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바고'로 뉴스 쓰나미 예고하다

2015. 4. 21. 14:00다독다독, 다시보기/기획연재



갑자기 뜬 ‘엠바고’…어뷰징에도 등장


최근 갑작스럽게 인기 검색어로 떠오른 저널리즘 용어가 있습니다. 아마도 많은 분들이 ‘엠바고(embargo)’라는 말을 들어보셨을 겁니다. 고인이 된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으로부터 금품 수수 정황이 드러나고 있는 이완구 국무총리에 대한 경향신문의 보도 덕분에 요즘 회자되고 있지요. 각종 기사와 블로그에도 엠바고를 설명하는 글들이 넘쳐납니다. ‘어뷰징(abusing)’을 염두에 두고 말미에 엠바고란 단어를 반복적으로 집어넣은 기사도 눈에 보일 정도입니다. 


보도를 특정 시점까지 미룬다는 뜻…의무 준수사항은 아냐


엠바고는 일종의 ‘보도시점 제한’이나 ‘보도유예’를 뜻합니다. 쉽게 말해 ‘보도 미루기’입니다. 기자들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취재원이 특정 시점까지 해당 사안에 대한 보도 자제를 기자나 언론사에 요청하는 것이죠. 물론 취재원의 엠바고 요청에 언론사가 무조건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신문윤리실천요강」 6조에 보면 엠바고가 공익이 아닌 개인과 조직의 이해관계를 관철시킬 의도로 사용될 경우 기자의 ‘합리적 판단’에 따라 거부할 수 있습니다. 엠바고는 과학보도에서 자주 사용되는 만큼 또 파기되기도 합니다. 10년 전 황우석 박사가 체세포를 통한 인간배아 줄기세포 복제에 성공했다는 보도도 엠바고 파기를 둘러싸고 말이 많았던 사례였죠.


파기 때 기자실 출입 제한 등 제재…보도통제로 남용 가능


엠바고를 파기한 기자에게는 모종의 ‘벌칙’이 부과됩니다. 한마디로 취재현장에서 ‘배제’되는 것이죠. 기자들이 정보를 얻기 위해 정기적으로 드나드는 곳(청와대, 정당, 검찰, 경찰 등)을 ‘출입처’라고 하는데요, 여기엔 ‘기자실’이 있습니다. 여러 언론사의 기자들이 모여 기사를 쓰고 해당 출입처 관계자와 접촉도 하며 보도 자료를 받을 수 있는 공동 사무실입니다. 그런데 어떤 기자가 출입처에서 엠바고를 요구한 사안에 대해 먼저 기사를 쓰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우선 출입처에 ‘협조’를 안 한 대가로 보도자료 배포가 중단됩니다. 기자실 출입이 제한되기도 하고요. 또한 출입처 기자들의 모임인 ‘기자단’에서 해당 기자의 출입을 막기도 합니다. 일정 시점까지는 보도를 미루기로 기자단에서 합의했는데 자기만 앞서 가려고 ‘부정출발’을 한 셈이니 ‘자체 징계’를 하는 거죠. 그래서 종종 엠바고를 두고 언론의 고삐를 죄는 ‘보도통제’가 아니냐는 비판이 쏟아지기도 합니다. 


백지상태의 ‘디지털 초판’을 통해 기사 예고


경향신문의 엠바고는 특이한 점이 있습니다. 엠바고는 보통 취재원과 언론사 사이에 보도를 유예하는 것이므로 그 사정을 굳이 밖으로 드러낼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경향신문은 때가 되면 보도할 뉴스가 있으니까 조금만 기다리라며 엠바고를 대외적으로 표명했습니다. 바로 PDF형태의 ‘디지털 초판’을 통해서입니다. 뉴스를 포털에서 무료로 이용하는 대부분의 독자들에게는 생소하겠지만 디지털 초판이라는 게 있습니다. 2000년대 초반까지 중앙일간지들은 종이로 ‘가판신문’을 찍어냈습니다. 발행일자는 내일이지만 발행일 전날 저녁 즈음에 취합된 소식을 가지고 처음 인쇄한 신문이기 때문에 아직 덜 완성된 ‘초벌신문’입니다. 그래서 초판이라고 하죠. (종이신문은 초판을 찍은 후 다음 날의 지방판과 서울지역 가정배달용 최종판을 제작·배송하기 위해 새벽까지 들어온 새로운 뉴스로 수차례 제작을 거듭하게 됩니다.)


