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자가 이야기하는 허심(虛心)과 평심(平心)의 독서법

2015. 6. 12. 14:00다독다독, 다시보기/지식창고



디지털 시대 특징 중 하나는 넘쳐나는 정보입니다. 과다한 정보는 개인들의 상황판단을 일편 도와주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정보의 아노미현상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특히 소셜 미디어 등을 통한 단편적 정보는 현대인들에게 정보를 제공한다는 순기능을 뛰어 넘어 불안과 공포의 역기능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이럴 때 일수록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perspective)이 올바르게 형성되어 있어야, 단편적인 정보에 휘둘리지 않고, ‘있는 그 대로’의 사물을 바라 볼 수 있게 됩니다. 정보의 아노미 현상과 올바른 관점 형성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은 독서입니다. 독서는 단편적인 정보의 차원을 넘어서 지식과 사상, 나아가 지혜를 전달해 주는 긴요한 인간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마음을 치유하는 독서 자세?


복잡계라고 불리는 디지털 세상 속에서 현대인은 육체적으로 각종 바이러스에 노출되어 있을 뿐 아니라 가까운 지인들에게 조차 말할 수 없는 마음의 상처들을 안고 외롭게 살아갑니다. 이러한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 ‘힐링 캠프’, ‘미술치유’, ‘음악치료’ 방법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여기에 독서를 통한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방법으로는 ‘독서 치유’, ‘힐링 독서’ 등이 있습니다. 지방자치 단체, 공공기관이 주축이 되어 이러한 일들을 하고 있는데, 이들의 목적은 자기통찰과 자기이해 증진, 자존감, 인간관계, 가족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힐링 독서가 되기 위해서는 무작정 책을 읽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책을 읽는 방법이 있을 뿐 아니라 책 읽는 자세가 있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우리나라 조선시대 선비들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주자(주희)는 책을 어떠한 자세로 읽어야 한다고 주장했을까요?




주자가 말하는 독서 자세


주자(朱子)는 1130년 중국 송나라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이름은 희(熹)이고, 별칭으로는 주로 자(子), 원회(元晦) 등이 있으나, 우리에게는 주자라는 별칭이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사상의 핵심은 공자와 맹자 등의 사상을 이어받으면서도 자신의 독특한 체계를 형성하였다는 점입니다.


당시 사람들이 책을 소홀히 읽는 이유가 “인쇄된 책이 많기 때문이다”라고 말한 점을 보건대, 오늘날 모바일이나 디지털 매체를 통해 다양한 정보가 쏟아져 나와, 책을 읽지 않는 환경과 유사해 보이기도 합니다. 또한 손안의 모바일을 통해 문자를 ‘독서’한다기 보다는 ‘보기’에 가까운 오늘날 환경과도 기저적으로 일치합니다. ‘보기’에 가까운 독서는 찰나적이 되기 쉽고, 휘발성이 강한 성질을 갖고 있습니다. 즉 목적 달성이 끝나는 순간 독서에 대한 기억들은 뇌의 저편에서 사라지기 쉽습니다. 그래서 주자는 올바른 독서를 위한 자세로 다음과 같은 것을 주문하고 있습니다.


주자(朱子)


책 속의 내용을 온전하게 체득하는, 허심(虛心)


요즘은 독서를 위한 준비 보다 목적이 차지하는 비중이 독서를 압도합니다. 그저 빨리 읽고 정보를 캐치해 내야 하죠. 하지만 주자는 독서하기 전에 마음가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주자는 독서 준비에서 가장 중요시 하는 것은 ‘마음을 비우는 것’입니다. 주자가 올바른 독서를 위해서는 먼저 개인의 마음을 다스린 후 독서를 행하도록 하는 것은 당시 책에 대한 권위와 경외심의 전통에 기인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책 속의 내용을 온전하게 독자가 체득하기 위한 전제 조건이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됩니다. 주자는 ‘마음을 비우는 것’ 즉 허심(虛心)에 관해 자주 반복하는데, 이는 다음의 글들에서 잘 나타나 있습니다.  


