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파 금요 드라마 등장으로 본 TV 편성 전략

2015. 7. 17. 09:00다독다독, 다시보기/지식창고



*위 내용은 한국언론진흥재단 <신문과 방송 2015년 7월호>에 실린 컬럼비아대 저널리즘 스쿨 박사과정/ 서수민님의 글을 옮겨온 것입니다.


방영 전부터 수많은 화제를 몰고 온 KBS ‘프로듀사’가 막을 내렸습니다. ‘어벤져스’급 제작진과 배우들뿐만 아니라, 예능국에서 드라마를 제작하는 최초의 시도이며 지상파에서 금토 저녁 시간대에 드라마를 내보내는 것도 처음이라 많은 관심의 눈이 쏠렸습니다. 드라마를 좋아하는 필자는 한동안 금토 저녁마다 행복한 고민에 빠졌었습니다. 어리버리하지만 여전히 매력 있는 백승찬을 볼 것인가 아니면 불혹을 넘긴 이 나이에도 심쿵하게 만드는 지은호와 은동이를 만날 것인가? 잘 알다시피 백승찬은 KBS ‘프로듀사’ 김수현의 극중 이름이며, 지은호와 지은동은 jtbc ‘사랑하는 은동아’의 두 주인공 이름입니다. 이제 ‘프로듀사’가 종영했으니 어느 것을 본방 사수하고 어느 것을 VOD로 볼 것인가를 고민하던 것에서 벗어났지만, ‘프로듀사’를 계기로 지상파방송의 변화하는 편성 전략에 대해서는 한번 정리를 해보고 싶었습니다. 왜냐하면 KBS에서 금토 저녁 시간대에 드라마를 선보인 것은 TV시장의 콘텐츠 경쟁이 그만큼 치열해졌다는 것뿐만 아니라 이후 지상파의 여타 프로그램 편성에 있어서도 적지 않은 영향력을 발휘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금요 드라마 선도한 tvN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지상파방송에서 금요일은 드라마 불모지였습니다. 월화수목 밤 10시대의 미니시리즈는 금요일 하루를 쉬고 토일 주말 연속극으로 이어졌습니다. 이러한 드라마 편성 전략은 소위 ‘불금’의 유행어에서도 알 수 있듯이 금요일엔 시청자를 TV 앞으로 불러 앉히기가 힘들다는 판단에서였습니다. 이러한 금요일 프로그램 편성 전략은 비단 드라마뿐 아니라 여타의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됐습니다. 그래서 금요일은 한때 ‘시청률의 불모지’라는 닉네임을 안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무주공산 금요일에 가장 먼저 눈을 돌린 곳은 비지상파 채널인 tvN이었습니다. ‘응답하라 1997(이후 응7)’의 후속편으로 나온 ‘응답하라 1994’를 금토 저녁 시간에 편성함으로써 당시 지상파에 밀리던 케이블 드라마의 틈새시장 편성 전략을 구사했습니다. 사실 2012년에 방영된 ‘응7’ 때만 하더라도 tvN은 지상파 드라마 시간이 끝난 화요일 저녁 11시 시간대에 2회 연속 방송으로 ‘응7’을 편성했습니다. 하지만 ‘응7’의 성공은 시청자의 향수와 추억을 자극하는 복고풍 예능형 드라마의 성공 가능성에 확신을 줬을 뿐 아니라 변화하는 시청자의 라이프 사이클까지 가세해 금요일 저녁 시간대를 과감히 선도적으로 공략해 볼 수 있게 했습니다. 주지하다시피 tvN은 지난 2014년 하반기, 드라마 ‘미생’과 예능 ‘꽃보다’ 시리즈로 금요일 저녁을 tvN의 시간으로 만들었습니다. 이후 케이블에서 촉발된 금토 드라마 열풍은 지상파와 종편에도 영향을 미쳐 jtbc의 ‘하녀’가 탄생했고, KBS의 ‘프로듀사’로 이어졌습니다. 이렇듯 비지상파에서 금토 드라마의 연이은 성공은 지상파의 금요일 저녁 시간대 프로그램에 대한 새로운 인식으로 이어졌고 적극적인 편성 전략을 구사하게 만들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편, 금요일 시간대가 시청률에 있어 중요한 지점으로 떠오른 것은 오랜 시간 지상파 채널과의 경쟁으로 밀리고 있던 케이블 채널이 참신한 기획으로 달라진 시청 풍토에 적극적으로 대응한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달라진 시청 형태는 주5일제와 모바일 미디어 환경으로 얘기될 수 있습니다. 주5일제 근무가 정착되면서 ‘불금’은 옛말이 됐고 사실상 ‘불목’으로 직장의 회식 문화가 재편되는 과정에서 금요일 저녁은 점차 시청자들이 가족 단위로 여유롭고 편안한 휴식을 취하면서 TV를 시청하는 경우가 늘어나 상대적으로 바쁜 주중보다 오히려 본방 사수의 기회가 늘어났다는 것입니다. 또한 젊은 층을 중심으로 한 1인 가구들도 금요일 저녁 시청의 중요한 집단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1 그래서 주중의 시청률보다 금요일 시청률이 증가하고 있는 추세입니다.