출처_아시아경제


종이신문처럼 뉴스 가치를 한눈에 ‘쫙’ 확인


인터넷을 통한 뉴스소비가 증가하면서 2000년 중반부터 가판 제작은 중단됐습니다. 대신 언론사들은 초판 종이신문과 동일하게 PDF 파일을 만들어 발행일 전날부터 유료로 제공하기 시작했죠. 이제는 발행되지 않는 종이신문의 초판을 인터넷으로 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항상 업데이트를 하는 온라인에서는 뉴스가 시시각각 변해 그 중요도를 체감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디지털 초판은 종이신문처럼 신문 전체의 구성과 기사 배치가 한 눈에 들어옵니다. 그만큼 중요한 뉴스를 가늠하는 데 효과적입니다. 경향신문이 이완구 총리에 관한 의혹을 보도하겠다고 백지상태의 지면으로 ‘예고’한 것은 바로 4월 14일 저녁에 만든 15일자 디지털 초판에서였습니다. 1~5면까지 기사는 없었고 “해당 면은 서비스되지 않습니다”란 문구만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발행일 전날에 사건 연루자와 독자를 향해 ‘개봉박두’ 신호를 보낸 겁니다. 


경쟁사 ‘물 타기’ 막고 뉴스 효과 높이는 ‘온‧오프 양면전략’


그렇다면 경향신문은 왜 엠바고를 알려야 했을까요? 추측컨대, 경향신문의 엠바고는 종이신문의 제작 관행을 온라인 뉴스시대에 적절히 활용한 전략으로 보입니다. 종이신문만 있던 시절, 초판과 최종판(가정 배달판)은 다른 경우가 많았습니다. 밤새 새로운 뉴스가 들어온 탓도 있었지만 중요한 뉴스를 쟁여놓고 마지막에 터뜨리는 건 당시의 관행이었습니다. 초판부터 내놓으면 경쟁사가 따라오게 되고 처음엔 단독보도였지만 나중엔 ‘김빠진 맥주’가 돼서 여론을 강하게 환기시킬 수 없습니다. 이것이 종이신문 시절 신문사들이 파괴력이 큰 뉴스일수록 보도시한을 가급적 최종판으로 늦추는 이유였습니다. 더구나 타사 보도에 손 쉽게 ‘물 타기’를 할 수 있는 인터넷에서라면 더더욱 특종이라는 ‘꽃놀이패’를 성급하게 사용하면 안 됩니다. 사람들이 24시간 미디어에 노출돼 있지만 집중적인 주목을 받는 시간대는 따로 있을 겁니다. 속보 경쟁을 할 이유가 없는 뉴스라면 사람들이 활동을 시작하고 조간신문이 배포되는 오전에 공개하는 게 유리합니다. 그러기 위해 먼저 전날 디지털 초판에서 자신에게 ‘비장의 무기’가 있음을 공표한 후 이튿날 아침에 종이신문과 인터넷을 통해 뉴스를 전송하는 게 보다 효과적인 전략이 아니었을까요?



사진출처_전자신문



입단속에 대장 관리까지 보안 유지 철저했을 듯


예상컨대 4월 14일 경향신문 편집국엔 어떤 긴장감이 돌았을 겁니다. 취재기자나 편집기자에 대한 입단속과 보안유지도 있었을 것이고요. 모르긴 해도 ‘신문 대장’(수정을 위해 컴퓨터로 편집한 신문지면을 A3 또는 A2 용지에다 출력한 것) 관리에도 신경을 쓰지 않았을까 싶네요. 간혹 대장이 외부로 반출돼 문제가 되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앞으로는 경향신문이 이번과 같은 엠바고를 또 선언할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 다독다독

참고자료

신문 디지털 초판 수입 최대 연 12억원 (2014.10.22.) 

(http://www.journalist.or.kr/news/article.html?no=34734) 

강준만 (2009). 『대중매체 법과 윤리』 (개정판). 서울: 인물과사상사.

Daniel Chandler and Rod Munday (2011). Oxford dictionary of media and communication. Oxford University Press.

Barbie Zelizer and Stuart Allan (2010). Keywords in news and journalism studies. Open University Press.


글: 김건우 (서강대학교 언론문화연구소 연구원)

서강대학교 철학과와 서강대 대학원에서 신문방송학과 박사를 수료했으며 현재 서강대 언론문화연구소 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