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6. 12. 09:00ㆍ다독다독, 다시보기/지식창고
*위 내용은 한국언론진흥재단 <신문과 방송 2014년 7월호>에 실린 한국외국어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강사 / 심영섭님의 글을 옮겨온 것입니다.
정치경제학자 엘마 알트파터(Elmar Altvater)는 새로운 기술의 시장 안착을 가늠할 수 있는 조건으로 적절한 인구(수천만 정도), 발달한 도시와 교통체계, 정책의 안정성, 두터운 중산층을 꼽았습니다. 이때 중산층은 소득수준과 소비수준이 균형을 이뤄야 합니다. 한국은 정책의 불안정성과 엷은 중산층으로 인해서 이 조건에 정확히 맞는 국가는 아니지만, 새로운 매체기술의 성공적인 도입을 위한 시장 실험대상으로는 가장 적합한 대상의 하나입니다.
게르만족 밀어낸 훈족처럼
19세기 말 영화가 등장하여 영상매체 시대를 연 이후 라디오가 영화를, 텔레비전이 라디오를, 다시 케이블 텔레비전이 지상파 텔레비전을 주도적인 매체의 지위에서 밀어내는데 걸린 기간은 대략 30년입니다. 그러나 디지털 매체의 등장 이후 새로운 물결이 주도 매체를 밀어내는 시기는 더 짧아졌습니다. 길게는 10년 짧게는 수년 만에 시장을 선도하는 매체가 달라집니다.
2002년 5월 무료신문 메트로가 창간되면서, 절정기였던 2008년까지 10여 종 이상의 무료신문이 등장했습니다. 종합 일간신문이었던 메트로와 포커스, AM7, 시티, 노컷뉴스에서부터 스포츠일간, 경제일간, 남성주간지, 지역일간에 이르기까지 무료신문은 인쇄매체의 거의 모든 영역에 걸쳐 발행됐습니다. 그러나 2008년 이후 신문산업 전체의 위기와 더불어 무료신문은 하나 둘씩 자취를 감추고 있습니다. 2013년에는 AM7과 시티가 휴간했고, 2014년 4월 말에는 메트로와 함께 발행부수 30만 부의 업계 1, 2위를 다투던 포커스마저 휴간에 들어갔습니다. 이제는 메트로와 데일리노컷뉴스가 무료신문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출처_메트로홈페이지(http://www.metroseoul.co.kr)
무료신문은 2002년 등장 이후 유료로 공급되는 종합일간신문을 속보경쟁 시장에서 밀어내고, 스포츠일간을 스포츠기사와 신문만화 시장에서 밀어냈습니다. 무료신문에 밀린 종합일간신문은 속보나 통신기사 위주의 편집에서 탈피하여 기획기사와 의견기사 중심으로 편집을 재편했고, 스포츠일간은 성인대상 주간신문과 성인잡지 시장을 잠식했습니다. 스포츠일간에 밀린 성인잡지는 다시 정치인을 비롯한 유명인의 사생활과 스캔들을 집중적으로 다루는 폭로성 인물기사(celebrity)에 집중했습니다. 가히 게르만족을 밀어내고 우크라이나평원을 점령한 훈족의 기세와 같았습니다. 그러나 무료일간은 단지 경쟁자를 시장의 중심에서 변방으로 밀어낸 것만은 아닙니다.
무료신문의 12년 명암
무료신문이 기존의 유료 신문독자 시장을 잠식했다는 비판도 많았지만, 대다수의 새로운 독자는 신문을 읽지 않던 20~30대였거나, 점차 포털사이트에 실리는 통신기사와 차이가 없는 유료신문을 떠났던 독자였습니다. 무료신문이 등장하기 이전에 20대 젊은 독자에게 신문 읽기는 입사 준비나 논술 대비를 위한 ‘고달픈 노동’의 하나였습니다. 그러나 단문과 라이프스타일 중심의 기사를 제공하는 무료신문은 신문 읽기를 ‘즐거운 일상’으로 바꾸어놓았습니다. 특히 유료신문의 주의주장과 은유가 포함된 뒤틀린 신문 문장은 독자에게 ‘까다로운 읽기’를 요구하지만, 무료 신문은 짧고 명료한 문장으로 신문 읽기를 ‘3분간의 여가’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스포츠와 여가, 여행 등 라이프스타일의 기사는 물론, 까다로운 시사정보와 사회적 이슈를 간단명료하게 요약함으로써 젊은 독자에게 ‘신문 읽기의 즐거움’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이를 위해 무료신문은 젊은 기자를 채용하여 젊은 독자에게 맞는 기사 유형과 글쓰기를 개발했습니다. 또한 기존의 대판 중심의 획일적인 신문 편집을 타블로이드형에 맞게 다양한 방식으로 실험했으며, 신문을 ‘읽는 매체’에서 디자인과 그래픽을 바탕으로 ‘보는 매체’로 한 단계 더 발전시켰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에는 신문기업의 ‘제 살 깎기’라는 어두운 측면도 있었습니다. 스칸디나비아에서 온 메트로를 제외한 나머지 무료신문이 대부분 기존의 신문기업에서 창간하거나 인수하여 운영한 것입니다. 또한 대다수 무료신문은 기존의 신문기업이 인쇄와 수송대행을 해주었습니다.
