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의 자유, 익명의 득과 실을 따져본다

2015. 10. 29. 09:00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국내외를 막론하고 인터넷에서 익명이 좋은 것인지 실명이 좋은지는 언제나 논란거리였습니다. 실명을 찬성하는 쪽은 떳떳하다면 실명을 공개하지 못 할 이유가 없다는 논리를 펴고 있고, 반대하는 쪽은 인터넷의 자유를 위해 익명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습니다.
 

익명은 사회 고발적 가치가 있다


최근, 중앙대 음대 자살 사건을 알린 페이스북 페이지 '중앙대에서 알려 드립니다' 때문에 더욱 익명의 가치가 주목 받고 있습니다. 자살한 학생 친구들이 '중앙대에서 알려 드립니다'에 왕따 때문에 자살했다는 제보를 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질 수 있었습니다. 사건의 진실성은 두고 봐야겠지만 익명이 아니라면 경찰에서 자살로 종결 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그냥 단순 자살로 묻혀 버릴 수 있는 사건 이었습니다.


 

중앙대 여학생이 집단 따돌림과 루머에 시달리다 자살을 했다고 주장하는 글이 익명 제보 SNS 페이지를 통해 확산 되었다. (이미지 출처 - 아시아 투데이)

 

전 국민이 익명의 가치를 체험한 또 다른 사건은 '땅콩 회항' 사건이었습니다. 잘 알려진 것처럼 '블라인드'라는 익명으로 글을 쓸 수 있는 회사 앱을 통해 재벌 딸의 잘못 된 행동을 알릴 수 있었습니다. 만약 익명이 아니라면 글을 쓴 사람은 퇴직을 각오해야 하기에 글을 쓰기 어려워 알려 질 수 없었을 것입니다.


잡플래닛에 올라오는 모든 정보들은 실제 기업에서 일하고 있는 직원 혹은 일했던 경험이 있는 직원들이 익명으로 직접 작성한다. (이미지 출처 - 뉴스토마토)


익명의 가치를 발견 할 수 있는 또 다른 예는 요즘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잡플래닛'이라는 앱입니다. 근무 중인 직원들이 회사에 대해 냉정하게 평가를 하기 때문에 그 동안 알려지지 않은 기업의 잘못을 바로 잡는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잡플랜닛은 대기업들의 연봉, 근무 시간, 비전, 조직 문화 등 다양한 정보를 공개해 구직 시 정보로 참고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구성원들의 쓴 소리가 여과 없이 전해지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잘못 된 기업 문화를 바로 잡는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규제가 없는 익명은 악플과 욕문화를 양산한다


하지만 익명성이 꼭 바람직한 것만은 아닙니다. 인터넷에서 적당한 규제가 없을 경우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지를 살펴 볼 수 있는 실험실 같은 곳은 '디시인사이드' 입니다. 디시인사이드는 회원 가입이 필요 없이 누구나 자유롭게 글을 쓸 수가 있습니다. 인터넷 하위 문화 90% 는 디시인사이드를 통해 만들어진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독특한 문화를 생산하며 인터넷 트랜드를 이끌어 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디시인사이드는 회원 가입이라는 최소한의 규제 장치도 없이 글을 쓸 수 있기 때문에 인터넷 악플과 욕설 문화를 만들어 낸 사이트로 비판 받기도 합니다. 디시인사이드에 접속 해 보면 상당수 대화가 욕설과 악플로 꼬리를 물고 있습니다. 회원간 갈등과 반목을 먹고 성장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게시판 내에서 싸움이 끊이질 않습니다. 비실명제 기반사이트로 가입이 필요 없이 글을 쓸 수 있기에 심리적인 제어 장치가 없는 상태에서 글을 쓰게 됩니다. 대부분의 사이트가 ID, 혹은 닉네임이 고정적인데 비해 디시인사이드는 로그인을 안 하고 글을 쓰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닉네임을 자기 맘대로 그때 그때 바꿔가며 글을 쓸 수가 있습니다. 심지어 다른 사람이 사용하던 닉네임을 따라 사용하는 경우도 있어 게시판 내에서 도용이며 갈등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디시인사이드 홈페이지 메인화면 (이미지 출처 - 한국경제)


