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탕국에서 에스프레소까지, 커피 탐닉

2015. 6. 15. 09:00다독다독, 다시보기/지식창고


커피 한 잔 하실래요?

마음에 두고 있는 상대에게 처음 건네는 이 한마디는 설렘입니다. 지친 업무 중에 동료의 이 한마디는 잠깐의 휴식이 되고, 첫 인사와 함께 듣게 되는 이 한마디는 환영의 의미가 되기도 합니다. 이젠 너무 대중적인 커피가 우리와 이렇게 가까워진 시기는 언제부터일까요?


조선의 최신 유행품, 커피 


고종이 벙커부인에게 하사한 도금은제 커피잔 / 고종 / 퍼시벌 로웰 ‘조선, 고요한 아침의 나라’ 1885년


우리나라에서 커피를 마신 기록은 1880년대부터 나타나지만, 유입된 시기는 그 이전일 수도 있답니다. 커피가 전해진 후 고종뿐만 아니라, 고관대작들도 커피를 즐겨 마셨습니다. 1883년 12월 조선에 왔던 미국의 천문학자 로웰(Lowell)은 <조선, 고요한 아침의 나라>를 통해 1884년 1월 어느 날 고위관리의 초대를 받아 한강의 정취를 즐기며 ‘당시 조선의 최신 유행품’이었던 커피를 마셨답니다. 


손탁호텔에서 가배 한 잔을


커피차를 판매한 시기도 이 시기입니다. 아펜젤러는 인천에 세워진 최초의 호텔인 대불호텔에서 1888년 커피가 일반인에게 판매되었다고 했습니다. 1902년 정동에 세워진 손탁호텔에서도 커피를 팔았는데, 물론 이런 호텔에서 커피를 사서 마실 수 있는 사람들은 극소수의 일부계층이었겠죠. 


손탁호텔 전경과 내부 식당_ 그 시기 사람들은 서양에서 들어온 커피를 ‘양탕(洋湯)국’이라고 하거나, ‘가배(咖啡)’라고 불렀습니다.

문화인이라면... 커피


1920년대가 되면서 커피는 대중화되기 시작합니다. 신문에서는 커피를 맛있게 끓이는 방법을 소개하기도 하고, 커피보다는 잡곡밥 숭늉이 더 낫다는 기사도 있으니 커피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흰쌀에 팥이나 콩을 섞어 먹는 것이 위생에나 경제에나 제일 마땅할 줄 생각합니다. 더구나 그 팥밥이나 콩밥의 숭늉이란 것은 ‘커피’차 이상이외다.” (1923.01.01. 동아일보 11면 - 요리에 대한 관념부터)


1926.12.22-중외일보 3면 - 맛 좋은 차 끓이는 법 / 1932.12.27.-동아일보 5면-커피, 코코아, 홍차 사는 법과 택하는 법


맛있는 커피를 끓이는 방법도 알려주는데, 요즘과 많이 다르네요.

커피향을 잃지 않게 끓이기 위해 알미늄주전자에 물을 끓이다가 커피를 넣은 후, 커피가 둥둥 떠오르도록 30분이나 끓여야 한다고 알려줍니다. 그리고, 맛있는 커피를 끓이려는 현대여성은 무엇보다도 커피원두를 잘 골라 사야 한다는 것과 좋은 원두 고르는 법도 일러줬습니다.


1930년대엔 커피 중엔 남미의 모카커피가 제일 좋다거나, 커피얼룩을 빼려면 초산을 물에 타서 빨면 된다든지, 커피를 많이 마시면 신경쇠약에 걸릴 수도 있다는 정보기사도 나옵니다. 경성제대 강사였던 최재서는 “오늘도 4시에 차를 마시러 나가다. 때만 되면 잊지 않고 부르는 커피의 매력이여!”라며 커피 예찬을 하기도 했습니다.


커피병 환자


요즘도 한잔에 보통 4000원 정도씩 하는 커피 값은 정말 부담스럽죠. 그런데, 비싼 커피 값은 예전에도 문제였나 봅니다. 커피 값을 40전이나 받은 다방주인이 경찰서에 붙잡혀가서 엄중히 취조를 받기도 했다네요.


(1940.06.08.-동아일보 3면-커피 한잔 40전) / (1950.05.18.-경향신문 2면-커피병환자)


그런가하면, 커피문화를 꼬집는 글들도 있습니다. 하루에 기백원을 쓰며, 커피 석잔 씩은 마시면서도 친구가 고생하며 출판한 책 한권은 증정만 바란다는 기고글이 있는데, 책 안사는 요즘시대에도 매우 뜨끔거리는 얘기죠. (1950.04.08.-경향신문 2면-저술과 증정(하)) 

또한, 체부동에 사는 P씨는 다방홍수시대를 비판하며, 일은 안하고 하루 종일 다방에 벽화처럼 앉아있는 사람들을 해방 이후 별안간 문명인이 된 커피병환자라고 비꼬기도 했습니다.


다방? 우린 커피전문점!


체부동의 P씨가 1950년대를 다방홍수시대라고 했지만, 진짜 다방전성시대는 1960년대였죠. 한국전쟁시기 미군들이 들여온 인스턴트커피가 대중화되면서 황금비율의 다방커피가 맛을 겨루며 손님을 끌었고, 맵시나게 한복을 입은 마담과의 친분은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도 했구요. 


출처_문화재청 블로그


요즘은 프렌차이즈 커피전문점들이 성황을 이루면서 좋은 품질의 에스프레소 커피와 셀프서비스. 테이크아웃이라는 새로운 문화를 누리고 있죠. 커피에 대한 글을 쓰다 보니 저도 향긋한 커피 생각이 나네요. 저와 커피 한 잔 하실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