모바일로 옮겨간 젊은 독자들
한국에서 무료신문이 사라지는 원인은 경영수지 악화에 있습니다. AM7에 이어서 포커스까지 휴간에 돌입한 것은 부채 감소를 위해 발행부수를 축소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무료신문은 독자에게 무료로 제공하는 만큼 판매수익이 없고 모두 광고수입에 의존합니다. 그러나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독자들이 신문을 가져가지 않는 경우가 늘어나면서 광고비가 지속적으로 줄어들었습니다. 한때 전체 신문 광고 시장의 5~6%대를 차지하던 무료신문의 광고수익은 지속적으로 줄어들었고, 결과적으로 신문인쇄비와 가두 배포 및 거치대 운영에 필요한 유통비용을 감당할 수 없게 됐습니다. 또한 2000년대 후반부터 꾸준히 줄어들고 있는 신문 광고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러나 무료신문의 독자가 사라진 가장 큰 이유는 디지털 매체 환경 변화입니다. 젊은 층의 높은 모바일 기기를 이용한 신문기사 구독은 무료신문에는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출처_포커스홈페이지(http://www.fnn.kr/)
독자적 콘텐츠 있어야 산다
또 다른 이유의 하나는 처음부터 무료신문이 독자적인 정보를 생산하고 유료신문과는 구분되는 저널리즘적 독자성을 확보한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대부분의 경우에 통신사의 기사를 받거나 모회사의 콘텐츠 일부를 이용한 경우가 대다수였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디지털이라는 대안적인 정보 유통경로(플랫폼)와 종이신문과는 다른 통합적 단말기인 스마트폰이 등장하면서 길을 잃은 것입니다.
무료신문이 처음 등장했던 유럽에서는 아직도 무료신문이 대도시를 중심으로 지역에 특화된 정보를 제공하는 매체로 1~2개 정도가 남아 있습니다. 단지 명맥을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주요한 광고 매체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무료 일간신문이 없는 국가에서도 주간으로 발행되는 생활정보신문이 지역정보와 생활정보, 라이프스타일 중심의 신문을 발행하며 여전히 지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유럽에서 무료신문이 유지되는 가장 큰 이유는 무료신문이 유료신문과 달리 차별화된 지역정보와 생활정보를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일간신문이 인터넷을 통해서 신문기사를 무료로 제공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현재 발간 중인 무료신문과 휴간 중인 일부 무료신문이 온라인으로 전환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오프라인이 아닌 온라인판 전환은 ‘새로운 파도를 타는 시도’입니다. 그러나 반드시 온라인판이 대안일 수는 없습니다. 온라인뉴스 시장은 이미 포털이 선점하고 있고, 기존의 유료신문이 진출해 있기 때문에 무료신문이 독자적인 콘텐츠를 확보하여 차별적인 콘텐츠를 제공해야만 성공할 수 있습니다. 무료신문의 장점은20~30대 독자에게 호소할 수 있는 콘텐츠 기획력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2000년대 중반 무료신문에 열광하던 젊은 독자는 사라지고 없습니다. 이들은 이미 스마트폰을 통해 영상과 그래픽, 음향이 결합된 새로운 뉴스를 소비하고 있고, SNS를 통해서 실시간으로 퍼나르기와 댓글 달기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이렇게 생산된 콘텐츠는 인터넷과 모바일을 통해 다양하게 공급될 수 있어야 합니다. 종이신문은 유료냐 무료냐를 떠나서 모바일이라는 새로운 물결을 피해갈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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