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의 어제와 오늘!

2015. 10. 20. 14:00다독다독, 다시보기/지식창고

출처_전북일보

 

‘군산’하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군산 짬뽕? 이성당 빵집? 혹시 개그맨 박명수 아저씨가 생각나는 건 아니신가요? 아, 한 번쯤 군산에 가보신 분이라면 배우 한석규 씨와 심은하 씨 주연의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가 생각나실 수도 있겠네요. 도심을 떠나온 내일러들에게 군산은 사진찍기 좋은 도시, 짬뽕이 유명한 도시로 인식됩니다.


하지만 여러분, 혹시 군산이 한국 근·현대사의 모습을 군데군데 간직하고 있는 도시라는 걸 아시나요? 군산은 한국 근·현대사의 비극적이면서도 슬픈 역사를 품고 있는 도시입니다. 일제강점기 시절 수탈이 가장 극심했던 지역이지만 일제강점기 이후로 쇠퇴의 길을 걸어온 모순의 역사를 안고 있기 때문이죠. 동시에 혼란스럽고 탁한 시대, 일제강점기를 살아가는 민초들 삶을 녹여낸 채만식의 소설 <탁류>가 배경이 되는 도시이자, 고은 시인을 배출한 문학적인 도시이기도 합니다.

 

일제강점기의 최대 수탈지역 군산

전북지역은 일제강점기 최대의 수탈지역이었고, 특히 그 중에서 군산은 쌀 수탈을 위해 1889년 5월 1일 외국인이 거주할 수 있는 지역으로 개항되었습니다. 당시 군산의 토지는 많은 부분 갈대밭이 차지하고 있었는데, 일제는 수탈한 쌀을 효율적으로 가져가기 위해 갈대밭을 매립했고, 격자형 도로망과, 군산선 철도를 놓았습니다. 군산항과 과거 중심지들 근처에 미곡창고나 미곡조합이 존재하는 이유도 수탈한 쌀을 가공해 운반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하네요. 채만식의 <탁류>의 주인공 초봉이의 아버지가 미두장이라는 곳을 들락거리다가, 탕전을 거듭하는 장소인 ‘미두장’도 곡물거래소이자 투기장이었다는 점을 보면, 당시 쌀 수탈이 얼마나 일반 백성들의 삶에까지 파고든 것인지 가늠해볼 수 있습니다.

 

10년대 군산항의 쌀 출하 광경 ⓒ군산포털

 

군산에 남겨진 근대의 흔적들

일제강점기 당시 군산은 ‘일본인의 도시’로 불렸습니다. 군산 인구의 절반이 일본인이었다는 점은 다소 충격적이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군산항과 군산역사 근처를 조금 벗어나 골목골목에 위치한 작은 길들을 걷다보면, 일본식 가옥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역사적 의미를 보존하기 위해 관리되고 있는 장소들도 있지만, 폐허가 되어 거의 무너져가는 가옥들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모두 해방 후 일본인들이 버리고 떠난 공간들이 시공간을 넘어 자리하고 있는 것이죠. 그 광경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도시에 남겨진 흔적들을 중심으로 과거 군산의 모습이 뿌옇게 머릿속에 그려집니다.

 

군산에 남겨진 근대의 흔적들을 따라가 보실까요.

 

1902년 군산에서 태어난 채만식의 <탁류>는 1930년대 군산을 배경으로 합니다. 소설 <탁류>는 탁한 물처럼 살아가는 당대 서민들의 모습과 혼돈속의 한국 사회를 현실적이면서도 풍자적으로 그려냅니다. 앞서 잠깐 언급했듯이 소설 <탁류>에 등장하는 주요 장소들은 여전히 군산에 현존하는 공간입니다. 군산 여행지도를 펼쳤을때 보이는 군산 근대 건축관, 군산항, 한참봉집 쌀가게 등의 장소 모두 소설 속에도 등장하는 장소들입니다. 

 

소설 <탁류>의 맨 앞부분에 묘사되는 ‘도도히 흐르는 탁류, 금강’은 해망동 월명공원서 군산 시가지와 함께 보실 수 있습니다. 느즈막한 오후에 노을과 함께 내려다 보는 금강의 모습은 일품이었습니다. 아마 채만식 작가도 한때 이곳에서 도도히 흘러가는 금강을 바라보고 있지 않았을까요.

