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기 유럽에서의 인쇄와 출판의 비약적 발전

2015. 5. 29. 14:00다독다독, 다시보기/기획연재




동양과 서양에서의 15세기


이성계의 아들 이방원(李芳遠)이 왕자의 난을 통해 왕도정치를 꿈꾸던 정도전(鄭道傳)을 죽이고 즉위하면서 조선의 15세기가 시작됩니다. 그리고 조선은 세조, 세종, 성종에 이르는 절정기를 맞이합니다. 오스만 제국의 술탄 메흐메트 2세는 포신 길이가 8미터가 넘고, 돌 포탄의 무게는 600kg가 넘는 우르반(Urban)의 대포를 개발하여 군대 8만여 명과 함께 콘스탄티노플을 공격합니다. 비잔티움 제국(동로마 제국)의 최후 황제 콘스탄티노스 11세는 예복을 벗고 육박전에 뛰어들어 장렬히 전사합니다. 유럽의 15세기는 콘스탄티노플 함락에 대한 충격과 공포로부터 시작됩니다.


동로마제국의 멸망은 유럽과 중동, 아시아와 중국 그리고 조선으로 이어진 육지와 바다의 비단길(Silk Road)이 막힌 것을 뜻합니다. 이슬람 세력이 지중해와 중동지역을 지배하면서 유럽은 아시아와 교역하기 위한 새로운 방법을 개발하기 시작합니다.  상황에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는 에스파냐 왕국의 군주인 카스티야의 이사벨 1세와 아라곤의 페르난도 2세의 지원을 받아 아시아를 찾으러 서쪽으로 떠나 아메리카를 발견합니다. 유럽의 배들이 세계를 돌아다니며 항로를 개척하고 탐험과 무역을 하는 대항해시대(大航海時代)가 시작됩니다. 


잔 다르크의 오를레앙 포위전을 그린 Jules Eugène Lenepveu의 작품. 1886~1890. 출처 :위키피디아


프랑스 동부 지역에서 농부의 딸로 태어난 잔 다르크(Jeanne d'Arc)는 프랑스를 구하라는 하느님의 계시를 받아 백년 전쟁에 참전하여 프랑스군을 승리로 이끕니다. 러시아의 이반 3세는 "우리는 더 이상 칸의 신하가 아니다!"라고 외치며 킵차크 칸국을 격퇴시키고 나중에 러시아 제국이 되는 모스크바 대공국의 기초를 닦습니다.


15세기 대항해시대 아메리카와 아프리카, 아시아에 대한 항로의 개발. 출처: 위키피디아


독일


연구자들은 인쇄술이 발명되기 전 유럽에 수천 권의 필사본들이 출판되었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하지만 인쇄술이 발명되고 난 후 불과 50년이 지난 1500년경에 이미 900만 권이 넘는 책들이 출판됩니다. 구텐베르크가 개발한 인쇄기가 출판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1550년경 인쇄기와 기술이 자리잡히면서 인쇄업자들이 책 출판 활동을 주도하여 활자 주조(鑄造), 편집, 출판, 판매 활동까지 겸합니다.


