음에도 학교 폭력은 여전히 멈추지 않았습니다. 학교는 학교 폭력을 감추기 위해서 피해자를 협박하는 일도 서슴지 않았고, 정부의 예산이 지원되지 않게 되면서 심리 상담사 선생님은 1년이 지나자 학교에서 쫓겨나는 신세가 되어버렸습니다. 말은 학교 폭력을 해결하고 아이의 상처받은 마음을 보살펴준다고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아이 교육을 경제적 문제로만 접근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학교 폭력은 학교를 벗어나 사회에서 일어나는 하나의 범죄가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저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처벌과 따뜻한 관심이 있으면, 충분히 그 아이들이 다시 바른 길에서 걸을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른은 그렇게 하지 않았지요. 오직 결과만 바라보면서 진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몰랐기 때문입니다.


학교폭력으로 유명을 달리한 많은 아이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지금부터라도 학교를 정상화시키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 아이들이 마음 놓고 학교에 다닐 수가 있다. (p127_ 아니야, 우리가 미안하다)


한 가지 문제점은 언제나 학교 폭력을 대하는 태도가 가해자 중심으로 되어있다는 것입니다. 가해자를 처벌하고, 잘못을 반복하지 않게 하는 것도 중요하지요. 하지만 그것보다 더 우선순위가 되어야 하는 건 피해자가 다시 회복하여 정상적인 사회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해주는 일입니다.


많은 학교 폭력이 되풀이 되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아이들이 반성하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부모조차 제 자식 편을 들면서 잘못을 뉘우치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아니야, 우리가 미안하다>에서는 천종호 판사님이 문제의 심각성을 모르고, 잘못을 뉘우치지 못하는 부모와 가해 학생에게 조금 호된 방법을 써서라도 그것을 알 수 있도록 한다는 이야기를 읽어볼 수 있습니다.



출처_ SBS스페셜 ‘학교의 눈물’ 캡처



한 소년의 아버지에게 그가 직접 쓴 사과의 편지를 낭독하게 하였다. 그는 눈물을 흘리며 편지를 읽어나갔다.


윤희 부모님께.

고개 숙여 용서를 빕니다. 죄인이 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잘못했습니다.

윤희에게도 용서를 빕니다.

한참 민감한 시기에 너무나 큰 상처를 준 것 같아 자식을 키우는 부모 입장으로서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제 자식이 그렇게 된다면……’ 하고 생각해보면 끔찍합니다.

부모 된 입장은 동일할 것이라 생각됩니다.

이 일을 윤희도 빨리 잊어버리고, 건강을 되찾아 다시 친구들과 잘 어울리고, 부모님도 예전의 모습으로 생활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아빠로서 무한한 책임을 통감합니다. 다시 한 번 용서를 빕니다.


편지 낭독이 끝난 뒤 나는 소년들에게 말했다.

“애들아, 거기에 꿇어앉아서 지금 이 자리에 오지 못한 윤희가 들을 수 있도록 ‘윤희야, 우리가 잘못했다, 용서해라’를 열 번씩 크게 외쳐라.”

그러자 소년들뿐만 아니라 그들의 부모들도 모두 바닥에 꿇어앉았다. 그리고 다 함께 외치기 시작했다.

“윤희야, 우리가 잘못했다. 용서해라.”

열 번의 최임이 끝나자 여기저기서 흐느낌 소리가 들렸다.

나는 도시 소년들에게 말했다.

“이번에는 ‘윤희 어머님, 감사합니다.’를 열 번씩 외치거라.”

소년들과 그 부모들은 또 다시 하나가 되어 외쳤다.

“윤희 어머님, 감사합니다.”


소년부 판사는 심리 결과 보호처분을 할 필요 없다고 인정하면 처분을 하지 않을 수 있다. 이를 근거로 윤희에 대한 소년들의 비행은 전체로 볼 때 크고 무거웠지만 가담 정도가 아주 경미한 소년들도 있는 점을 고려하여 이들 모두를 경첨상담교육센터에서의 상담을 통하여 감호를 받는다는 조건으로 불처분 하는 결정을 내렸다. 이 사건에서의 폭력은 지속적인 것이 아니라 지극히 우발적으로 발생한 것인데다 집단적이기는 하였지만 조직적인 것이 아니었고, 폭력도 단 일회에 그쳤기 때문에 전형적인 학교폭력이라고 보기가 어려웠으며, 또 앞서 밝힌 대로 아이들 모두가 각자 자신의 부모와 함께 장기간에 걸쳐 상담을 받으며 진심으로 잘못을 뉘우쳤고, 윤희와 그 가족으로부터 용서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피해자에게 깊이 사죄해 용서를 받고 이로 인해 자판에서도 선처를 받게 되면 가해자는 피해자와 그 가족들에게 큰 고마움을 느끼는 동시에 더욱더 죄스러운 마음을 갖게 된다. 그렇게 되면 다시는 피해자를 괴롭히려는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윤희에게 집단폭력을 행사한 소년들 역시 윤희와 가족들에 대한 사죄의 마음을 간직한 채 지금까지 비행을 저지르지 않고 있다.


