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12. 4. 13:00ㆍ다독다독, 다시보기/지식창고
광대한 무선 네트워크 인프라가 구축되면서 지구촌은 더욱 밀접해졌습니다. 이로 인해 정보교류는 더욱 활발해졌으며, 글로벌 경제 관련 소식은 누구나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중요한 뉴스가 되었습니다. 미국이나 유럽, 일본의 양적완화와 환율의 변동, 외인 자금의 유출입은 국내 경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도 하는데요, 개개인 또한 이 거대한 물결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않은 만큼, 글로벌 경기는 우리에게 대단히 중요한 외부 요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경제 시스템의 근간인 자본주의 시장 모델이 결코 완벽한 건 아닙니다. 기술과 문명의 눈부신 발전에도 경제 공황은 주기적으로 찾아오며, 현 경제구조의 문제점과 한계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경제모델이 지니고 있는 장점을 극대화하는 동시에 단점은 지속적으로 보완해나가야 할 텐데요, 이런 측면에서 현재 자본주의 시장경제 모델의 한계에 대해 강력한 화두를 던진 두 권의 책이 있어 소개할까 합니다.
‘피케티’가 <21세기 자본>에서 다시 지펴낸 불씨
그간 세간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가 펴낸 <21세기 자본>은 올해 전 세계를 강타했고 국내에서도 드높은 관심을 받았습니다. 자본주의 시스템에 내재된 불평등과 빈부격차 문제 관련하여 3백년에 달하는 여러 국가들의 방대한 통계자료에 기반, 실증적으로 검증하고 본인의 의견을 내세웠기 때문에 ‘피케티’의 주장은 더더욱 논란이 되고 있지요. 우리가 종종 ‘돈이 돈을 버는 세상’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처럼 현대 사회에서 시간은 곧 자본이 되고, 자본은 다시 추가적인 자본을 낳습니다. 이를 대변이라도 하듯 <21세기 자본>은 소득의 분배과정과 격차라는 현상을 짚어보면서 필연적으로 불평등이 파생된다는 점을 집중 조명하고, 이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는 형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신용을 기반으로 거래를 하고 통화가 탄생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이자’라는 방식을 통해 근로소득 외에도 자본소득을 거둘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자본소득이 근로소득보다 우위에 있을 경우 부는 대대로 세습되기 마련이고 이변이 없는 한 빈부격차는 계속 벌어지게 되는데 저자는 바로 자본소득에 대한 분배율이 근로소득 분배율보다 높다는 이 핵심적인 부분을 각국의 통계자료를 통해 제시하고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부동산 등 생활에 필요한 재화를 사는 데 대출을 받고 그 이자를 내는데 대부분의 소득이 사용된다면 소위 ‘워킹 푸어’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소득을 늘지 않는데 이자율이나 금융비용(=자본소득)이 증가하면 수많은 서민들의 생활고는 가중되므로, 각국 중앙은행들은 이런 문제점을 통제하기 위해 경제성장률이나 물가상승률 등을 고려하여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통화량이나 금리를 조절하려 애씁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전 세계는 늘 주기적인 경제 불황에 시달려왔고 빈부격차는 동서고금을 막론한 고질적 난제였습니다.
채권자가 있으면 채무자가 있고 누군가가 예금을 하면 누군가는 대출을 받아야 합니다. 금융비용이라는 커다란 공이 뒤에서부터 우리를 향해 굴러오고 있다고 가정했을 때, 우리는 이를 피하기 위해 앞으로 나름 열심히 달려보지만 공이 그보다도 더 빠르게 와버리면 오랜 시간 노력했는데도 거대한 공에 짓눌려버릴 수 있습니다. 바로 이런 문제점에 대해 피케티는 엄청난 자본소득을 거두는 최상위권 부유층에 대한 누진적 고율과세 및 글로벌 자본세의 도입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는데, 이것이 과연 효용성 있는 대안인지에 대해서는 많은 이들의 의견이 엇갈리고 있는 상황입니다.
극작가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에 나오는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은 약탈적 금융의 대명사로 꼽히며, 아랍권 국가들의 경우 ‘이자’라는 개념을 원칙적으로 부인하고 있어서 어떤 사업에 지분 형태로 참여·투자한 뒤 수익 배당이라는 형태를 취하는 경향이 있기도 합니다. 이처럼 임대소득이나 이자소득은 ‘불로소득’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는데, 신용거래에 의해 금융이 생성되는 현대 자본주의의 원리 상 이를 전적으로 부인하는 것 또한 무리일 것이고 다만 그 ‘정도’, ‘적정성’에 대한 논란은 언제나 있을 수밖에 없을 겁니다.
