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4. 24. 08:59ㆍ다독다독, 다시보기/기획연재
출처_한국경제
이슬람권에 열린 종이길
종이 제조 방법은 8세기에 이르기까지 1천년 동안 동북 아시아의 기술로서만 사용되어 왔습니다. 종이는 비단길을 이동하던 상인들에 의해 중요하게 거래되던 상품이었습니다. 6세기부터는 중동의 제국들이 상당한 양의 종이를 소비했다고 하는데 사산 왕조 페르시아의 왕이 보낸 답장이 아직 전해지고 있습니다. 알라를 단일신으로하는 이슬람교는 동쪽으로는 인도의 인더스(Indus)강에서 서쪽으로는 스페인의 피레네(Pyrenees)산맥에 이르는 지역의 정치와 경제를 운영하면서 이슬람 제국의 지식인들을 통해 자신들의 지식 문화를 형성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당시 이슬람권은 종이 제조법을 알고 있지 못했고 물론 제지 공장을 가지고 있지도 못했습니다. 751년 탈라스 전투를 통해 사마르칸트를 점령하여 당나라의 제지업자들을 포로로 잡으면서부터 대마(大麻)와 아마(亞麻)를 재료로 한 최초의 종이가 생산됩니다. 이 "사마르칸트의 종이"는 삽시간에 유명해져 이 지방을 오랫동안 경제적으로 부흥하게 만들어 줍니다. "아라비안나이트"라고 알려진 천일야화(千一夜話)에 나오는 칼리프인 하룬 알 라시드(Harun al Rashid)가 다스리던 786년에서 809년 사이 바그다드(Baghdad)에 제지공장이 세워집니다.
천일야화는 왕비가 노예와 불륜을 저지르는 것을 목격한 샤리야르(Shahryar) 왕이 왕비를 죽이고 여성에 대한 강한 불신을 보여, 처녀와 하룻밤을 잔 후에 다음날 처형하기 시작하는 이야기로부터 시작됩니다. 여자가 거리에서 사라질 정도로 샤리아르의 학살이 그치지 않자, 대신의 딸인 셰헤라자드(Scheherazade)는 일부러 왕과 결혼합니다. 밤마다 그녀가 들려주는 재미있는 이야기들에 감탄한 샤리아르 왕은 낮에는 나라일을 보고 난 후, 밤에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물론 셰헤라자드가 한 이야기들은 그녀가 창작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야기들에는 인도와 이란·이라크·시리아·아라비아·이집트 등의 설화가 포함되어 있는데 연애 이야기·범죄 이야기·여행담·신선담·역사 이야기·교훈담·우화 등 당시 이슬람 제국의 발달된 화려한 문명과 생활상을 고스란히 전해주고 있습니다.
하룬 알 라시드의 치세 동안 바그다드는 문화, 상업, 지식에서 세계의 중심지였다. 출처_위키피디아
하룬 알 라시드의 치세 동안 바그다드는 큰 번영을 누렸습니다. 세계 여러 곳에서 온 상선들이 이 도시를 드나든 것은 물론 군함과 물놀이를 위한 유람선도 있었습니다. 특히 중국 배들은 갖가지 물품을 가지고 와서 팔았으며, 또 그만큼의 상품을 싣고 떠나기도 했습니다. 말하자면 당시 세계의 부가 이 도시로 모여들었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룬 알 라시드는 천일야화처럼 호화 생활을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시인이나 학자들을 후원해 바그다드 문화를 비약적으로 발전시켰습니다. 바그다드의 제지공장은 이 시기에 세워진 것입니다.
종이 제조 기술은 8세기 경 이집트에서 파피루스를 대체하고 사마르칸트 종이보다 더 좋은 품질로 생산됩니다. 그리고 10세기와 12세기 사이에 북아프리카 파티마 왕조의 치세 기간에 종이 제조가 발달합니다. 파티마 왕조는 튀니지에서 이집트, 팔레스타인, 그리고 시칠리아까지 영역을 지배하고 있었니다. 이때부터 이슬람권의 모든 공식 문서는 종이로 작성됩니다.
출처_국가기록유산
유럽에 열린 종이길
유럽에서는 중세의 교역을 주도하던 이탈리아의 상인들이 아랍의 종이를 수입해 유럽에 판매하여 훌륭한 수업원으로 삼았습니다. 그후 13세기 중반인 1276년에 이탈리아 중부 내륙의 파브리아노(Fabriano)라는 작은 마을에서 제지 공장이 세워진 기록이 있습니다. 아마도 베네치아와 피렌체에서도 종이가 생산되었겠지만, 기록이 전해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파브리아노가 유명한 것은 이곳에서 일어난 기술 혁신 때문입니다. 사람이나 가축의 힘을 이용하여 식물이나 넝마 조각 찧던 기존의 방식이 아니라 수력을 사용한 기술을 적용하여 수직으로 나무 망치가 내려 치도록 개발되었던 것입니다.
유럽에 전파된 종이 제작 기술은 프랑스 남부 에로(Hérault) 지역의 제지공장에서 한 노동자가 기계적 도구에 의한 의한 초지법을 발명하면서 제지공업으로 발전합니다. 독일에는 1336년 뉘른베르크(Nürnberg)에 처음으로 제지공장이 세워집니다. 1450년경 인쇄기가 발명되자 종이에 대한 수요가 크게 늘어났으며, 영국에는 1498년에 제지공장이 세워졌으며, 미국에는 1690년에 네덜란드인에 의하여 제지공장이 설립됩니다.