구텐베르크가 활동하던 지역이 독일 마인츠(Mainz)였기 때문에도 인쇄 기술의 발전은 독일의 덕을 크게 봅니다. 따라서 당시에는 인쇄를 “독일의 예술”이라고까지 불렸습니다. 마인츠는 로마시대에 개발된 라인강 주변의 상업 도시입니다. 16세기초 독일이 종교개혁의 중심지로 떠오른 것도 발달된 독일 인쇄술과 관련됩니다. 인쇄기술은 독일 상인들의 교역로를 따라 널리 확산되어 1464년에는 마찬가지로 로마시대에서부터 상업 도시로 발달된 라인강 주변의 쾰른(Cologne)이 인쇄 중심지로 떠오릅니다. 한편 남부지역에서는 바젤, 뉘른베르크, 아우크스부르크 등 거대한 교역 중심도시들이 인쇄 중심지로 자리잡기 시작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출판업의 선두자리를 차지한 뉘른베르크(Nuremberg)에서는 안톤 코베르거(Anton Koberger)라는 출판업자는 24대의 인쇄기를 보유하고 바젤, 스트라스부르크, 리옹, 파리 등 다른 많은 도시들에 지사를 두고 국제적으로 출판 활동을 했습니다. 세계 최초의 대기업 규모의 국제적인 출판 활동을 한 인물인 셈입니다. 15세기 말 베스트셀러인 『뉘른베르크 연대기』(Nuremberg Chronicle)도 안톤 코베르거가 펴낸 책입니다. 창조의 순간부터 1490년까지 역사를 담은 이 책은 세계사 그림책입니다. 이 책에는 유명한 화가이자 일러스트레이션의 선구자로 꼽히는 알브레흐트 뒤러(Albrecht Dürer)의 판화 등 645점의 목판화가 들어가 있습니다.


『뉘른베르크 연대기』의 코스탄티노플에 대한 설명 페이지. 출처 :위키피디아


『뉘른베르크 연대기』의 천지창조 네번째 날의 묘사 일러스트. 출처 :위키피디아


알브레흐트 뒤러(Albrecht Dürer) 의 자화상. 1493년 작품. 출처 :위키피디아


이탈리아


독일의 인쇄 기술의 발달이 마틴 루터(Martin Luther)의 종교개혁과 관련된다면 이탈리아의 인쇄 기술의 확산과 출판 활동은 이탈리아 르네상스와 관련됩니다. 구텐베르크 인쇄기는 1462년경 독일과 유대 관계를 맺고 있던 로마 근교의 베네딕토회(Benedictine Order)의 수도원을 통해 이탈리아에 전해집니다. 베네딕토회는 535∼540년경 성 베네딕토(Saint Benedict)가 만들었는데 이탈리아와 갈리아 지방에 확산되어 노동과 기도를 통하여 복음에 바탕을 둔 자기 향상에 매진하는 모임으로서 교육•학문•선교•교구 활동 등에 종사하였습니다. 역사적으로 많은 선교사를 배출, 서유럽의 그리스도교 확산에 큰 역할을 하였으며 특히 학문을 존중하여 문헌 보존과 사본 제작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독일처럼 이탈리아에서도 거대한 상업 도시를 중심으로 인쇄와 출판이 발달합니다.1500년경 베네치아에는 150대나 되는 인쇄기가 있었으며, 니콜라스 젠슨(Nicolas Jenson)과 알도 마누치오(Paolo Manuzio)라는 각각 15세기와 16세기에 걸쳐 출현한 2명의 인쇄업자가 서적 출판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전해집니다. 젠손은 뛰어난 인쇄기술자로 1470년 로마체(Roman type) 활자를 완성시킨 사람입니다. 그는 동전 조각가인 프랑스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독일에서 구텐베르크의 제자로서 인쇄술을 익혔지만 베네티아에 인쇄소를 설립하여 고전 베네치아체로 알려진 읽기 쉬운 서체를 개발했는데 현재까지 어도비(Adobe)사의 젠슨체로 전해지고 있으며 분류하자면 세리프(serif)체에 속합니다. 세리프는 타이포그래피에서 글자와 기호를 이루는 획의 일부 끝이 돌출된 형태로서 한글에서의 명조체는 세리프체에 속합니다. 세리프가 없는 글꼴은 산세리프(sans-serif)체로서 이후 고딕체로 발달하여, 그후 세리프체는 책과 신문과 같은 전통적인 인쇄물에 널리 쓰입니다.


1471년 줄리어드 시이저에 관한 책의 일부. 젠슨이 개발한 로마체를 살펴볼 수 있다. 출처 :위키피디아


세리프체는 시각적으로 자연스럽고 편안한 느낌을 줍니다. 따라서 글자의 크기가 작더라도 독자들이 쉽게 판독할 수 있게 합니다. 획의 두께가 강하지 않아서 산세리프체보다 가독성이 높은 것입니다. 1465년에 개발된 글꼴로서 올드 스타일 세리프(old style serif)가 있습니다. 올드 세리프체는 사선이 강조되고 더불어 굵고 얇은 선들의 차이를 활용하여 최고의 가독성을 구현합니다.


