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은품을 통해 우리가 기억하는 것들

2015. 9. 23. 09:00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제목에 한 줄을 덧붙일 수 있다면 이렇게 쓰겠습니다. ‘나는 사은품을 받으려던 게 아니다. 단지 장바구니를 비웠을 뿐이다.’ 동네 서점에서 책을 사 본 지도 한참이 되었습니다. 동네 서점이라고 해도 참고서와 문제집, 잡지가 대다수라 느긋하게 책 구경을 할 만한 곳은 도심 곳곳에 위치한 대형서점 뿐입니다. 하지만 대형서점까지 시간 맞춰 나가고, 책을 사서 들고 오는 것도 일이라 어느새 온라인 서점을 이용하게 되었습니다. 참 쉽습니다. 클릭, 클릭, 결제. 그리고 제 좁은 방에는 책과 더불어 사은품이 슬금슬금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부록인 듯 부록 아닌 너


잡지 부록이 잡지보다 비싸던 때도 종종 있었습니다. 그래서 잡지 부록만 쓰고 정작 잡지는 보지도 않는 묘한 일도 종종 일어났더랍니다. 그러나 잡지가 아닌 것들은 부록을 어떻게 만들지가 참 힘든 게 사실입니다. 일단 잡지처럼 정기간행물이 아니면 부록의 유통기한도 고려해야 하고, 크기는? 모양은? 단가는? 생각해야 할 게 참 많지요. 그런데 이 모든 걸 해낸 곳이 한 온라인 서점이니, 제 주변에서는 그 곳을 ‘서점계의 다이소’ 라고 부릅니다.


이 이야기를 쓰기 전에, 제가 그 온라인 서점에서 받은 ‘사은품’ 들을 한번 늘어놓아 보았습니다. 에코백, 보조배터리, 키홀더, 북 파우치, 텀블러. 몇 개 안 되어서 안도의 한숨을 쉬었습니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그 온라인 서점 사은품, 뭐 가지고 있어요?’ 그러자 대답들이 줄줄이 사탕처럼 들려왔습니다. 북스탠드, 책갈피, 노트, 책 추천서, 유리컵, 머그컵, 병따개, 키링, 잠깐만요. 뭐? 편백나무 목침이요? 온라인 서점에서 왜 그런 걸 파는 겁니까? '목침만 별도구매는 불가능합니다. 사은품이거든요.' 마케터의 단호한 대답을 들으며 저는 생각했습니다. 이쯤 되면 서점계의 다이소가 아니라 서점계의 이케아 정도는 되는 것 같은데요.



물론 제 주변 분들은 다양한 분야의 독서광이 많고, 한 달에 사는 책의 양도 상당합니다. 그러니 말하는 거죠. 나는 사은품을 받으려고 책을 산 게 아니라 단지 장바구니를 비웠을 뿐인데 사은품이 왔다고요. 책을 사야 사은품도 오는 거란 말입니다. 그렇다면 이 사은품들은 왜 오는 걸까요. 소비 촉진? ‘덤’의 가장 큰 기능은 소비 촉진입니다. 그렇지만 그래도 뭔가 더 이야기하자면요, 그런 거 있잖습니까.


You remind me of something


온라인 서점의 사은품들은 우리에게 어떤 ‘책’을 기억나게 합니다. 사은품은 어떤 책과 연결되어 있고, 그 사은품을 보면 우리는 사은품을 사고 받은 책, 아니, 사은품을 받고 산 책을 떠올리게 됩니다. 제 북파우치는 ‘바람의 열두 방향’ 이라는 어슐러 르 귄의 단편집 표지를 본따 만들어졌습니다. 그 파우치를 볼 때마다 저는 어슐러 르 귄을 떠올리고, 단편집 속에서 제가 제일 좋아하는 작품인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을 떠올리고, 생각은 자꾸자꾸 가지를 뻗어 나갑니다. 아, 그렇지만 어쩐지 슬픈 생각으로 끝나 버리네요. '오멜라스라는 출판사가 있었지. 지금은 없어졌지만.‘ 제가 가지고 있는 노란색 키홀더는 4월의 어떤 슬픈 날을 떠올리게 합니다. 텀블러에는 어떤 시의 구절이 적혀 있고요. 유리컵에는 ’진정한 탐정은 결혼을 하지 않는다‘는 명언 아닌 명언이 적혀 있습니다. 배트맨 병따개는…… 받은 날 그걸로 벽에 박힌 못을 뽑으려다가 손잡이를 부러뜨렸던 추억이 생각납니다.



잊혀지는 것이 가장 두려운 시대에


만화 <원피스>에 명대사가 나옵니다. 사람이 죽는 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잊혔을 때라고요.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이 돌보지 않는 집이 쉽게 허물어지듯, 우리가 잊은 것들은 쉽게 세상에서 사라집니다. 기억이란 손에 잡히지도 않고 눈에 보이지도 않는 주제에 세상 많은 것들을 살게 하는 원동력이자 마지막까지 남게 하는 질긴 끈인가 봅니다. 수많은 사은품들은 그렇게, 우리에게 한 사건을 기억하게 하고 한 작가를 기억하게 하며 한 권의 책을 기억하게 합니다. “이걸 만드나 저걸 만드나 실제작비는 같죠. 그렇다면 기왕이면 좀 더 재밌는 걸 만들면 좋잖아요. ‘더 재밌는 걸’기획하는 데는 추가비용이 발생하지 않으니까.” 서점계의 다이소, 서점계의 이케아 모 마케터 님의 말씀이셨습니다. 재미있다는 것이 곧 기억에 남는 것이고, 그렇기에 우리는 오늘도 장바구니를 비우며 기억을 사은품이라는 형태로 돌려받는 것인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