시청 행태와 관련한 변화 중 또 다른 하나는 모바일 시청입니다. 디지털 패러다임으로 얘기되는 미디어 환경 변화는 우리의 일상 곳곳에 침투하여 생활 패턴의 변화를 이끌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모바일은 바쁜 현대인의 일상에서 변화의 중심에 있습니다. 특히 주5일 근무로 더욱 바빠진 주중의 TV 시청은 방송국에서 정해준 시간보다 내 생활 패턴에 맞게 편한 시간에 몰아보기나 다시 보기의 적극적 시청 행태가 많은 반면, 상대적으로 여유로운 금요일 저녁은 방송국의 편성표대로 TV를 시청하는 ‘수동적 즐거움’의 기회가 더 많아졌다는 점입니다.


뜨거운 금요일 밤 시청률 경쟁


‘프로듀사’의 이러한 모험은 시청률 측면에서는 KBS가 여태껏 한 번도 달성하지 못한 금요일 두 자릿수 시청률을 달성했기 때문에 일단 성공적인 진입과 편성이었다 평가할 수 있지만, 이는 아직 절반의 성공이라 할 수 있으며 어쩌면 그 지속성에서 볼때는 안정적인 정착보다는 위태로움이 먼저 떠오르는 것은 단순한 기우만은 아닐 것입니다. 왜냐하면 KBS의 금토 드라마 편성 전략이 탄력을 받으려면 참신하고 획기적인 기획의 드라마가 지속적으로 나와야 하는데, ‘프로듀사’를 통해 볼 때 그 부분은 안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프로듀사’는 최고의 제작진과 스타 배우들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일종의 드림팀이었습니다. 하지만 ‘프로듀사’로 잡아놓은 시청자를 매번 그러한 조합의 제작진과 배우들로 구성해 프로그램을 만들기는 사실상 불가능할 것이며, 실제적인 수익률을 따져보더라도 몸값 높은 작가와 배우들의 상승한 인건비로 인해 과연 수익이 남을지도 의문입니다. ‘프로듀사’ 곳곳의 과도한 PPL은 극의 흐름에 방해가 되어 시청자들의 원성을 샀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며, ‘응답하라’ 시리즈나 ‘미생’ ‘하녀’ 등의 금토 드라마는 새로운 기획과 함께 몸값은 높지 않지만 연기력이 탄탄한 중견 연기자들과 신인들로도 드라마 전개의 몰입도와 치밀성을 충분히 높였다는 것도 눈여겨봐야 할 것입니다.