하지만 원래 디시인사이드는 현재 대표이자 창업자인 김유식 대표가 디지털 카메라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 만든 개인 홈페이지로 초기에는 매우 얌전한 분위기로 서로 존대를 했었습니다. 이런 문화가 바뀐 것은 우리나라 최초의 악질 악플러인 '씨벌교황'의 등장 때문입니다. 그는 조용하던 디시인사이드에 1,500페이지에 달하는 욕을 올렸는데 그의 글은 묘하게도 흡입력이 있었습니다. 다른 사용자들이 처음에는 정중하게 그를 비난하다가 나중에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함께 욕을 하면서 싸우기 시작했습니다. 문제는 어느 순간 다른 사람들도 흡입력 있던 씨벌교황의 글을 따라 하며 그와 상관 없는 글에도 욕과 반말을 쓰는 문화가 생기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디시인사이드에서 절대 악으로 많은 욕을 먹었지만 그 때문에 다른 사용자들을 결집하게 해 디시인사이드의 단단한 커뮤니티 문화를 만드는데 기여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악행을 따라 하는 추종자가 생겨, 이후에 수 많은 악플러가 등장하게 하는 원흉이기도 합니다. 디시인사이드 악플과 욕 문화는 자연스럽게 다른 사이트로 퍼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렇듯 그는 큰 악행을 행했지만 그의 정체는 소문만 무성 할 뿐 끝내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국가로부터 인터넷의 자유를 주장하기 위해 회원 가입도 받지 않던 디시인사이드가 그를 저지하기 위해 법에 고발을 했고 끝내 그를 잡지 못한 것은 익명성의 부작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익명의 대안은 실명제가 될까?


인터넷은 오랜 시간 익명성을 바탕으로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흐름을 크게 바꾼 것은 페이스북의 등장입니다. 페이스북은 기본적으로 자신의 얼굴과 이름을 공개하고 활동해야 합니다. 인터넷에서 익명 세상이 끝나고 실명 세상이 온 것을 알리는 상징적인 사건이었습니다. 타임지에서 2009년 올해의 인물로 선정 한 이는 미국 최대 익명 커뮤니티인 4Chan.org을 이끌고 있는 크리스토퍼 풀(Christopher Poole)이었습니다. 하지만, 바로 다음 해인 2010년에는 페이스북 창업자이자 CEO인 마크 주커버그(Mark Elliot Zuckerberg)를 선정했습니다.


(이미지 출처 - 세계일보)

 

페이스북은 실명을 넘어 지나친 개인 정보를 노출해 사생활 침해 논란과 함께 다른 사람의 개인 정보를 악용 할 수 있다는 논란이 끊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페이스북은 문제 없다는 입장입니다. 마크 주커버거는 만약 당신이 깨끗하고 문제가 없다면 실제 세상처럼 자신을 밝히며 살아가는 것이 아무 문제 없고 오히려 바람직하다고 주장합니다.


구글 역시도 페이스북과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에릭 슈미트 전 구글 CEO는 ‘누구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은 내용이 있다면 처음부터 그 일을 하지 말거나 인터넷에 올라오지 못하게 했어야 한다. 앞으로 청소년들은 성인이 되는 순간 자신의 디지털 과거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름을 바꿔야 할지 모른다’라고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우리는 더 이상 숨을 공간이 없다. 투명성이 강화되고 익명성이 사라지는 방향으로 갈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실제로, 실명을 사용 할 경우 오프라인처럼 자신과 맞는 사람과 쉽게 연결 될 수 있으며, 익명에 비해 신뢰가 높은 글들이 오갈 수 있다는 점 등 다양한 장점이 있습니다. 요즘 나오는 기술이 대부분 실명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에 세상은 자연스럽게 익명에서 실명 세상으로 전환 되고 있습니다.


익명은 악플, 욕설 뿐만 아니라 범죄의 추적을 어렵게 하는 등 장점보다 단점이 훨씬 많습니다. 하지만, 민주주의를 지킬 수 있는 사회 고발적 가치가 탁월하기에 결코 쉽게 포기 할 수 없는 가치이기도 합니다.