프랑스


프랑스는 인쇄술이 전해지던 단계부터 발행인이 주도권을 행사하는 특성을 보여줍니다. 1470년 파리 소르본대학(Sorbonne)의 학장이자 도서관장이 대학 내에 인쇄기를 설치하기 위해 3명의 독일 인쇄업자를 초빙하여 프랑스 인쇄가 시작됩니다. 교수들이 직접 출판할 책을 선정하고 인쇄 과정을 감독했습니다. 심지어는 사용할 활자체도 지정해주었습니다. 발행인들이 로마체를 매우 선호하여 고딕체는 결국 밀려나게 됩니다. 파리 다음 가는 인쇄 중심지로는 리옹(Lyon)을 꼽을 수 있습니다. 로마 가톨릭 신학자들이 주도하던 파리에서와는 달리 리옹에서는 인문주의와 신교에 관련된 책들이 보다 자유롭게 출판되었습니다. 그러나 1600년경 종교 탄압과 함께 파리의 출판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리옹의 출판업은 종말을 맞고, 그후 프랑스의 출판활동은 파리를 중심으로 이루어집니다.


네덜란드와 헝거리 등


독일의 인쇄술이 유럽의 다른 국가들에 빠르게 전파되어 네덜란드의 위트레흐트(1470), 헝가리의 부다페스트(1473), 폴란드의 크라쿠프(1474), 스페인의 발렌시아(1473) 등의 도시들이 인쇄 중심지로 성장합니다. 특히 스페인의 책들은 대부분이 고딕체로 인쇄되어 나름대로 독창성과 품위가 있었습니다. 이 시대의 대표적인 출판물로는 옆 단에 여러 언어로 쓰인 대역성서가 있습니다.


영국


영국은 유럽 대륙에 비해 다소 늦은 1476년 인쇄 기술이 도입됩니다. 영국에 인쇄술을 도입한 사람은 영국인 윌리엄 캑스턴(William Caxton)입니다. 1438년에 그는 직물상 로버트 라지의 도제가 되었다가 양모 교역 중심지 브뤼주로 이주하여 플랑드르와 네덜란드에서 영국 무역계의 영향력 상인이 되어 ‘영국인모험상인연합의 총재’직을 맡기도 합니다. 그는 1471~72년에 쾰른에서 인쇄술을 배운 후 1474년경 벨기에의 브뤼즈에서 인쇄소를 경영하기 시작하여 오랫동안 그곳에서 인쇄업에 종사합니다. 


윌리엄 캑스턴(William Caxton)이 에드워드4세에게 인쇄의 첫번째 견본을 보여주는 그림. 다니엘 맥클리스(Daniel Maclise)의 1851년 작품.


50세가 넘어 영국으로 돌아온 그는 리처드 3세와 헨리 7세의 적극적인 후원을 받아 출판업을 부흥시킵니다. 그는 처음부터 라틴어가 아닌 영어로 서적을 출판하여 아직 정형화되지 않았던 영어를 공식적인 언어로 정착시키는 데 커다란 기여를 합니다. 그가 인쇄한 90여 권의 책 가운데 74권이 영어로 출판되었고 그중 22편은 직접 번역했습니다.

 

그림 출처

▪ http://en.wikipedia.org/wiki/Age_of_Discovery

▪ http://en.wikipedia.org/wiki/Nuremberg_Chronicle

▪ http://en.wikipedia.org/wiki/Joan_of_Arc

▪ http://en.wikipedia.org/wiki/Nicolas_Jenson

▪ http://en.wikipedia.org/wiki/William_Caxton

▪ http://en.wikipedia.org/wiki/Seri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