계속 실험하고 도전해야


하지만 이번에 KBS가 야심차게 선보인 ‘프로듀사’는 몇몇 지점에서 이후의 지상파TV 편성 전략에 있어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그것은 첫째, 증가하는 매체간 혹은 매체 내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는 편성에 있어서의 실험적인 시도를 지속적으로 이어가야 한다는 점입니다. 물론 금토 드라마 편성은 지상파에서는 처음 시도한 것이지만 이것은 이미 케이블 채널인 tvN에서 시도해 성공한 전략입니다. 하지만 금토 드라마 편성 전략이 매번 성공하는 것은 아닙니다. tvN은 ‘미생’ 이후의 드라마는 모두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이것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시청자들은 드라마이기 때문에 TV 앞에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재밌는’ 드라마이기 때문에 앉아 있는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참신하고 도전적인 기획력과 탄탄한 콘텐츠가 금토 드라마 편성에 있어 중요하게 작용한다는 사실입니다. 금요일 시청자들 중에서 타깃 시청자들을 어떻게 상정하는가에 따라 드라마 콘텐츠의 방향성은 달라질 것이며, 만약 그 시간대에 드라마가 아닌 예능 장르로 도전을 한다면 기존 지상파에서 시도하지 않았던 새로운 포맷이나 콘텐츠로 젊은 층의 1인 가구들을 사로잡아야 할 것입니다.


둘째, ‘프로듀사’는 금토 드라마라는 지상파에서는 보기 드문 획기적인 편성을 시도했을 뿐만 아니라, 콘텐츠에 있어서도 예능형 드라마라는 실험적인 장르를 추구했습니다. 그래서 예능국에서 드라마를 제작하는가 하면 전통적 드라마 제작 방식에서 벗어나 드라마에 예능적 요소를 결합하여 시청자들이 가벼운 마음으로 볼 수 있도록 했습니다. 또한 기존의 미니시리즈보다 짧은 12회 편성이었습니다. 물론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명목으로 예정된 방송 시간보다 확대 편성한 부분은 극의 전개를 좀 더 치밀하게 구성하지 못한 제작진의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모바일 시청과 선택 시청이 젊은 층의 드라마 경험의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는 와중에 웹드라마나 프리퀄이 새로운 콘텐츠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12회라는 실험적인 편성 속에서 속도감 있는 전개와 치밀한 구성을 통한 개연성이 담보됐을 때에만 시청자들은 주목할 것입니다. ‘프로듀사’가 스타 군단을 데려오고도 애초 기획과 다르게 여느 드라마처럼 예능국은 배경이고 또 연애 이야기만 하냐는 시청자들의 질타는 이런 측면에서 귀담아 들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후 매체들은 보다 유연한 드라마 편성 전략에 주목해야 합니다. 드라마 장르적 성격에 따라 8회, 혹은 12회로 제작하면서 못 다한 얘기들은 프리퀄로 만들어 플랫폼을 다양하게 할 수도 있고, 아니면 기획 단계부터 시리즈를 염두에 두고 시청자의 반응에 따라 탄력적으로 편성을 고민할 필요도 있을 것입니다.


다른 요일 편성 전략도 고민하자


마지막으로, 금토 드라마가 새로운 편성 전략이라면 발상의 전환을 꾀해 기존의 주중 밤 10시 드라마, 11시 예능으로 이어지는 고정화된 패턴에 대해서도 고민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최근 지상파의 침체와 종편 및 케이블의 약진은 고정 편성의 개념에 있어서도 새로운 변화를 추구할 때임을 보여주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월요일 지상파 미니시리즈를 볼 것인가 jtbc ‘냉장고를 부탁해’를 볼 것인가로 늘 부녀간 다툼이 난다는 지인의 말은 전통적 플랫폼인 지상파 TV의 점유율 감소를 간접적으로 드러낼 뿐만 아니라 ‘10시 드라마’라는 고정적인 시청 행태가 무너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현재 지상파는 변화를 뒤따르기보다는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변화를 선도하는 모험과 실험이 절실한 때입니다.


급속한 미디어 환경 변화와 새로운 삶의 방식들은 기존의 아날로그적 경계들을 흐리고 있습니다. 장르적 혼종도 이러한 우리네 삶의 반영일 것입니다. ‘착한’ 드라마에 열광하고, 화려한 도시 생활에서 벗어나 외딴 곳에서 한 끼의 식사만을 고민하는 자연친화적 ‘슬로우형’ 예능에 감동하는 것은 곳곳의 우리네 일상이 휴식과 힐링과 집단적 보상이 절실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매체들은 시청자들의 이러한 마음을 받아 안을 수 있는 편성 전략을 고민할 때만이 시청자들의 공감을 불러일으켜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