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럼독 뉴스페이퍼! 인도 거리의 아이들이 만드는 신문 ‘발라크나마’

2015. 2. 26. 09:00다독다독, 다시보기/지식창고


출처_ channel4



초등학생 시절, 학교에 가면 매일 아침 ‘어린이 신문’이라는 것이 교탁에 놓여 있었습니다. 신문이라기보다는, 신문의 형태를 갖춘 교육지라 할 수 있겠지요. 엄마를 기쁘게 해드리는 법, 방학숙제 밀리지 않는 법, 오늘의 위인 등등의 꼭지들을 재미나게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반 아이들끼리 직접 한 쪽짜리 신문을 만들어보는 조별 수업도 한두 번쯤 있었고요. 


그런데 정말로, 어린이들을 위한, 게다가 어린이들이 취재하고 기사 쓰고 발행까지 하는 정식 신문이 존재한다고 하네요. 인도의 슬럼가 아이들이 만드는 ‘발라크나마(Balaknama)’라는 신문입니다. 제호는 힌디어(Hindi)로 ‘아이들의 목소리(Children's Voice)’라는 뜻입니다. 영화 <슬럼독 밀리어네어>가 떠오르네요. ‘슬럼독 뉴스페이퍼’라 부를 만한 발라크나마 이야기, 지금부터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출처_ YouTube by Vocativ(이하 출처 동일)




 기사 작성부터 운영까지, 아이들의 손으로 완성되는 신문 


발라크나마에 대한 기획은 인도의 비영리 기관 ‘체트나(Chetna)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단체명은 힌디어로 ’깨어남(awakening)’, ‘의식(consciousness)'을 의미한다고 해요. 신문 제작의 모티브가 이름에서부터 느껴지는 듯합니다. 


힌디어로 작성되며 연 4회 발행되는 이 신문은 놀랍게도 취재, 기사 작성, 감수 등 일련의 과정이 모두 아이들의 손으로 진행됩니다. 인도 슬럼가에서 살아가는, 그야말로 거리의 아이들이 주요 편집진으로 활동 중이라고 해요. 초기에는 서른다섯 명의 아이들―이들은 ‘콘트리뷰터(contributor)'라 불립니다―과 함께 시작한 발라크나마는, 현재 그 규모가 커져 뉴델리(New Delhi), 우타르프라데시주(Uttar Pradesh), 안드라 프라데시주(Andhra Pradesh), 비하르주(Bihar) 등 인도 4개 지역에 걸쳐 1만 명 이상의 독자를 확보하고 있습니다. 모든 콘트리뷰터는 보수 없이 자발적으로 일하지만, 장거리 이동에 따르는 경비와 같은 취재비용은 지급받습니다. 신문 발행 수익은 인도 거리의 아이들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쓰인다고 하네요. 






 폭력 경찰, 미성년 노동 실태,… 아이들의 눈으로 포착한 어른들의 불편한 진실


아이들이 만든다고 해서 우습게 봤다가는 큰일 납니다. 발라크나마가 다루는 소재들은 일반 유력지와 큰 차이가 없습니다. 시민들을 잔학하게 탄압하는 경찰들을 고발하고, 불법으로 자행되는 미성년 노동 실태를 파헤치며, 슬럼가 아이들끼리 공공연하게 이루어지는 아동 혼인 문제를 언급하기도 합니다. 슬럼가 아이들이 직접 목격하고 체험한 일상의 불편한 진실들이 발라크나마에 고스란히 담기고 있는 것이지요. 물론 기사 자체의 구성력이라든가 논리성은 부족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인도 슬럼가의 삶을 생생하게 포착해내고 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만합니다. 아마도 국제뉴스에 민감한 각국 언론사들은 발라크나마를 참고해 심층 분석 기사를 내보낼 수도 있겠지요. 그렇게 발라크나마가 기록한 현장은 세계로 전파될 것입니다. 


 



이 신문의 콘트리뷰터 가운데 한 명인 열아홉 살 샤노(Shanno)는 자선 학교에서 읽는 법을 배웠다고 합니다. 그녀는 자신과 비슷한 처지였던 사람들, 즉 읽기와 쓰기를 교육받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기사를 쓴다고 해요. 비록 읽지도 쓰지도 못하지만, 그들 모두에게는 ‘목소리’가 있고, 그 목소리를 누군가에게는 반드시 들려줘야 한다는 신념 때문이지요. 샤노 외에도, 세차 일을 하는 열여섯 살 샴부(Shambhu), 쓰레기를 수집하며 생계를 유지했던 열네 살 죠티(Jyothi) 등 발라크나마의 스태프 구성은 실로 ‘현장’에 바짝 닿아 있습니다. 




“아무도 우리에 대해 모른다는 것이 문제였어요. 어떻게 사는지, 어떤 환경에 놓여 있는지, …

그래서 우리, 아이들이 직접 신문을 발행해보자는 아이디어를 낸 거죠.” 


- 발라크나마 편집장, 16세 챤드니(Chandni)




“제가 만난 거리의 아이들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전부 신문에 기록할 거예요.”


- 발라크나마 기자, 16세 샴부(Shambhu)




발라크나마, 그리고 이 신문을 만드는 아이들의 ‘목소리’를 듣고 나니, 기자 정신에 대해 생각해보게 됩니다. 거리의 아이들 한 명 한 명의 이야기를 모두 자기 기사에 싣고 싶다는 샴부. 때묻은 수첩과 볼펜 한 자루를 들고 슬럼가 이곳저곳을 탐사하는 그의 모습은 사명감으로 가득 차 보입니다. 소외받는 아이들의 삶의 현장 구석구석을 취재하고, 궁극적으로 그들의 삶을 더 행복하게 만들고 싶다는 사명감 말입니다. 발라크나마의 ‘목소리’가 부디 선명하게, 멀리 퍼져나가기를 바라봅니다. 



발라크나마 소개 영상 ‘Slumdog Editor’



ⓒ 다독다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