“지금 사람들은 문장을 살필 때 대부분 어둡고 게으르기 때문에 자세하게 살피지 못한다. 그러므로 배우는 사람이 우선 고요한 곳에서 생각을 거두어 자신에게 간직한 뒤에, 마음을 텅 비우고 문장을 살핀다면 그 의리가 분명하지 않을 수 없다.”(여정덕/허탁,이요성,이승준 역주, 『주자어류3』, 수원:청계,2001)


마음을 텅 비워야 한다는 것은 자신의 선입견이나 기존의 지식을 버리고, 온전히 책 속의 내용을 받아 들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대부분 비판적인 독서의 방법으로 자신의 주관적인 지식이나 판단의 기준으로 책 속의 의미를 찾는데 익숙해 져 있으며, 그러한 방법으로 독서할 것을 강요받기도 합니다. 하지만 주자에게 있어서, 적어도 고전을 읽을 때만큼은, 자신의 주관성을 배제하고 저자의 말에 자신을 몰입시키는 것이 가장 좋은 독서의 방법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마음을 깨끗하게 가라 앉히는, 평심(平心)


주자는 독서의 자세로 마음을 텅 비워야 할 뿐 아니라 마음 자체가 평안하여야 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책을 읽기 위해서는 고요한 물과 밝은 거울처럼 마음을 깨끗하게 가라 앉혀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안정되지 않기 때문에 이치를 깨달을 수 없다. 지금 책을 읽으려고 한다면, 먼저 그 마음을 안정시켜서 고요한 물과 밝은 거울처럼 만들어야 한다. 어두운 거울이 어떻게 외물을 비추겠는가!”(여정덕/허탁,이요성,이승준 역주, 『주자어류3』, 수원:청계,2001)


오늘날 우리는 세상의 빠른 정보 흐름 만큼이나 바쁜 독서를 강요당하고 있습니다. 독서를 통해 정신적인 고양이나 즐거움을 찾기 보다는 생활의 편리함, 유용성 등에 의해 독서를 하는 경향이 많아진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독서를 할 때에도 마음의 여유 보다는 무엇인가에 쫒기는 독서를 하게 됩니다. 마음이 차분해 지고, 가벼워지는 ‘힐링’ 독서가 아니라 무겁고 복잡한 ‘아픔’의 독서가 되버리기 도 합니다.


주자는 이러한‘아픔’의 독서는 진정한 독서가 아니라고 봅니다. 그에 의하면 독서를 할 때에는 마음을 비워야 함은 물론이려니와 마음 자체가 흔들려서는 아니 됩니다. 마음이 명경수와 같이 투명하고 고요할 때, 책 속의 의미와 가치는 온전히 독자의 마음속과 머리속에 체인되는 것입니다. 


현대인의 분주한 삶 속에서 주자의 독서 자세가 주는 의미는 다소 공허할 수도 있습니다. 현대인은 전철안과 복잡한 도시의 거리 등에서 독서할 수밖에 없는 환경 속에 놓인 존재들입니다. 그러다보니 마음의 안정을 애써 찾아야만 하고, 부단한 자기절제와 노력이 있어야만 마음의 안정을 유지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어쩌면 고행과 수행의 종교적 절차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주자에 의하면, 적어도 고전을 읽을 때는 허심과 평심의 자세를 가지고 읽으라고 주문하고 있습니다. 바로 힐링을 위한 독서인 셈입니다. 독서는 일종의 수행과정으로 이를 통해 마음의 평온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죠.


무더운 여름날, 모바일과 인터넷 속에서 단편적이고 일회적인 정보위주의 독서에서 벗어나, 허심과 평심을 가지고 고전 한 편을 천천히 읽으면서 마음을 다스리는 힐링은 어떨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