헨리 조지의 <진보와 빈곤>과 부동산 과세
통계수치에 대한 적정성 논란은 있으나 피케티가 <21세기 자본>에서 정량적 데이터를 적극 활용한 것과 달리 헨리 조지의 <진보와 빈곤>은 우리의 삶에 직간접적으로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부동산 관련 사회·경제적 이슈를 다루면서 숫자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있다는 차이점이 있습니다. 이 책의 핵심내용을 요약하면 ‘현 문명사회가 기술적으로는 놀라울 정도의 진보를 거듭함에도 불구하고 빈곤이 사라지지 않고 주기적인 불황이 찾아오는 이유는 토지사유제로 인해 지대(임대료)가 지주의 불로소득이 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각국 정부는 지대에 조세를 부과하여 이를 빈곤 퇴치를 위한 세수로 사용해야 한다.’입니다.
이 책은 19세기 후반 미국의 사상가 헨리 조지가 펴냈지만 21세기 한국에 종합부동산세라는 세금의 신설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여전히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서두 중 역자의 글에는 <진보와 빈곤>이 가지는 사회적 의의가 집약되어 있어 간략히 소개해 봅니다.
'이 책은 첫 출판 당시에 세계적으로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고 이후 많은 이상주의자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아왔다. 톨스토이는 <부활>의 상당 분량을 할애하여 헨리 조지가 이 책에서 제안한 제도를 가장 이상적인 토지제도로 묘사하기도 하였다. 또 미국, 대만, 호주, 덴마크, 영국 등 여러 나라의 토지제도에도 흔적을 남기고 있으며 지금도 각국에서 헨리 조지의 사상을 실천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토지의 독자적인 특성을 인정하지 않고 노동과 자본만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공통성을 가진 주류와 좌파 양 진영이 20세기 경제학계의 주도권을 장악함으로써 헨리 조지의 사상은 학계에서 철저히 무시되어왔고 오늘날 대부분의 경제학 교과서에서는 헨리 조지라는 이름조차 보이지 않는다.' -
헨리 조지는 19세기 미국을 바라보면서 이 책을 썼지만 일단 한 번 집을 사면 대출금 20년 분할상환 부담에 노출되고, 집을 사지 않더라도 전월세난을 필연적으로 겪어야 하는 한국의 상황은 아마 <진보와 빈곤> 집필 당시 미국의 사회상 못지않을 겁니다. 임대료를 내고 나면 남는 게 없다고 하소연하는 소상공인들의 모습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며, 그러다보니 요즘은 거의 누구나 임대사업자가 되기를 바라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따라서 헨리 조지가 던진 화두는 지금도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얻을 수밖에 없고, 무엇보다도 ‘주거’는 단순 소비재가 아닌 ‘의식주’, 생활필수재이기 때문에 그의 주장은 더 큰 호응을 얻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이 책의 근본 취지에 있어서는 모든 이들이 공감하지만 과연 저자가 제시하는 대안이 현실적인가에 대한 반론은 만만찮습니다. 헨리 조지가 주장하는 대로 임대료에 대해 과세가 이루어진다면 지주, 임대인 입장에서는 그 부담을 다시 임차인에게 전가시켜버릴 가능성이 상당히 높으니까요. 또한 중국이나 베트남처럼 사회주의 기반의 국가들은 토지에 대한 사적 소유권을 인정하지 않고 ‘사용권’이라는 개념을 도입하고 있는데, 부동산 거품 우려가 그 어떤 나라 못지않게 고조되고 있는 그들의 방식 또한 자산가격의 팽창을 제어하는 데 성공적이지 못한 건 마찬가지입니다.
현재 국내에는 임대소득에 대한 과세가 잘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마침 과세당국은 세수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임대소득 과세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시점입니다. 수많은 건물주 및 임차인들의 관심이 집중된 지금, 헨리 조지의 주장은 우리에게 얼마나 큰 의미가 있는 걸까요. 적극 수용하고 추진해야 할 관점인 것일까요, 아니면 현실을 모르는 이상주의적 해법에 불과할까요?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역사적 사건은 늘 ‘가진 자’와 ‘덜 가진 자’ 간의 대립관계 및 갈등으로부터 생겨왔고 이는 과학기술이 획기적으로 발전한 현대사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인류가 절대적 빈곤으로부터는 탈피했다지만 상대적 박탈감이 존재하는 한 사회경제적 불평등은 앞으로도 영원히 지속되고 거론될 이슈니까요. 헨리 조지나 피케티가 제시한 여러 대안들의 실효성에 있어서는 의문과 논란의 여지가 많으나 그들이 근본적으로 이런 주장을 하게 된 취지에 대해서만큼은 아마 대다수의 독자들이 공감하지 않을까 합니다.
꿈과 현실 사이에서 우리는 늘 오묘한 줄타기를 해야 합니다. 이상을 추구하는 것은 아름답지만 이에 지나치게 휩쓸리면 자칫 몽상가가 되어버릴 수도 있겠지요. 결국 사회적 합의를 도출할 수 있을만한 접점을 찾으려는 시도가 지속되면서, 이 사회는 정반합을 통해 좀 더 나아갈 수 있게 되리라 믿어봅니다.
@다독다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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