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10. 27. 14:00ㆍ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저는 SF 소설을 좋아합니다. 영화도 좋아하고, 애니메이션도 좋아해요. 사람과 똑같은 모양을 한 안드로이드, 우주에서 생활하는 사람들, 우리가 살지 못할 미래의 어느 시간을 그린 이야기는 언제나 흥미로웠습니다. '가타카‘와 ’콘택트‘를 시작으로 무려 ’비디오테이프‘로 SF를 보던 저는 쑥쑥 자랐고 가족과 세계의 운명을 걸고 가상현실에서 고스톱을 치는 소녀를 보다가(썸머워즈) ’언젠가 나도 SF를 쓰고야 말겠어!‘ 라는 마음을 먹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썼냐고요? 그건 뭐, 잘 모르겠습니다. SF의 정의야말로 사람들마다 다른 것 아니겠습니까. 비단 미래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 아니더라도 빅토리안 펑크도 무척 좋아합니다. 장르에 대한 설명을 주절주절 하다 보면 지면이 모자랄 테니 그 이야기는 일단 넘어가고요. (궁금하신 분은 제 소설집에 실린 ’와인드업 보이‘를 봐 주세요.)
오늘의 살벌한 제목은 어느 SF 전문 출판사 사장님의 결혼식에서 나온 말입니다. 결혼식 하객은 몇 명이나 될까요? 보통 300명이면 ‘적은 하객’ 이라고 하더군요. 거기 ‘난 친구가 300명이 안 되는데?’ 라고 걱정하시는 분들, 괜찮습니다. 대부분 부모님이 아시는 분들이 하객 자리를 채운다고 합니다. 아무튼, 그 분의 결혼식도 하객이 몇백 명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사장님의 친구들, 출판사 편집자들, SF 팬들이 여기저기에서 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나온 말입니다. ‘여기 폭탄 떨어지면 팬덤이 망해요’ SF 팬덤이란 사실 모아모아 한줌인 적은 숫자라서 이 결혼식에 폭탄이 떨어져서 모두가 사라지면 유지될 수 없는 작은 동네라는 우스갯 소리죠. 하긴, 그 테이블에만 SF 소설 편집자와, 사장님과, 필자들이 다섯 명 둘러앉아 있었으니 그럴 만도 합니다.
“이 결혼식에 안 온 SF 창작자가 남아서 세계를 이어가겠지.”, “그거야말로 너무 전형적인 SF 소설 플롯 아닙니까.”
SF란 어쩌다가 이렇게 소수가 즐기는 장르가 되었을까요. 흔히 SF를 ‘과학소설’이라고 합니다. 과학이라는 말이 가지는 무게 때문일까요? 하지만 재밌잖아요! 도시에 엔진을 장착해서 이리저리 도시가 움직이는 이야기라거나(견인도시 연대기) 시간여행을 하면서 키스를 해서 결과적으로는 몇백 년이나 키스를 하는 장면(개는 말할 것도 없고)이 나오고 유목 비행기를 몰고 다니는 사람의 이야기(신의 궤도), 결혼을 약속해 놓고 우주선이 자꾸만 엇갈리는 바람에 몇 백 년 늦게 생긴 신랑의 편지(당신을 기다리고 있어)에 흥미를 느끼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딱히 대단한 배경지식이 있어야 읽을 수 있는 소설도 아니고요.
예. 그렇습니다. 저는 문과의 피를 타고난 인간으로 미적분을 할 줄 모르며 원소기호는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로 들리고 벡터와 스칼라의 개념을 헷갈리는 물화생지 통틀어 바보인 사람이라고요. 하하! 그런 제가 SF를 읽고 ‘이해하냐고요?’ 소설을 이해하려고 읽습니까. 재미있자고 읽지. 영화나 만화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재미있으면 사람은 알아서 관련된 걸 찾아보게 되잖아요.
외국 SF 소설들은, 어째서인지, 우리나라에는 많은 경우 ‘청소년 권장도서’로 수입됩니다. 저는 그게 조금 서운하기도 합니다. ‘어른이 SF 즐기면 뭐 어때서?’ 라고 어깃장을 놓고 싶어집니다. 그러나 이렇게 척박하기 그지없는 토양에서도 한국의 SF는 무럭무럭 자라고 있습니다. 창간 10년을 맞은 웹진 크로스로드 (http://crossroads.apctp.org/)를 비롯해 작년에 이어 올해도, 과천에서는 SF2015가 열리고 있습니다.
사실은 이 행사를 소개하고 싶었어요.
과학인을 기르자고 노벨상 철마다 이야기하면서 왜 우리나라는 자라나는 꿈나무들에게 SF를 권하지 않는 걸까요. 저는 참 궁금합니다. 과학에 관심을 가지려면 일단 흥미로운 과학 기반 콘텐츠를 던져주는 것만큼 좋은 일이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자, 자, 과학의 달은 4월이지만 이번 10월에는 국립과천과학관 SF2015를 즐겨보시는 것도 좋죠. SF 영화, 가상과 현실 사이 전시, 가상현실 기기 체험, 드론쇼 같은 행사는 아이들에게는 과학에 대한 꿈과 희망을 갖게 하고, 어른들에게는 추억 겸 미래를 살펴보는 좋은 시간이 될 테니까요.
제가 어릴 때 학교에서는 ‘과학의 달’ 행사라고 하면 미니 고무동력기와 글라이더 날리기가 대표적이었습니다. 고무를 감고, 감고, 감았다가 손을 놓는 순간 하늘을 나는 고무동력기는 무척이나 가슴 설레는 대상이었어요. 30년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메신저로 파일을 주고받으리라 생각하지 못했고, 핸드폰으로 TV를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에게 그건 현실이죠. 어쩌면 10년 뒤, 초등학교 과학의 달 행사에서는 ‘드론 날리기’가 열리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우리의 상상이 현실이 될 수 있을까요? 이미 현실이 되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으세요? 미래를 조금 더 빨리 만날 수 있는 곳, 국립과천과학관의 SF2015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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