 

소설의 여주인공인 초봉이의 남편 고태수가 일하던 조선은행도 리모델링 되어 군산 근대 건축관으로 남아있습니. 초봉이의 아버지 정주사가 매번 미두장에서 노름으로 돈을 잃고 바라보던 군산항도 군산 근대 건축관 뒤로 보입니다. <탁류>를 읽어보신 분이라면, 최근 지어진 현대식 건축물들을 머릿속에 지우고 군산항 근처를 바라보시길 바랍니다. 뭔가 모를 묘한 느낌을 느끼실 수 있을 것입니다.

 

한참봉쌀가게 문학비와 정주사집 문학비가 서 있는 장소와 풍경은 소설 속 이미지와 이상하게도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한참봉쌀가게 문학비 근처는 허름한 집들과 사라져 버린듯한 가옥들의 흔적이 만연합니다. 소설 속에서 한참봉에게 맞아 죽은 고태수와 부유했던 한참봉의 쌀가게를 떠올리면 다소 허무한 감정도 듭니다. 특히, 실제 초봉이가 집에서 일을 하던 약국까지 오가던 길이었던 개복동 예술인거리는 너무나도 소설 속의 분위기와 일치합니다. 마치 어디선가 초봉이가 걸어나올 것만 같아 저는 한참을 그 길을 걸어던 것 같습니다.

 

현재의 군산 그리고 앞으로의 군산


군산을 여행하면서 느낀 점은 정말 매력적인 도시라는 점입니다. 과거에 비해 젊은 이들이 떠나면서 쇠퇴한 모습조차도 군산이기에 체화할 수 있는 분위기라 느껴질 정도니까요. 군산의 시내를 지나 예술인 거리를 걷다보면 문이 잠긴 상가와 상점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낮인데도 너무 조용해서 음산할 정도인 거리도 있습니다.


예술인 거리가 위치한 개복동은 창성동과 더불어 군산의 성매매 집결지로 알려진 지역입니다. 사실 일제강점기 당시 생겨난 유곽들이 해방이후 사라진 뒤 생겨난 집장촌 중 하나입니다. 2002년 발생한 개복동 화재를 기억하실지 모르겠네요. 누전으로 인해 성매매 업소에 서 일하던 14명의 여성들이 업소 주인에 의해 걸어 잠긴 쇠창살을 빠져나오지 못하고 숨진 비극적인 사건이었죠. 이 사건을 계기로 2004년 ‘성매매 특별법’이 제정되었답니다. 현재는 철거되어 찾아볼 수 없지만 여전히 군산의 아픔으로 남아있지요. 잊고 싶은 과거일 수 있으나, 당시의 화재 또한 어찌 보면 우리 사회의 어두운 민낯을 보여준 사건으로 기억됐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군산근대역사박물관 ⓒ이민선


 

군산세관의 모습

 

최근 군산에선 근대문화유산을 살리고 아픈 역사적 공간들을 재생하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군산부두 근처에 들어선 근대역사박물관, 근대건축관, 미술관, 커피숍들은 도시 재생사업으로 인해 정비된 지역이죠. 지난해에는 아시아 도시경관 대상을 수상을 수상하는 좋은 성과를 얻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역사적, 문학적으로 가치있는 지역으로 발돋움 하기 위해선 더 많은 노력들이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군산은 분명 다른 지역들과 차별화된 강점이 있습니다. 한국의 근·현대사를 품고 있으며, 그 역사적 가치를 잘 녹여낸 작품과 작가들도 존재하지요. 이것들을 하나의 콘텐츠로서 엮어내는 작업이 더욱더 필요할 것 같습니다. 탁류길을 걸으면서 정말 아쉬웠던 점은 스토리텔링화된 이야기나 설명이 부족하다는 점이었습니다. 해망굴 근처와 남겨진 일본식 가옥들과 같은 장소들에 대한 관리도 함께 이뤄진다면 군산은 분명 더 많은 이들이 찾는 역사적 도시로 발돋움 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해질녘 금강철새 군무 ⓒ중부일보

 

도시에 스며든 슬픔과 애환의 역사로 군산은 한국의 다크/그리프 투어리즘(Dark Tourism/ Grif Tourism) 지역으로도 불립니다. 마냥 웃고 즐기는 여행과 달리 역사적 장소를 방문함으로써 과거를 통해 교훈을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차별성을 지닙니다. 그 중에서도 군산은 도시 전체가 근현대사를 담아낸다는 점에서 매우 매력적입니다. 마치, 도시가 하나의 박물관, 문학관에 들어온 듯한 느낌을 받으실 수 있을테니까요.

 

이런 군산이 지닌 매력, 여러분도 느껴보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여행하기 좋고 독서하기 안성맞춤인 가을, <탁류>읽으시며 군산여행을 준비하신다면 분명 후회하지 않는 나그네길이 되실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