1798년에 프랑스의 니콜라스 루이스 로베르(N. L. Robert)가 최초의 초지기를 만듭니다. 움직이는 체 벨트를 이용해 틀 또는 형틀을 체 바닥과 함께 펄프 통에 담가 1번에 1장씩 종이를 떠냈습니다. 몇 년 후 헨리와 실리 푸어드리니어 형제가 로베르의 기계를 개량했으며, 1809년에 존 디킨슨이 최초의 원압제지기를 발명합니다. 19세기초에 이르러 나무와 다른 식물성 펄프가 종이제조를 위한 주요 섬유공급원으로 사용되면서 넝마를 대신하기 시작합니다.
급속하게 발달한 인쇄 기술과 설비가 빠르고 간편하게 인쇄할 수 있는 종이와 만나면서 유럽에서 전성기를 맞은 제지공장들의 성장은 르네상스와 유럽의 정치적, 종교적, 산업적 대혁명이라는 운명과 함께 합니다.
유럽에서 처음으로 제지공장이 세워진 이탈리아 내륙의 파브리아노. 출처_위키피디아
우리 민족에게 열린 종이길
우리 민족의 역사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종이는 4~5세기경 유물로 추정되는 평양시 청암동토성에서 출토된 마지(麻紙)와, 대성산성에서 발견된 불경(佛經)이 적혀진 종이입니다. 종이제작기술이 들어온 시기에 대해 3세기, 4~5세기, 6~7세기 세가지 학설이 있습니다. 가능성이 높은 학설은 4~5세기 무렵에 중국에 의한 불교의 전래(372년)무렵 불교의 포교를 위해 들어온 서적류와 더불어 종이 제작기술이 전해졌다는 주장입니다. 불교의 확산과 함께 불경의 대량출간 사업으로 제지술이 발전했을 것입니다.
353년 중국 동진(東晋)의 서예가인 왕희지(王徽之)가 쓴 난정집서(蘭亭集序)가 고구려 종이인 잠견지(蠶繭紙)에 쓰여졌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4세기 무렵 고구려 고분인 안악 3호분의 서쪽 측실 벽화에 신하가 보고를 하기 위해 종이로 된 문서를 들고 있는 그림이 그려져 있습니다. 중국의 제지술을 받아들이긴 했지만, 우리 민족은 발달된 종이 제작기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사실은 세계 최고(最古)의 목판인쇄물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과 고구려 승려인 담징(曇徵)은 610년 우리의 우수한 종이 제지술을 일본에 전해준 것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석가탑에서 발견된 무구정광대다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은 통일신라시대 경덕왕 10년(751년)에 간행된 불경으로,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목판인쇄물입니다. 이 다라니경은 한 장당 폭이 약 5.3cm인 종이 12장을 이어붙여 길이가 6m30cm에 달하며, 한 장당 39~63항으로 인쇄한 권자본(卷子本: 두루마리 형태)입니다. 또한 610년 고구려의 담징이 일본에 채색, 종이, 먹, 연자방아 등 만드는 방법을 전해주었다는 일본서기(日本書紀)의 기록이 있습니다. 이 시기에 중국에서는 맷돌 등을 이용하여 섬유를 잘게 갈아 종이를 만들었고, 담징이 함께 전했다고 하는 맷돌은 종이와 관련된 용구로 추측됩니다.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두루마리 형태의 목판 인쇄물, 출처_경향신문
중국에서 시작된 종이길이 사마르칸트와 이집트 북아프리카 그리고 이탈리아를 거쳐 유렵 전역으로 확산된 것입니다. 우리 민족에게 열린 종이길이 일본으로 이어졌습니다. 흥미롭게도 종이길은 문화, 상업, 지식의 중심부에서 발생하여 문화, 상업, 지식이 확산되고 이동하는 경로를 따라 새로운 종이길을 만들어졌다는 사실입니다.
사진 출처
▪ http://memorykorea.go.kr/webs/newweb/girok/girok2_01.jsp
▪ http://en.wikipedia.org/wiki/Harun_al-Rashid
▪ http://it.wikipedia.org/wiki/Fabriano
참고문헌
Biasi P. (1999). Le Papier: une aventure au quotidian, Gallimard.
국가기록유산 : http://memorykorea.go.kr/
문화재청 : http://www.cha.go.kr/
글 : 공병훈 박사
연세대학교 경제학과와 서강대 대학원 디지털미디어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서강대 언론문화연구소연구원으로 그리고 협성대학교 광고홍보학과와 상명대학교 역사콘텐츠 학과 겸임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연구 분야는 콘텐츠 산업 생태계와 비즈니스 그리고 창작과 생산 커뮤니티이다.
'다독다독, 다시보기 > 기획연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중세 수도원의 필경과 책 제작 과정 (0) | 2015.05.22 |
---|---|
필경 작업의 의한 중세 유럽의 성서 코덱스 출판 (4) | 2015.05.18 |
콘텐츠 작업을 위해 알아둘 저작권 내용들 2 (38) | 2015.04.22 |
'엠바고'로 뉴스 쓰나미 예고하다 (1) | 2015.04.21 |
콘텐츠 작업을 위해 알아둘 저작권 내용들 1 (43) | 2015.04.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