학교폭력, 특히 집단적 학교폭력사건의 해결에 있어서는 이와 같은 관계회복을 도모하는 화해적 분쟁해결이 무엇보다 중시되어야 한다. 참된 관계회복을 위하여 대책과 방법을 세우지 않는 분쟁해결은 미봉책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화해를 위한 시도조차 없이 내려진 경우 가해자로서는 법에서 정해진 벌을 모두 받았다는 생각에 화해의 장에 서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피해자가 원하더라도 진정한 사죄를 받아내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진정한 사죄와 용서를 내용으로 하는 화해적 분쟁해결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피해자가 다시 건강한 학교생활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p157-159, ‘아니야, 우리가 미안하다)



 아니야, 우리가 미안하다


학교와 교사, 그리고 부모는 바로 이런 것을 가르쳐줄 수 있어야 합니다. 억지로 사과를 시키고, 반성문을 쓰게 하고, 약한 처벌을 통해 서로 간의 분쟁의 씨앗을 남겨둔 채 사건을 해결하려고 하는 게 아니지요. 물론, 이 일은 천종호 판사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무척 어려운 일입니다. 그럼에도 포기해서는 안 되는 이유는, 진짜 아이가 바른 사람으로 자랄 수 있도록 해주는 가장 값진 일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는 과거 부모님 세대가 다녔던 학교와는 다릅니다. 더 무서운 학교로 변했을 수도 있고, 즐거움이 더 많은 학교일수도 있지요. 학교 폭력 이후 나오는 대안 학교와 아이들에게 좀 더 자유를 주는 학교는 후자의 학교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언제나 높은 성적을 요구하고, 차별주의를 가르치는 교육은 전자의 학교가 되어버릴 수 있습니다.

 


출처_ SBS스페셜 ‘학교의 눈물’ 캡처



천종호 판사님의 진심어린 고백이 담긴 책 <아니야, 우리가 미안하다>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줍니다. 이 글을 읽는 독자 중에서 부모 혹은 교사가 있다면, 앞으로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가슴 아프게 읽어볼 수 있을 것입니다. 어른이 바뀌지 않으면, 아이는 바뀌지 않지요. 어른이 잘못을 뉘우치지 못하면, 아이는 더더욱 잘못을 뉘우치지 못할 것입니다.


지금 일어나는 10대 청소년들의 범죄. 우리는 청소년들을 손가락질하면서 “너희는 도대체 왜 그러냐?”고 욕을 하는 게 아니라 우리 자신이 먼저 고개를 숙이면서 “아니야, 우리가 미안하다.”고 사과를 해야 합니다. 실수를 하지 않도록 지도하는 것이 교육이라면, 실수로 인해 발생한 사태를 수습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도 역시 교육이지요. 하지만 우리 어른은 그런 교육을 제대로 실천하지 못했으니까요.


한때 학교 폭력의 피해자였던 필자는 아직 그 가해자를 용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애초에 내게 용서를 구했던 적도 없었고, 학교 선생님은 한 번도 저의 편을 들어주지 않았지요. ‘공부 잘하는 아이 앞길을 막지 말라’며 발길질로 제 얼굴을 찼던 때를 필자는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어른의 그런 이기심과 잘못을 똑바로 지적하지 못하는 그 실수들이 한 사람에게는 평생 지울 수 없는 큰 아픔이 된다는 것을 잊지 말았으면 합니다.



출처_ 마음수련 / [스페셜 인터뷰] 천종호, 청소년회복센터 운영하는 소년범 치유판사



 <아니야, 우리가 미안하다>는 우리에게 ‘학교 폭력’과 ‘소년 범죄’를 똑바로 마주볼 수 있게 해줍니다. 이건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우리의 이야기이니까요. 그래서 필자는 이 책을 많은 부모와 교사, 그리고 아이를 가르치는 입장에 있는 사람에게 추천해주고 싶습니다. ‘내 아이 수재로 기르는 방법’ 같은 책을 읽기보다 이런 책을 통해 ‘교육의 철학’을 가질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사과해야 할 사람은 오히려 우리 어른들입니다.

외롭게 방황할 때 따뜻한 말 한 마디 건네지 않은 우리가,

죽고 싶을 만큼 힘들어할 때 손 내밀어주지 못한 우리가,

우리가 오히려 미안합니다. (p251_ 아니야, 우리가 미안하다)



@다독다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