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 한 대에 울고, 담배 한 대에 웃고

2015. 6. 3. 14:00다독다독, 다시보기/지식창고


출처_1914.11.08-매일신보 4면


한복을 입은 여염집 여인이 길게 담배연기를 내뿜고 있는 조금 당황스럽기도 한 이 그림은 1914년 매일신보에 실린 전면담배광고입니다. 요즘은 모든 흡연자들이 눈치를 봐야 하는 시대지만, 여성흡연자들에 대한 시각은 더 곱지 않은 게 사실이죠. 그러나 100년 전엔 많이 달랐나봅니다. 비슷한 시기 중국이나 일본뿐만 아니라 서양에서도 담배광고엔 아름다운 여성들이 많이 등장했거든요.


출처_WOW한국경제TV- http://www.wowtv.co.kr/


담배를 약초라고 인식하던 세월도 오래되었고, 개항 이후 조선을 찾은 서양인들의 기록 중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담배를 피는 조선 사람들에 대한 글이 수두룩할 만큼 우리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담배를 참 많이도 피웠나봅니다. 그러다가 담뱃대로 피는 담배가 아닌 하얗고 고급스런 궐련이 생산되면서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공격적인 광고가 나오게 된 것입니다.

 

 

담배 한 대 때문에 이혼을 당한 첩

 

그러다보니 담배 때문에 일어나는 일도 참 많았죠1912년 매일신보엔 궐련담배 한 대 때문에 이혼을 하게 된 열아홉 살 첩의 이야기가 실렸습니다. 의주에서 마차영업을 하던 김씨는 한창 바쁜 와중에 궐련에 불을 붙여 달라는 19살 첩의 어리광에 화가 나서 책망을 했답니다.

너는 손이 없느냐! 손님이 많은 중에 이런 무례한 말을 하니 그것 참 배운데 없는 계집이로고.”

이에 분이 난 첩은 제 손으로 불을 붙인 궐련을 김씨 얼굴에 던졌고, 이에 김씨는

어구 뜨거워, 이것이 무슨 요망한 짓인냐. 당장 나가라.”고 화를 냈습니다.

그러자 첩은 훌쩍거리며 친정에 보내주기로 약속한 돈을 내놓으라고 하다가 서로 고양이처럼 싸우게 됐고, 이 싸움에 경찰까지 출동하고 둘은 결국 이혼을 하게 되었답니다. 궐련 한 대 피우려다 이혼까지 하게 된 열아홉 첩의 이야기는 모르긴 해도 한동안 수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을 것입니다.


출처_1912.03.12-매일신보 3면-궐련 한 대로 이혼을 해



담배 구름에 신선이 된 듯 (구름타고 가는 신선떼 같다)


1920428, 영친왕의 국혼으로 전국의 형무소에 수감되어 있던 5천여 명에 대한 감형과 천이삼백 명에 대한 출옥이 이루어졌습니다. 그중 서대문형무소에서만 278명이 감옥문을 나섰는데, 이들 대부분은 1년 전 있었던 31 만세운동에 참여한 사람들이었습니다정문 앞에는 전날부터 와서 기다리던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이들의 재회를 중계방송처럼 세심하게 보도한 기사가 430일 동아일보에 실렸습니다. 그런데 이 기사엔 유독 담배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집으로 향하며 애오개를 건너는데 방면자의 친척 한명이 담배를 한 대 꺼내 피우자 모든 사람들이 몰려들어 한있는궐련을 한없이달라고 강청하니 이를 보던 순사들조차 눈물을 뿌리며 가지고 있던 담배를 아끼지 않고 꺼내서 나누어주었답니다. 담배를 받아든 방면자들은 ! 담배를 줄였을 때는 한 개만 먹으면 죽어도 한이 없겠더니 한 대를 피우니 어머니 생각이 열배는 더 나네, 그려!”하며 눈물 젖은 담배연기를 내뿜었습니다.


수십 명이 일시에 내뿜는 담배연기로 이들의 행렬은 연기에 쌓여 가는 것 같았는데, 그 때 누군가가 소리쳤습니다. “이게 바로 구름타고 가는 신선같구나!!” 이 소리에 사람들은 박장대소를 하니 어제까지의 우수와 고민에 잠겨있던 옥중의 몸들은 사라지는 담배연기처럼 악몽에서 깨어나 기쁨을 참지 못했을 겁니다(출처:1920-04-30 동아일보 3-愛兒! 吾兄!)


시대를 함께 한 담배


1945년 광복을 맞아 승리가 출시되었습니다. 그러나, 쌀 한말에 45원이던 시절에 3원이나 하던 승리는 서민들에겐 그저 부러운 대상이었습니다. 1949년 국군창설 기념으로 출시된 화랑전우야 잘자라라는 노래에도 등장합니다.


우거진 수풀을 헤치면서 앞으로 앞으로

추풍령아 잘 있거라 우리는 돌진한다

달빛어린 고개에서 마지막 나누어 먹던

화랑담배 연기 속에 사라진 전우야


출처_cafe.naver.com/nuke928


1960년대엔 당시 정부시책을 반영한 새마을’, ‘새나라’, ‘희망’, ‘자유종’, ‘상록수등의 담배가 출시되었습니다. 1980년대엔 88서울올림픽을 앞두고 ‘88’이 출시되었고, ‘시리즈의 담배도 많은 인기를 누렸습니다.


출처_1987.04.20-경향신문 5면 - 새 담배 88 내일 시판


요즘은 애연가들조차 담배를 끊어야 하는데..”라고 습관처럼 말하고, 흡연권을 보장해 달라고 볼멘소리를 할 정도로 담배는 끊지도 못하겠고, 피기도 힘든 애물단지가 되어버렸습니다하지만, 오랜 세월을 서민들과 함께 한 담배에 담긴 숱한 이야기들은 우리의 삶과 함께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